하위문화가 아닌 대중문화에서는 욱일기(きょくじつき)가 아니라 그 비슷한 문양의 옷만 등장해도 논란이 되고, 책임자들이 사과를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한국에서 욱일기를 내걸 ‘표현의 자유’나, 더 멋진 표현을 위해 욱일기를 넣은 ‘맥락’을 말하지 않는다. “빨간 원과 직선들이 왜 꼭 제국주의의 상징이죠? 저는 그냥 예쁜 해로 보이는데요”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 문양이 실제 누구에게 피해를 주나? 현존하는 제국주의 피해자가 몇이나 있나?”라거나, “사회적으로 무해한 제국주의 상징의 기준이 뭡니까?”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연예인/연출가가 제국주의자란 얘깁니까?”라고 말하지 않고, “그 문양을 보고 아무도 전쟁범죄를 일으키지 않아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 사람들은 사실, 표현의 자유가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는 걸 안다. 좋은 의도와 맥락이 존재해도 표현이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빨간 원과 직선들이 그냥 쓰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회적 상징들을 참 쉽게 연상시키며 그것이 문제라는 걸 안다. 폭력에 희생된 어떤 이들의 상처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는 걸 안다. 그 상처가 피해당사자들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계층과 집단이 공유하는 상처라는 걸 안다. 연예인/연출가가 제국주의자라서 문제삼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걸 본 사람들이 제국주의자나 전범이 될까봐 문제삼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상처받는 대상이 자랑스러운 ‘국가와 민족’이 아니라 ‘여성과 아이들’이 되면, 사람들은 그 논리들을 애써 몰라 ‘낸다’.
나는 사람들이 전자에 보이는 발작적인 예민함의 절반만이라도, 소아성애의 문제에 적용시켰으면 좋겠다. 우리 대중문화가 욱일 문양에 보여온 예민함과 강경함을 고려한다면, 최소한 대중문화에서만이라도 “소아의 상징과 성(性)적 상징을 ‘병치(倂置)’하지 말라”는 요구는 결코 지나친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민족, 국가, 역사의 문제야말로, 그것들을 끊임없이 ‘사유하고, 재해석하고, 비판하고, 표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성인들의 문제 아닌가. 그런 성인인 우리는 민족, 국가, 역사─ 그리고 그 상징과 맥락들, 표현들─에 대해 깊이 있는 담론들을 충분히 생산하고 교환하고 있는가? 다른 목소리들을 허하는가?
그에 반해 소아성애 논의와 관련하여 위의 것 중 무엇 하나 완전하게 해낼 수 없는 아이들에게, 성인이 나서서 성적 상징을 연결하는 것을 두고 우리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모든 성인은 단 한 순간도 진행 중인 소아성폭력의 피해당사자일 수 없고, 소아성폭력의 가해자는 너무나 빈번하게 성인인데 말이다. 어른들이 ‘잘 표현해 주면 된다’는 그 만용이, 두렵지 않은가.
우리의 편향은 그래서 왜곡되어 있다. 강한 이들을 위해 민감하고 강경하나, 약한 이들의 일에는 둔감하고 방임적인 사회다.
하위문화면 모를까 최소한 대중문화의 장(場)에서, 나는 소아 상징과 성적 상징의 “병치” 자체에 반대하는 불관용(intolerance)을 주장한다.
원문: 한지은의 페이스북
※ 소아성애 문제와 관련된 필자의 자세한 입장에 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