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참조: 아마추어가 아마추어를 가르치는 “사회적기업 in 국제개발협력”) 사회적 경제의 범위에는 사회적기업 말고도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 공정무역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여기서는 공정무역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학계나 시민단체가 아니라 개발협력 계에서 보기 드문 비즈니스, 그것도 작년에 드라마 ‘미생’으로 주목받은 종합상사 출신이다. 같은 회사 후배로 지금은 사회적기업을 창업하여 경영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몇 년 전 이 친구가 종합상사에서 퇴사를 하면서 밝힌 사직 이유가 ‘공정무역’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독특한 캐릭터로 유명한 직속상사가 그 얘기에 벌컥 화를 내서 ‘공정무역’이란 단어가 회사 내에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그럼 우린 불공정 무역을 하고 있단 말이냐!!”
무척 단순한 사람의 웃기는 반응으로 치부되어 버리긴 했지만, 사회적 경제가 무엇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할 것인 것 궁리해 보는 지금, 다시 한 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다. 공정무역이란 단어는 확실히 기존의 무역방식을 불공정한 무역으로 싸잡아 정의하는 뉘앙스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은 사회적기업 비즈니스 모델이다
앞서서 사회적기업에 대해 내린 내 나름의 정의는 아래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래프에 펼쳐져 있는 원호(圓弧)는 사업의 고유한 가치를 나타내는데, 어떤 사업이든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가정한다.
즉, 의사로부터 감기약 처방을 받았다면, 보건소에서 무상으로 해준 것이든, 동네 의원에서 내준 것이든 같은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가치(Value)라기보다는 효용(Utility)에 가깝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래서 같은 가치(효용)을 내는 모든 사업은 원점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등가곡선(等價曲線)인 가상의 원호 위에 존재한다.
그래프에는 상업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익을 나타내는 점선(초록색 선)이 가로로 그어져 있는데, 손익분기점(BEP, Break Even Point)과 비슷한 개념으로서, 기업이라면 당연히 수익이 이 선위에 있어야 한다.
어떤 기업이 자신이 위한 원호의 한 점에서 수평, 수직으로 그어서 (여기서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선이라 부르는) X, Y선과 만드는 사각형의 면적이 그 기업이 만들어 낸 가치다. 상업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익선 위에 있는 면적은 ‘이익’이고,그 아래에 있는 면적은 ‘원가’가 된다.
‘정상적인’ 기업은 (이익이 아닌) 수익으로 구매대금도 결제하고, 직원 임금도 지급하고, 세금도 내고, 이자도 갚고, 연구개발도 하고, 주주에게 배당도 한다. 물론, 기부활동도 하긴 하지만, 본질적 기업활동에서 창출하는 가치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훨씬 더 큰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
어떤 기업이 보다 많은 사회적 가치를 ‘직접적으로’ 추구하고자 상업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익선과 가치 등가 곡선이 만나는 지점으로 ‘자발적으로’ 이동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사회적기업은 자기에게 돌아올, 즉 내부에 유보하거나 주주에게 배당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를 ‘자발적으로’ 사회적 가치와 바꾼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익을 희생하여 원가로 바꾼다. 일반적으로 고용 확대를 중시하는 (특히,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특성상, 그 원가는 주로 ‘인건비’다. 이걸 너무 강조하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사회적기업은 산업통상부나 중소기업청이 아니라 고용노동부 소관이다.
여기서 희생하는 이익을 추가적인 인건비로 지출하지 않고, 추가적인 구매대금으로 쓰게 되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정무역이다. 즉, “기업이 챙길 수 있는 이익을 희생하여 원자재 생산자에게 더욱 많이 지급해 주는 것”이 내가 내리는 공정무역의 정의다.
사회적기업 그림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공정무역용으로 살짝 바꿔본다.
그러니까 이익이라는 경제적 가치를 다른 사회적 가치를 위해 추가된 원가와 교환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인건비냐 구매대금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 사회적기업과 공정무역은 정확히 같은 의미다. 영업 모델 관점에서 봐도 사회적기업이 ‘내수영업’, 공정무역이 ‘수입 국판’이므로, 내수유통망을 핵심에 둔 비즈니스 모델이기에 결국은 같은 뜻이다. 물론, 공정무역이 재화만을 다루는 데 비하여 사회적기업은 서비스를 공급하는 업체가 꽤 많다는 것은 논외로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조직법상 사회적기업 주무부처는 ‘고용노동부’이고, 공정무역은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다. 또, 공정무역의 영문 이름(fair trade)은 그대로 공정거래위원회(Fair Trade Committee)에서 가져다 쓰고 있다. 헷갈리지 마시라…)
공정무역은 CSR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공정무역 쪽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공정무역은 원래 생산자에게 더욱 많은 대금을 지급하기 위한 거죠?”하고 확인하지는 마시라.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일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걸 대부분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공정무역은 ‘거래조건(Terms and Conditions)’의 핵심인 가격 외에 다른 조건들 즉, 노동, 환경문제 등에 대한 ‘윤리적’ 고려가 포함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착한 기업’이라는 다소 위험한(!) 표현이 등장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를 ‘착한 소비’라고도 한다. (왜 착한 기업이 위험한 표현인지는 착한 원조만으로는 부족하다 참조)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기업활동에서 윤리적 고려를 한다?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 아닌가. 그렇다. 공정무역의 뿌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맞닿아 있다.
공정무역의 역사 – 물론, 공정무역이라는 표현이 아직 등장하지 않아 선사시대라 표현할만한 옛날 역사 – 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역사보다 오래되었다. 나중에 등장한 CSR이 공정무역을 포함한 기업의 윤리적 책임의식을 후속적(retrospective)으로 정립했다. 그래서 공정무역에서 중요한 개념을 CSR 이론을 통하여 되새겨 볼 수 있다.
CSR 이론의 창세기라 부를 수 있는 Carroll의 저 피라미드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생김새 그대로 위쪽에 있는 책임이 아래쪽 책임을 대신하거나 덜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Carroll 본인도 가끔 왔다 갔다 하기는 하지만,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기도 하고 이미 여러 차례 실증된 바도 있다. (참조: 기업 사회공헌이 창출하는 가치의 한계)
그러니까 기업 총수라는 사람이 경영권 방어(한다면서 실상은 세습)하겠다는 핑계로 횡령하거나, 자기 공장 생산설비에서 유독 물질이 발생해 (광고에서는 가족이라 부르던) 노동자가 죽어 나가거나, 지역에 치명적인 환경오염을 유발하면서 ‘향토기업’ 어쩌고 떠드는 기업들은 당장 자선활동을 멈춰야 한다. 그들은 헛된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경제적 책임, 즉 최소한 기업으로서 생존이 가능한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한다는 상식 수준의 책임은 기업이 가지는 가장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기본적인 그 속성 때문에 오히려 종종 잊힌다. 이런 문제는 지난번 사회적 기업에 대해 정의할 때도 문제점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정리하자면, 공정무역은 사회적기업의 메카니즘에 CSR의 정신을 가진 비즈니스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Trinity) – 성부, 성자, 성령이 같은 신의 다른 세 측면이라는 알 듯 말 듯한 이론 –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 공정무역이 그 정도로 심오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다행이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