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급생
90년대 후반, 컴퓨터가 가정에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방과 후에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그 집 안방에는 컴퓨터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친구는 의가양양하게 컴퓨터를 켜서 어떤 게임을 보여주었다.
이거 해봐. 우리 오빠가 깔아놨어.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이미지만은 생생하다. 800*600의 둥근 모니터 안에서 선생은 음란하게 다리를 꼬았다. 비치는 회색의 스타킹 안으로 속옷이 보인다던가, 커다란 엉덩이가 끼어서 미끄럼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설정에 뜨악했던 것도 같다. 섬세한 도트로 이루어진 그림 속 여자들은 커다란 가슴을 조금 내민 자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그러니까 때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우리 집은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신문의 사회면을 꼼꼼히 읽던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에게 1990년대 후반은 바야흐로 여성의 권리가 엄청나게 신장되는 것 같이 느껴지던 때였다. 성추행과 성폭행, 그리고 그 대처법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사가 날이면 날마다 쏟아져 나왔다. 특히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당했을 때의 대처법을 조선일보는 상세히 알려줘서, 나는 나중에 취직했을 때 조금의 불이익이라도 당한다면 이처럼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라고 말하던 최진실의 시대가 갔고, 김희선은 미스터Q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꿋꿋이 감내하며 상자 하나 들고 퇴사했다. 자연스럽게 나 또한 신문과 방송이 만든 그 아름답고 강한 여자들처럼 자라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90년대의 한편에서는 누군가 그런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을 공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여성에 대한 희롱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여자들은 지속적인 희롱에 호감을 느끼는 내용의 게임을 말이다.
그래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내 혼란에 정점을 찍었던 이미지 하나.
미술실에 들어갔을 때 일어나는 이벤트다. 화면 끝에는 늙고 추한 얼굴의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 앞에 선 누드모델은 홀딱 벗은 채 다리를 벌린 자세를 하고 있다. 화가가 말한다.
느낌이 안 오네. 물을 좀 더 흘려봐. 다리 사이에.
물을 흘리라니? 지금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지금 어딨어? 어떤 물? 그게 뭐야? 악! 그런 곳에서 물이 흘러? 무슨 소리야, 이게? 친구는 오버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몽땅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게 90년대 후반 내가 처음으로 받은 성교육이었다. ‘동급생’이라는 게임으로 말이다.
내 친구만 동급생을 한 게 아니었다. 컴퓨터가 있는 집은 모두 동급생을 가지고 있었다. 설을 쇠러 간 사촌오빠의 집에도 있었고, 같은 반 남자아이들은 동급생과 포켓몬스터 게임을 가지고 있는 집으로 레이드를 떠났다. 하지만 정작 나는 동급생을 플레이하지 않았다. 컴퓨터도 없었고 구할 길도 없었다.
그리고 동급생은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때 다시 출몰한다.
2000년대 초반, 게임잡지가 쇠락하던 시기와 일본 문화가 공식적으로 수입되던 시기가 맞물렸다. 나는 이미 벅스의 불법 스트리밍을 통해 우타다 히카루와 쿠라키 마이의 노래를 외울 정도로 듣고 있었지만, 아직도 동급생 게임은 구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게임피아가 부록으로 동급생2 CD를 끼워줄 때 굉장히 좋아했다.
게임피아로서는 꽤 도발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몇 페이지에 걸쳐 공략본을 수록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 문구는 빼놓지 않았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게임 내에서 미성년자가 관람할 수 없는 부분을 삭제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니까 게임피아에서 주는 동급생2CD는 H씬이 삭제된 동급생이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H씬이 삭제된 동급생은 문장 자체가 수립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때는 ‘그래도 동급생’이었다. 나는 그래도 동급생을 하고 싶었다. 어릴 적 단 두 번 보았던 기괴한 게임, 누군가는 이미 몇 번이나 엔딩을 보았다는 전설적인 게임.
동급생 시리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당시의 여자애들이 흥미를 가질 법한 아름다운 그래픽의 여자 주인공과 당시의 어린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연애의 과정, 뭘 어떻게 해서 어떻게 끝나는 건지 알 수 없는 섹스, 그 놈의 섹스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 그리고 90년대의 일본과 한국을 관통하여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디스켓에서 저 디스켓으로 떠돌아 다녔다는 전설적인 존재감까지. 동급생은 당시에도 손쉽게 구할 수 있던 ‘두근두근 메모리얼’이나 글로 쓴 연애소설 한 편에 다름없던 ‘투하트’와는 체급이 다른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그 CD를 가지고 있던 친구를 졸라서 빌려왔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동급생2 CD는 내 컴퓨터에서 돌아가지 않았다. CD를 읽을 수 없다며 튕겨냈다. 훗날 그 친구는 내가 CD에 기스를 잔뜩 만들어 왔다며 화를 냈다. 나는 낙담했다. 그리고 또 한동안 동급생을 구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구하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게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이제 아무도 동급생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야하고 재미있는 게임이 많이 나와 있다. 게다가 요새 패키지 게임 하는 사람이 남아있어? 그러니 내가 다시 이 게임을 접하게 된 건, 대학 졸업 직전의 어느 날이었다. 과제는 하기 싫고 게임은 하고 싶은데 온라인 게임처럼 머리 쓰는 건 싫고, 손가락만 까닥이면 끝날 수 있는 게임을 찾자 한 선배가 보내 주었다.
그 선배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동급생1과 동급생2를 묶은 파일을 보내준 선배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동급생이나 깨야겠다.” 라는 말을 남기고 잠수를 탔다.
오랜만에 만난 동급생은 내 넷북에서도 수월하게 돌아갈 만큼 부피가 작아진 상태였다. 하지만별로 흥미가 가지 않아서 하드 한 구석에 처박아둔 채로, 나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사귀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이상을 가진 그의 꿈을 일일이 지적하기에는, 나 또한 졸업 직전의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 대학생이었다. 어디 취직할지 모르겠고 스펙도 없고 꿈도 없어서, 그래서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피곤해서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도무지 그와 말을 섞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동급생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도입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다 플레이했다. 마이와 미호, 미사와 사토미를 모두 공략했다. 자다 일어나서 했고 학교 과실에서도 했다. 화젯거리로 삼기도 했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파일을 보내주기도 했다. 금발에 붉은 립스틱을 칠한 양호 선생을 공략할 때에는 과실에서 다른 동기들과 함께 플레이했다.
겨울이었다. 과실은 추웠다. 우리는 낡은 소파에 앉아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섹스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호 선생이 가운을 벗고 책상에 올라가고 지랄을 하는 가운데에도, 나는 목적 없는 졸업 예정자였고 두 명은 학교를 2년 더 다닐 예정이었다. 감흥 없이 스페이스 바나 누르고 있는 가운데, 담배나 피우고 있던 동기 A양이 말했다.
이거 하나도 안 야하다. 완전 고무덩어리 같잖아.
90년대의 가장 핫한 게임은 고무덩어리의 집합체가 되었고, 김희선처럼 화려한 직장생활을 가지게 되리라던 초등학생은 적당히 졸업해 적당히 살게 되었다. 이제 아무도 동급생은 플레이하지 않는다. 그래도 만약 시간이 남아 돌아서 플레이하게 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말해 주고 싶은 바는 이렇다.
동급생은 그림이 아름답고 내용은 불쾌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미연시로, H씬 플레이어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던 90년대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제 2013년입니다. 그래서 이 글도 2013년에 어울리는 결론으로 끝맺겠습니다.
여러분, 동급생은 고등학생 소년소녀가 성관계를 맺는 아주 부도덕한 컨텐츠입니다. 특히 교복을 착용한 캐릭터의 섹스가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아주 반사회적인 게임입니다. 모두 컴퓨터에서 동급생을 지웁시다. 동급생을 플레이할 사람은 생각을 접읍시다. 차라리 확밀아를 합시다. 아청법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