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지난 9월 웹툰 <뷰티풀 군바리>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학적 욕망 혹은 쾌감을 군대라는 공간을 이용해 시각화하고 정당화”한다는 비판과 함께, 네티즌들에 의한 연재중단 청원이 있었습니다. 비판의 타당성을 인정하더라도 연재중단 청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잇따랐고, 다시 이에 대한 반박이 있었습니다.
ㅍㅍㅅㅅ에 두 주장을 모두 싣습니다.
1. 뷰티풀 군바리 폐지 청원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우선, 저는 <뷰티풀 군바리>에 대한 연재중단 청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제가 제일 많이 본 반론은 ‘국가 검열도 아니고, 작가에 대한 폭력도 아니고, 민간의 집단 압력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아닌 민간인이 개인을 구금했다고 신체의 자유가 덜 침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두고 못 나가게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길을 막고 이동을 못하게 했다고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백안시한다면 그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입니다.
표현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이 어떤 표현을 하는 것을 외부의 힘으로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주체가 국가든 민간이든, 수단이 무력이든 사회적 비난이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표현을 통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역시 얼마든 가능합니다.
‘선하든 악하든 내 자유대로 하겠다’고 할 수 있는 한계선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수단이 표현이라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 권리인가
하지만 이런 이유에서 제가 연재중단 청원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숨쉴 자유’나 ‘존재할 자유’쯤 되지 않는 한 어떤 자유든 무제한일 수는 없으며 이는 표현의 자유 또한 마찬가지니까요. 가령 성희롱이나 타인에 대한 모욕, 사생활 폭로 등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어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해서 곧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할 사안이라 볼 수도 없고요. 국가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것을 우려해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형사처벌하지 않는 나라라고 해도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비난하고 제재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합니다.
저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적의나 차별의식을 드러내거나 조장하는 표현, (이번에 문제가 된 것처럼) 사회적으로 피해자가 버젓이 존재하는 문제를 소재로 그것도 또다른 사회적 소수자를 동원하여 부적절한 구도를 연출하는 작품도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비난을 받아도 되고, 사실 그러한 움직임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식의 항의와 비판을 통해서 ‘작품’을 매개로 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모욕이 점점 설 자리가 적어지는 것이 곧 소수자들이 대등한 인간으로 대우받는 과정의 일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메갤을 중심으로 한 맥심이나 소라넷에 대한 문제제기, 심지어 뷰티풀 군바리에 대한 비판도 저는 상당 부분 지지합니다.
3. 이 사회에서 연재중단 청원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우려
문제는 ‘어떤 종류의 표현을 어떤 정도와 방식으로 제약할 수 있는가’입니다. 연재중단은 단순한 항의나 비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작품을 매체에서 내리라는, 즉 작가에게서 표현의 매개를 박탈하라는 분명한 요구입니다. 저는 작품의 내용이 올바르지 못한 데 대해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작품은 집단 압력으로 게재를 중단시켜도 된다’는 선례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인권의 이름으로요.
한국은 여전히 국방부가 지정한 금서가 존재하고, 자본론을 강의했다고 대학 강사가 신고를 당하는 나라입니다. 이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는 그나마 부정의, 부조리한 사회 질서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를 보호해주는 최소한의 방패막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더구나 한국은 여성,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민감성과 성적 보수주의의 구분도 여전히 명료하지 못한 나라입니다.
만일 네이버가 연재중단 청원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네이버 운영진이 갑자기 인권에 대해 민감해져서가 아니라, 그저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고 소비자들이 시끄럽게 하는 게 싫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고, ‘소비자로서의 권력’을 사용해서 표현을 검열하는 것이 정당한 일로 여겨지게 된다면 ‘동성애를 마치 정상적인 취향처럼 홍보한다’며 기독교 단체가 <어서오세요, 305호에> 연재중단을 압박하고 네이버에 광고 안 주기 운동을 벌일 때 우리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시장경제에 대한 불건전한 인식을 심어준다’며 전경련이 <송곳>을 연재중단시키려 한다면?
삼성은 실제로 광고를 주는 신문에 자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못 싣도록 압력을 넣은 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런 짓을 욕 안 먹고 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규칙으로 주류 이데올로기와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경쟁한다면 어떤 작품이 살아남고, 어떤 작품이 매체에서 삭제되며, 그것은 누구에게 유리한 이념과 사상을 강화시키고 누구의 입과 귀를 틀어막게 될까요?
그것 역시도 시민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려면 할 수도 있겠으나, 저는 그렇게 된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결코 더 살기 좋거나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비자로서의 권력을 이용해 매체를 검열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보다 강자들에게 훨씬 더 유리한 도구입니다. 내용이 부적절하거나 올바르지 못하다고 해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는 이 상황에서는 강자들보다 약자들의 방패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번 ‘연재 중단 청원’에 찬성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원문: 류한수진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