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자동차 이야기: 대한민국 경차의 역사(상)」에서 이어집니다.
군부독재 시대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설 무렵, 경자동차가 대한민국의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첫 경자동차는 가격면에서도 여전히 부담이 크고, 안전성은 심각하게 낮으며, 잔고장도 많고, 무엇보다 자동차를 “부와 명예와 성공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던 사회였기에 서민들에게도 외면을 당했다. 정부의 1 가구 2차량 중과세 제도 또한 경자동차의 보급을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 19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에선 한 집에서 차를 두 대를 소유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경자동차에 바리에이션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경자동차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 중에 하나였다. 물론, 경형상용자동차, 즉 경상용차라는 카테고리가 존재했지만, 원박스 형식의 밴이나 트럭 형식의 경상용차는, ‘소상공인들이 사용하는 차=용달=서민 이미지=싸구려’라는 공식이 팽배했으니 일반 소비자들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들에게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경상용차의 경우, 1991년 당시 대우국민차는 총 3종의 경자동차를 생산했는데, 스즈키 알토의 3세대 모델을 베이스로 제작된 “티코”와, 2세대 스즈키 에브리를 베이스로 한 “다마스”와 9세대 스즈키 캐리를 베이스로 제작이 된 “라보”의 3가지였다. 엔진은 티코에 탑재된 것과 동일한 엔진이 장착되었다. 경상용차인 다마스와 라보는 높은 가격(당시 다마스의 가격은 밴이 426만 원, 코치는 456만, 라보는 357만원이었다)에도 불구하고 소상공인들을 위한 차량으로 나름 선전했으나, 역시 판매량이 그리 높지 않았다.
경자동차 시장에 있어 승용차 부문이 대우국민차의 티코가 유일한 모델이었다면, 경상용차 시장에서는 대우국민차와 아시아자동차의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92년, 아시아자동차는 다이하츠의 7세대 하이제트를 OEM 방식으로 들여와 생산했다. 다마스/라보와 달리 원박스 형태로 먼저 출시하였고, 2인승 화물용 밴, 5인승 승합용 밴, 7인승 승합용 코치의 3종류를 출시했다가, 이후 라보를 의식하여 트럭 버전도 판매했었다.
단, 타우너의 경우, 1992년에 생산된 전기형과, 1999년 아시아 자동차의 기아 합병 후 2000년부터 생산된 후기형(정확히는 페이스리프트) 모두 품질이 다마스/라보보다 더 조악했고, 게다가 전/후기형이 규격이 달라 부품호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출시 당시부터 이미 다마스/라보를 “베낀 차량”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기아는 2002년에 타우너의 생산을 종료한다.
이야기가 조금 삼천포로 빠졌는데, 어쨌든 19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서 경자동차는 당초 정부가 기획한 “서민들이 자동차를 더 많이 타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동차 시장이 더욱 활발해지고, 나아가서는 자동차 산업이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면서, 정부 주도의 “국민차 프로젝트”는 나락의 길로 빠지는 듯 했다.
게다가 1990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진 경제 호황은 경자동차 시장에 연연하는 것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중대형 세단 시장에 더 치중하게 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현대의 다이너스티, 기아의 엔터프라이즈가 모두 이 시기에 탄생했다. 대우 역시 쉬라즈라는 대형 세단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쌍용은 체어맨을 준비하고 있었다. 삼성 역시 1994년에 상용차 부문을, 그리고 95년에 승용차 부문을 신설하면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1994년에 1 가구 2차량 중과세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되, 경승용차에 한해서는 과세를 면제해준다는 정책이 마련되면서 경자동차 수요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는 물론, 경승용차에 한하여 지원혜택을 부여함으로써, 경승용차의 수요가 증가하는 반면, 다른 차종의 수요가 감소함으로써 대도시 교통난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대우의 끈질긴 로비 활동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1997년에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기아, 대우, 쌍용, 아시아, 삼성 등 국산 자동차 메이커들이 차례처례로 쓰러지면서 경자동차 시장이 일변한다. 외환위기로 인하여 내수 경제가 침체되고, 일반 승용차를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층이 감소해버렸기 때문이다.
1997년 9월, 현대가 미츠비시 Minica와 Toppo의 디자인을 참조하면서 개발한 아토스가 경자동차 시장에 진출한다. 탑재엔진은 현대가 상공부의 국민차 프로젝트 당시부터 미츠비시의 3G8엔진을 베이스로 개발해온 800cc 엔진이 탑재되었다.
대우국민차의 티코와는 달리 MPI 엔진을 장착하였고, 티코에 탑재된 3기통의 F8C엔진에 비하여 출력 또한 여유로운 4기통의 엔진이었다. 편의 장비 면에 있어서도 파워 스티어링이나 파워 윈도우, 에어컨 등을 탑재하였고, 지붕 높이가 낮은 티코(1395mm)에 비하여 상당히 높은 1615mm를 가지고 있어서 거주성 면에서도 더 좋은 모델이었다.
특히, 출시 직후 IMF사태가 발생하면서 경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시대적 상황이 메리트로 작용하면서, 1997년 9월 2일 출시 당시 14,418대의 이례적인 사전계약을 달성하고, 1997년 12월에는 판매대수가 무려 6,300대를 넘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차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1998년 4월에 등장한 대우의 1세대 마티즈에 곧바로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1999년에는 전고가 너무 높아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받은 아토스의 섀시를 약간 낮춘 모델이 기아를 통하여 비스토라는 명칭으로 출시된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경자동차 시장은, 승용모델 3개와 상용모델 3개가 존재하는, 나름 거대한 시장으로 발전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IMF 구제금용 관리체제가 종결되는 2001년 8월까지, 경자동차가 승용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무려 35%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이후 경제가 호전되면서 경자동차가 내수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17%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자동차 시장은 2003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IMF 구제금융사태가 종결되고,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소비자들이 경자동차를 외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번째는 국산 자동차 메이커들의 소형차 개발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자동차를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IMF시대에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어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경자동차를 선호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굳이 경자동차를 선호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때까지만 해도 경자동차에 대한 정부 주도의 지원방안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효과는 미비했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경자동차 및 경승합차에 한하여 1가구 2차량 중과세 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이 법안 자체가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1998년에 전면 폐지되었기 때문에, 굳이 세컨드카로 경자동차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1년 8월에 35%의 시장 점유율을 보였던 경자동차시장은 2003년 11월에 이르러 4%로 추락하고 만다. 이에 정부는 2004년에 경자동차 지원 방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데, 특별 소비세 면제, 책임보험료 10% 할인, 등록세와 취득세 면제(이전에는 2% 할인에 불과했다), 고속도로 및 유료도로 통행료 50% 할인, 공영주차장 50% 할인. 자동차 10부제에서 제외 등이 경자동차에 부여되는 혜택이었다.
이에 앞서, 정부는 경자동차 판매 격감의 주 원인 중에 하나가 작은 배기량과 작은 차체 규격으로 인한 문제로 판단하여, 2003년 3월,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배기량 기준을 기존의 800cc에서 1,000cc로 상향하고, 차체 규격 역시 사이즈를 키우는 것을 결정하고, 2006년까지 유예할 것을 공표한다.
그런데 이 규격 조정은 GM대우의 반발에 부딛히게 되는데, 당시 GM대우는 1,000cc 엔진의 개발에 전혀 착수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기차의 경우, 2004년에 비스토의 단종시킬 것을 결정하고, 그 후속으로 1,000cc 엔진을 탑재한 모닝의 출시를 서두르고 있었다.
당시 현기차 수뇌부는 정부가 내세운 “규격 조정안”을 앞당길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로비 활동을 벌였는데, GM대우는 오히려 정부 안을 늦추는 로비를 했고, 이게 훌륭하게 먹혀들어가, 경차 규격 확대의 유예기간이 기존의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나, 경차 규격 확대 정책은 2008년으로 연기되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GM대우는 국내 유일의 경자동차 생산 업체라는 타이틀을 확보하며 경자동차 시장 전체를 점유하게 되고, 반대로 판단을 잘못한 현기차는 모닝을 경차가 아닌 “소형차”로 출시하게 되는 트러블을 겪게 된다. (그래서 2008년에 경차 배기량 기준이 1,000cc로 확대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한동안 고속도로 톨게이트 및 공영주차장 등에서 모닝 오너와 직원들이 “경차다, 아니다”를 두고 싸우는 광경이 속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8년, 경차 규격이 배기량 800cc기준에서 1,000cc로 확대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산 자동차 메이커에서 출시하고 있는 경승용차는 기아 모닝, 기아 레이, 쉐보레 스파크의 3개 모델이다. 스파크는 2015년에 풀 모델 체인지가 이루어졌고, 모닝은 2016년에 풀 모델 체인지가 예정되어 있다. 재미있게도 스파크와 레이는 각각 EV모델이 존재하는데, 스파크는 왠일인지 신형 모델이 아닌, 구형 모델이다.
경승합차에 속하는 한국지엠의 다마스와 라보는 2003년에 풀 모델 체인지(라고 하지만 프론트 디테일과 프론트 오버행을 조금 변경한, 실질적으로는 페이스리프트에 불과한)가 이루어졌으나, 2007년에 높아진 환경기준에 부합하지 못하여 생산중단되었다.
한국지엠(당시에는 GM대우)는 환경기준에 부합하는 엔진을 장착, 2008년부터 재생산을 재개했는데, 이 모델이 바로 뉴 다마스와 뉴 라보다. 이 모델들 역시 2012년에 더욱 허들이 높아진 배기가스 규제 및 안전 규격에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2013년 1월에 단종이 되었는데, 소상공 업계의 생산 재개 요청으로 결국 안전기준을 2018년까지 유예하고, 현재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량에 장착이 의무화되어 있는 배출 가스 자가 진단 장치 의무 부착을 2016년 4월까지 유예하면서 생산이 재개되었다.
다음 편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차배기량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원문: 성년월드 흑과장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