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한국의 견종들 1」에서 이어집니다.
1편을 작성할 때 흔히 아는 견종인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 동경이 등만 쓰고 마무리하려 했으나 그렇게 끝내면 그저 그런 개글(?)로 인식될까 봐 2편에 넣으려던 ‘코리아 트라이 하운드’를 추가해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물론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 잘 모를 견종을 소개해 한국에 이런 다양한 개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6. 제주개
제주도가 원산지인 견종입니다. 진돗개, 동경이와 비슷한 외모를 지닌 견종으로 진돗개보다 체격이 작습니다. 진돗개과 외모가 비슷해 얼핏 진돗개로 오해하지만 진돗개와 달리 꼬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것이 특징이죠. 토종개지만 야성을 지녔으며, 그러면서도 주인에게는 순종합니다.
사실 기원을 살펴보자면 중국이고 제주도에는 3,000년 전에 건너왔습니다. 일본의 재패니즈 친 또한 732년 신라가 일본의 왕가에게 보내는 선물로 보내진 견종에서 시작되었으나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애완견이 되지 않았나요. 3,000년의 세월 동안 제주도민과 함께한 제주개도 우리 토종개로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제주개는 용맹하고 뛰어난 사냥개로 ‘굴개’와 ‘난장개’로 나뉩니다. 굴개는 굴에 들어가 너구리나 오소리 같은 사냥감을 물어 잡아 끌어내오는 역할을 하는 개로, 몸통이 통통하며 길고 다리는 짧아 보입니다. 난장개는 굴개보다 체형이 크고 늘씬하며 털이 짧습니다. 명칭은 ‘1:1 싸움에 강한 개’라는 뜻의 사냥개 전문용어(?)에서 왔습니다. 굴개와 난장개를 교배시켜 태어난 개는 잡종으로 인정하며 도태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제주개는 진돗개처럼 섬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진도는 비교적 육지와 가깝고 왕래도 빈번해 반출된 이력이 있는 반면 제주개는 교류 없이 섬에 떨어져 있어 진돗개보다 혈통 보존이 잘 보존된 편입니다. 제주도에만 있는 견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멸종 위기에 처해 더 이상 제주에서 볼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986년 제주도 축산진흥원에서 제주개로 추정되는 개 세 마리를 발견한 덕분에 지금까지 번식 중입니다.
얼마 전 제주개를 공개 분양한 제주도축산진흥원에 따르면 “제주개의 안정적인 순수혈통 보존 및 증식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통한 타 품종과의 유연관계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해 나갈 계획”이라며 “제주개의 체계적인 관리를 통한 자원 확보 및 이용 가치를 높여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개의 혈통 확립과 보존을 통해 하루빨리 공식적인 우리 토종개 등록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등록되기를 기원합니다.
7. 불개
경상북도 영주의 토종견인 불개는 전해 내려오는 설에 의하면 늑대가 민가로 내려와 집개와 교배해 생긴 견종이라고 합니다. 종명이 불개인 이유는 단지 모색이 붉어서만은 아닙니다. 눈, 코를 포함해 몸 전체가 불에 가까운 색이라 불개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영주 지방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던 견종이었으나 우리나라 개고기 식문화의 한 희생양으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붉은 개가 몸에 좋다며 ‘약개’로 불리던 시기, 건강원에서 중탕되고 엑기스로 만들어지고 약으로 만들어졌던 것이죠.
멸종 위기에 처한 불개를 안타깝게 여긴 동양대학교 고승태 교수님이 건강원이든 보신탕집이든 불개와 비슷하다는 소리만 들리면 찾아가는 수고를 자처해 불개 수컷 1마리를 입수합니다. 그러나 교배시킬 암컷이 없어 낙심하고 있던 그때, 불개를 찾는 교수님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영주 지방의 어느 목사님이 불개 5~6마리를 기부해 불개는 번식사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2010년, 대학교 방학 시절 친구와 함께 등록금이라도 벌 생각으로 파주에 일하러 갔습니다. 거기서 친해진 형들 중 영주에 사는 형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이 형이 불개에 관해 알까 싶어서 ‘영주에 불개라고 있는데 아느냐고’ 물었더니 근친 교배로 사실상 번식사업이 중단된 상태라고 하더군요. 당시 고승태 교수님이 운영하는 불개 번식 관련 사이트에도 소식이 올라오지 않아 약 1년 전의 소식이 최근 업데이트된 소식이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개에 대한 귀한 정보를 얻은 셈이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일단 불개는 위 설명과 같이 ‘늑대와 집개가 교배되어서 만들어진 견종’으로 추측하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늑대와의 교배로 통해 생겨난 토종견이 확실하다면 동양 최초의 자연 발생적 울프독(늑대와의 교잡으로 태어난 견종)이 됩니다. 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 출산 시 땅을 파고 새끼를 출산하는 경향이 있다.
- 두상이 우리나라의 견종보다는 한국에 존재했던 붉은털늑대처럼 주둥이 쪽이 더 길다.
- 일반 개들과는 달리 속살 또한 붉다.
- 고승태 교수가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개와는 전혀 다른 유전인자임이 밝혀졌다.
현재 공식적으로 공인된 울프독 견종은 체코의 ‘체코슬로바키안 울프독’ 과 네덜란드의 ‘사를로스 울프독’이 있습니다. 다만 이 두 견종은 여타 다른 견종의 탄생이 그렇듯 인위적인 개량을 통해 태어난 견종입니다. 만약 불개가 늑대가 집개와의 교배로 태어났다는 게 증명되면 동양에서, 그것도 보신탕 문화가 있는 한국에서 자연발생적 울프독 탄생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또 하나의 토종견으로 정착되고 혈통도 고정된다면 차후 세계협회 등록만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킬만한 특색을 지닌 견종이 아닌가 싶습니다.
8. 미견 도사(Korean Mastiff)
미견은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예쁜 개’, 즉 관상용의 용도를 지닌 개, 더 풀어 설명하자면 생김새를 보기 위한 개 정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때 생김새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봤을 때 아름답거나 귀엽거나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고요,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개의 특징을 말합니다.
얼핏 미견 도사는 주름 때문에 못나게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귀엽다는 느낌도 듭니다. 저는 이런 타입의 개들을 좋아하는지라 후자의 입장입니다. 일반인에게는 ‘쭈글이’로 알려진 견종으로, 또 다른 쭈글이인 샤페이와 같은 별명을 지닌 견종입니다.
자신들의 나라를 대표하는 마스티프 타입의 견종이 있는 경우 또 다른 별칭으로 국가이름에 마스티프라는 단어와 합쳐 부르곤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도고 아르헨티노(Dogo Argentino)의 별칭이 아르헨티나 마스티프(Argentinian Mastiff)며, 브라질의 필라 브라질레이로(Fila Brasileiro)도 브라질 마스티프(Brazilian Mastiff)로 부르며, 일본의 도사견(Tosa inu) 역시 재패니즈 마스티프(Japanese Mastiff)로 불립니다.
한국의 미견 도사 역시 코리안 마스티프(Korean Mastiff)라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마스티프를 가진 나라의 대열에 낄 수 있게 해준 견종이 이 미견도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 개 농장에 광풍을 불어온 견종으로 주름 하나에 몇백이 왔다 갔다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닙니다.
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거래되는 견종인데 종견이나 암컷의 경우 1,000-2,000만 원, 혹은 그 이상에 거래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특이한 주름을 가지게 된 견종으로의 개량은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는데, 누가 왜 개발하였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본의 도사견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보르도 독(Dogue de Bordeaux), 영국의 마스티프(Mastiff)와 불독(Bull dog), 이탈리아의 네오폴리탄 마스티프(Neapolitan Mastiff), 벨기에의 블러드 하운드(Bloodhound) 등을 교잡하였다고 합니다. 개량 과정에 들어간 견종이 많아 기원을 추적하기에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미 진돗개보다 더 유명하며 구글에 ‘Korean Mastiff’라고 검색하면 상당한 양의 외국 자료가 쏟아집니다. 외국에 우리나라의 투견 혈통 도사견과 미견 도사견을 판매하는 ‘레드 드래곤 켄넬’에서 주로 판매했는데 그 과정에서 빈축을 살만한 행실을 많이 해 ‘한국인은 개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성격은 아주 유순한 편에 속합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보통 아무리 순한 개라도 교배 시에는 사나운 기질을 보이기 마련인데 미견 도사는 교배 시에도 유순해 육견 농장의 종견용 개로도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그리해 우리나라에는 도사견을 닮은 잡종개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주름이 아주 많은 관계로 주름 사이를 하루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닦아주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한 냄새를 동반합니다. 또한 ‘체리 아이’라고 해 눈 쪽의 안검이 튀어나오는 병이 있는데 이런 견종에서 잘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근친 교배를 많이 한 견종이라 다른 견종에 비해 유전적인 병이 많습니다.
9. 서울개
특이하게도 군대에서 알게 된 견종입니다. 군복무 당시에도 워낙 개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사이버 지식정보방이라고 하는 막사 내 인터넷 이용실에서 개에 대한 글을 보고 오곤 했는데요. 어느 날 정보장교 직책을 맡은 분이 저에게 와서 혹시 이런 개를 아냐고 물어오시더군요.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생물 선생이 개발한 견종이라며.
설명을 들으며 짐작되는 견종들을 말했지만 전부 틀렸다는 대답만 나왔고,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어떤 개냐고 캐물었더니 ‘서울개’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서울개’… 어떤 개인가 찾아보니 정보 또한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점차 서울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개를 개량하신 분은 서울 단대부고의 생물 교사 임 모 선생님입니다. 그때 정보장교가 말하길 임 선생님은 자기만의 세계를 확고하게 가진, 어찌 보면 괴짜인 그런 선생님으로 보였다는데 인터넷에서 임 선생님에게 배운 다른 분들의 증언을 들어보아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물과 총에 관심이 많았던 임 선생님은 중2 때 생일선물로 공기총을 받습니다.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멧돼지 사냥에 나섰는데, 그때 진돗개와 쿤 하운드의 잡종을 사냥에 사용해보고 생각보다 별로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늙은 사냥꾼에게 사냥개 잡종 자견 세 마리를 분양받았는데 그중 암컷의 공격력이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이름은 번개.
그때부터 좀 더 좋은 사냥개를 만들기 위해 다른 쪽에서 멧돼지를 수십 마리 잡았다는 수컷 개를 분양받기에 이릅니다. 이 개의 이름은 완이. 완이는 늙은 개지만 사냥을 많이 나간 노련한 개였습니다. 사냥 도중 다리를 다치긴 했지만 번개를 훈련시킬 선배 개의 목적으로 구입했다고 해요.
어느 날 완이와 번개는 한 팀이 되어 임 선생님과 함께 산으로 사냥을 나섰는데 250근 정도의 멧돼지를 만납니다. 완이는 노련한 사냥개답게 멧돼지 근처까지 접근했지만 섣불리 덤벼들지 않고 교란시켰고 번개는 번개처럼 돌격해 멧돼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추후 완이와 번개 사이에서 자견 일곱 마리가 태어납니다. 이상하게 번개와 비슷하게 생긴 자견들만 사냥에 소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임 선생님은 개 육종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고, 이때까지 한 번도 만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견종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셰퍼드(총명함과 후각), 도사견(투지와 인내심), 아키타(민첩성) 등의 견종을 이용해 견종을 30여 마리까지 불리고 한 마리 종견을 얻고자 도태를 5번이나 하는 엄격한 개량을 시도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개량하는 도중 엽사 사이에서 서울개가 유명해졌고, 유명해지다 보니 서울개를 빌려달라는 엽사도 생겼습니다. 임 선생님은 거절하지 않고 서울개를 빌려줬으나 나중에 모친이 잡아먹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돌려주려고 하지 않아 고소한 일도 있었다고… 증거불충분으로 고소는 무마되었다고 합니다.
약 10년 동안 개량하면서 쏟아부은 돈 또한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는데 현재 그 명맥이 이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중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만 한 견종을 개량하는 사업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10. 그 밖의 견종들
(1) 스핑크스
함양 장산벌 훈련소의 모 소장님이 개량한 사냥개로 헌팅테리어(German Hunting Terrier) 교잡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멧돼지 사냥개(멧견)을 업그레이드시킨 견종입니다. 스핑크스 이전의 멧견은 핏불테리어+하운드 계열의 조합으로 일명 ‘물어빵’이라고 하는 돌격형 스타일의 사냥개가 많았으나, 스핑크스는 섣불리 덤벼들지 않고 짖으며 경계하다 물어서 체력을 소비하게 만드는 사냥 스타일을 보입니다.
사냥꾼 사이에서는 가장 완벽한 사냥개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훌륭한 개입니다. 개량 완성 당시 500~1,000만 원 사이에 거래되었으며 장산벌 훈련소에서는 그저 자견을 분양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개 훈련을 다 끝낸 상태의 성견을 분양했다고 합니다. 후각도 뛰어나고 멧돼지와의 심리전도 잘하며 짖는 소리 또한 아름답습니다. 멧돼지 털처럼 친 털을 가지고 있어 험준한 국내 지형에 잘 어울리는 견종입니다.
(2) 와일드 보어
와일드 보어는 ‘멧돼지’ 정도의 뜻이 되겠습니다. 견종 이름 자체가 와일드 보어이니 이 견종은 멧돼지 사냥개라는 얘기가 되겠지요. 인천의 엽견 연구소에서 개발했는데 앞서 설명한 코리아 트라이 하운드와 비슷한 개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얼굴 생김새로 보아 핏불이 개량 도중에 들어간 것 같다는 개인적 생각이 듭니다. 워낙 정보가 없는 견종이라 그 밖의 견종 범주에 넣습니다.
(3) 거제개
이 개는 거제쪽의 나이 많으신 어르신 분들만 알고 계실법한 개로 거제에서 사냥개로 활약하던 거제의 토종 견종입니다. 북방견의 일종인 몽골 개와 우리나라 토종인 개들의 혼합종으로 추측하는데, 진돗개과 마찬가지로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 교잡된 개가 이어져 내려온 것 같습니다.
크기는 대형견과 중형견의 중간으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육지 개보다는 다소 큰 체구를 가졌으며 흰색, 황색, 흑색, 재색 등 여러 모색을 띱니다. 가장 흔한 건 흰, 검, 황색 계열이라고 합니다. 진돗개와 흡사하지만 체구가 다소 크며 송곳니가 길고 끝은 안으로 약간 휘어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람에게는 아주 순하나 사냥에 나서서 목표물을 발견하면 맹수로 돌변하는 전형적인 사냥개입니다. 여러 일화 중 거제개의 영리함을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주인이 이웃집에 모내기를 하러 가면 집에 키우던 어미 잃은 고양이가 굶지 않도록 함께 물고 가 밥을 먹을 정도로 영리한 개였다고 합니다.
삽살개 복원사업에 나섰던 경북대학교의 하지홍 교수가 거제개를 보고 충분히 한국 토종견으로서 훌륭하다고 판단해 거제개 협회에서도 정부에 복원사업 겸 번식사업을 위해 예산을 청구하였으나 묵살되면서 거제개는 역사 속에 묻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