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분주한 작은 섬, 홍콩. 아침저녁이면 이 많은 사람들이 일터로, 그리고 가정을 향해 가느라 길거리를 가득 메우곤 합니다.
분주한 홍콩 시내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 중 하나가 침사추이(Tsim Sha Tsui)라는 곳인데요, 홍콩에서도 가장 번화하고 여행객과 홍콩 시민들로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곳이지요. 홍콩섬, 마카오, 중국으로 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항구, 수많은 오피스 빌딩들,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홍콩의 활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침사추이입니다.
이런 분주한 침사추이의 하루하루를 졸린 눈으로 지켜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침사추이의 작은 편의점에서 살고 있는 브라더 크림(Brother Cream)이라고 불리는 고양이입니다.
홍콩 국민고양이 크림
3평 남짓한 편의점에 터를 잡고 앉아 분주한 홍콩의 일상을 지켜보는 이 고양이가 바로 홍콩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고양이 크림입니다. 마치 가게의 주인 마냥 가판대 한가운데 자리 잡고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네요.
사실 크림의 하루는 대부분 빈둥대는 것이 대부분이랍니다. 가판대 위에서 빈둥빈둥, 가게 바닥에 누워 빈둥빈둥, 창고 깊숙이 들어가 빈둥빈둥…늘 작은 편의점 안에서만 지내다보니 운동량도 적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봐도 비만 고양이지요.
편의점 밖 세상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분주한 도시 홍콩이지만, 이 작은 편의점 안 세상은 뒹굴 거리는 크림으로 인해 남태평양 휴양지나 다름없답니다.
비키니 입은 언니들 앞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크림. 정말 남태평양 해변에서 태닝하는 기분이겠죠? 가판대 성인잡지 코너 앞이 크림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라고 하네요.
편의점의 게으른 고양이 크림은 어떻게 홍콩의 국민고양이가 되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홍콩 시민들은 크림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해요.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도시 홍콩. 그 속에서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홍콩 시민들에게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크림의 여유로운 모습은 일상의 여유를 떠올리게 한다고 합니다. 바쁜 출근길에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르다가도 신문을 사기 위해 들린 편의점에서 마주치는 크림의 모습은 홍콩 시민들의 발걸음을 잠시나마 늦추게 한답니다. 흰 배를 드러내고 누워서는 지나가는 홍콩 시민들에게 다그치듯 말을 건네죠.
“자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가~옹~”
크림이 살고 있는 침사추이라는 곳의 위치도 홍콩 시민들에게 크림이 알려지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 입니다. 앞서 말했듯 침사추이는 홍콩에서 가장 번화한 곳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통이 지나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출퇴근길에 크림과 마주치게 되는 홍콩 시민들이 많은 것이지요. 그래서 직장 동료들과 첫 인사로 “오늘은 크림이 계산대에 누워있던 걸?”, “오늘 크림 봤어?” 같은 말을 건네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크림이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날 2012년 7월 10일. 크림이 사라졌습니다. 편의점 주인이자 크림의 주인인 코치 씨가 하루종일 크림을 찾아 헤맸지만 크림이 좋아하던 성인잡지 가판대에도, 크림이 낮잠을 자던 창고 안에도, 크림의 비밀장소인 맥주박스 안에도, 크림은 없었습니다. 누군가 크림을 납치해간 것이었어요!
홍콩의 국민고양이 크림의 실종은 크림을 사랑하는 홍콩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크림의 실종 소식은 홍콩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크림을 찾아 나섰어요. 정신없이 땅만 보며 출퇴근을 하던 홍콩 시민들은 크림을 찾기 위해 시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인터넷에서 크림을 찾기 위한 노력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졌습니다. 페이스북에는 크림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댓글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트위터에 크림을 찾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크림과 비슷하게 생긴 길고양이라도 발견되면 순식간에 크림의 페이스북에 신고 댓글이 쇄도했죠. 모두가 간절히 크림이 되돌아오기를 바랐습니다
크림이 실종된 지 26일째 되던 날. 침사추이의 좁은 골목길에서 드디어 크림이 발견되었습니다. 비에 젖은 몰골로 발견된 크림은 몸무게가 3파운드나 줄어든 채 골목길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유명해진 크림을 몰래 훔쳐갔다가 크림을 찾는 사람들의 눈이 많아지자 이곳에 버리고 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크림이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이 홍콩 전역에 퍼져나갔습니다. 홍콩 신문의 1면이 크림의 뉴스로 도배가 되었어요. 크림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던 홍콩 시민들은 이 기쁜 소식에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크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수다꽃을 피웠습니다. 크림을 잘 모르던 홍콩사람들도 미디어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림을 좋아하게 됐다고 해요.
크림의 실종사건과 돌아온 크림. 이제 홍콩에서 크림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명실상부한 ‘홍콩 국민고양이’가 된 것이지요.
“실종은 대박”… 대박난 국민고양이
돌아온 크림은 엄청난 유명세를 탑니다. 크림에 대한 이야기는 책으로 출간됐고 순식간에 홍콩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책의 인기는 가판대에서 잠자던 크림을 사인회장으로 끌어낼 정도였죠. 2013년 3월 30일, 크림은 큰 쇼핑몰에서 사인회를 하기에 이릅니다.
게으른 크림이 수천 명의 사람들을 위해 사인을 했을까요? 사인회에 모인 사람들은 사인 대신 크림의 발 모양을 본뜬 도장을 받아갔다고 합니다.
크림은 광고모델로도 섭외 1순위가 되었습니다. 3대 관광버스 회사 중 하나에서는 크림을 회사의 대표 모델로 섭외해서 수백대의 버스를 크림 사진으로 도배했다는군요. 이제 홍콩 시내에서 크림의 얼굴을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었죠.
그뿐이 아니에요. TV에서도 크림은 광고 모델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답니다.
TV 광고에 나온 크림, 너무 귀엽지 않나요? 저렇게 귀여운 옷을 입고도 무표정함을 유지하다니 역시 침사추이에 차도남답습니다. TV 광고에 나온 크림을 본 홍콩 사람들은 저 무표정한 얼굴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이내 자체 캐릭터 상품까지 출시하게 되면서 유명세뿐 아니라 크림은 큰 수익을 거둬들이게 됐어요. 편의점 가판대에서 뒹굴거리며 밥만 축내던 크림이 이제 편의점의 수익에 몇십 배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네요. 주인아저씨는 싱글벙글하겠어요.
크림의 유명세는 외신에도 소개되면서 글로벌 스타가 될 기회도 잡았습니다.
CNN에 인터뷰까지 초청된 크림. 어찌 저렇게 쉬크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CNN 스튜디오를 느릿느릿 휘젓고 다니는 크림의 모습에 웃음을 참기가 힘들어요.
이쯤 되면 여러분들도 크림이 걱정되실 것 같아요. 바쁜 스케줄에다, 크림을 보기 위해 편의점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크림이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까요.
그래서 크림의 주인아저씨도 사람들에게 크림을 쓰다듬거나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찍는 것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편의점이 아니라 집에 머물게 하며 크림이 편히 쉬도록 한답니다.
스타가 되어도 평화롭다옹
오늘도 침사추이의 편의점에서 늘어져 있는 크림. 홍콩 사람들의 넘치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크림은 전과 다름없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가판대 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크림의 주인아저씨는 크림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금을 모두 길고양이를 위한 자선단체를 세우는데 기부했다고 합니다. 크림의 이름을 딴 브라더 크림 재단이란 이 자선단체는 홍콩의 길고양이들에게 머물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정말 크림의 주인아저씨도 대인배인 것 같아요.
홍콩의 국민 고양이 크림, 700만 홍콩 시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유명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소문에 의하면 크림은 요새 불만이랍니다. 몰려드는 어린이 팬들 때문에 주인아저씨가 가판대에 성인잡지를 다 치워버렸데요.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뺏겨버린 크림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오늘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고 합니다
“왤케 바쁘게 사냐~옹~”
원문: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