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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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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길거리는 똥 천지였다.” (1)

2015년 7월 17일 by 만쭈리

위생의 중요성

전통시대의 오염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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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분뇨에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마셨던 문명은 19세기 중반까지 동서양 어디에도 없었다.

19세기 템즈 강의 오염
19세기 템즈 강의 오염

예컨대 강 상류에서 버려진 오물은 강 하류에서 그대로 식수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강 상류 사람들은 하천을 깨끗이 사용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강 상류 사람들에게 빨래를 못 하게 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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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을 키우지 못 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뇨를 흘러 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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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염된 물을 마셔야만 했으니, 19세기 초까지 인류는 수인성 질병에 시달려 평균 수명은 30세를 넘기 힘들었고
2천 년간 인류의 평균수명(유아사망률 포함)
2천 년간 인류의 평균수명(유아사망률 포함)

1년 이내에 사망하는 유아사망률을 제외하더라도 35세를 넘기 힘들었다.

구석기인들이나 19세기 인류나 평균수명은 비슷했다.(유아사망률 제외)
구석기인들이나 19세기 인류나 평균수명은 비슷했다.(유아사망률 제외)

하지만 19세기 중반부터 인류의 평균수명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 45세, 21세기 초 75세로 증가한다.(서양 기준)

갑자기 수명이 빠르게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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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의학의 발전을 생각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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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8세기 후반부터 발명되는 천연두 백신으로 인해 인류의 평균수명은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었다.

제너의 종두법
제너의 종두법

“예전에는 천연두에 걸리면 20%는 사망했었기 때문에…” ☞ 참고

조선시대 천연두에 걸려 죽은 시신은 가마니에 넣어 나무에 매달았다.
조선 시대 천연두에 걸려 죽은 시신은 가마니에 넣어 나무에 매달았다.

하지만 천연두 백신의 접종으로 사망률이 감소된 효과는 겨우 전체의 1.5%에 불과했다.(클라이브 폰팅, 2003, 『녹색세계사』, 그물코, 371쪽.)

읭?
읭?

20세기 이후 인류의 평균수명이 30세가량 높아졌지만, 그중 의학이 기여한 것은 8%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녹색세계사』,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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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20세기 중반 결핵 치료제가 개발되지만, 결핵 치료제가 없었던 20세기 초 결핵의 발병률은 이미 1세기 전보다 1/8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읭?
읭?

인류 평균 수명의 연장은 의학의 발전보다는 상하수도 등 공중위생 개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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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섭취 개선이 더 큰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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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천연두나 결핵과 같은 질병도 잘 먹고 위생상태가 좋으면…”

“약 없이도 완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조선 시대의 평균수명

전통시대를 벗어나지 못 했던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19세기 초 유럽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인의 평균수명 추이(유아사망률 포함)
한국인의 평균수명 추이(유아사망률 포함)

“유아사망률을 포함하면 평균수명은 24세였던 걸로…” ☞ 참고

평균수명을 통해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서양에 비해 1세기 가량 뒤처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조선 시대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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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조선 시대의 의학기술은 당대 서양은 물론, 고대 로마시대와 비교해도 결코 낫다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 참고

2천 년 전 로마의 외과수술용 도구
2천 년 전 로마의 외과수술용 도구

조선 시대에 침술과 탕약을 쓰고 있을 때 서양은 해부학 서적이 편찬되고 외과수술을 하고 있었고,

1736년 영국에서는 최초로 맹장염 수술이 실시됐다.
1736년 영국에서는 최초로 맹장염 수술이 실시됐다.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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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은 혈류 순환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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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마가 사상의학을 창시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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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혈액 수혈을 하고 있었다.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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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구한말까지도 민간에서는 해괴한 주술이 횡행하고 있었다.


다음은 구한말 민간에 횡행하던 민간요법들이다.

말라리아 치료법: 사람 그림을 그린 뒤 복부에 칼을 꽂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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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치료법: 자기 발바닥에 아버지의 이름을 써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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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치료법: 잡귀를 물리쳐주는 고양이 부적을 대문에 붙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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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 치료법: 종기가 난 자리에 犬을 그려 넣고 주위에 虎를 써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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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병 치료법: 눈병이 난 자리에 못을 박아 눈에 들어간 악귀를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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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달 치료법: 맥주병을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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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병 치료법: 밥상 위에 젓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든 뒤 물을 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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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 치료법: 갓이나 옷가지를 나뭇가지에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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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봤자 19세기 초까지 조선의 평균수명은 서양과 비슷했다.

읭?
읭?

어차피 평균수명을 늘린 것은 의학보다는 위생의 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기 이후의 평균수명을 따져보면 50세 정도는 살았다.
아동기 이후의 평균수명을 따져보면 50세 정도는 살았다.

따라서 조선 시대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했던 이유는 의료수준보다는 위생상태를 먼저 따져봐야 할 일이다.

조선시대 한양의 노천 풍경
조선 시대 한양의 노천 풍경
가령 어떤 물을 마셨고 평소 얼마나 자주 목욕을 했고, 화장실 어떻게 사용했고, 분뇨는 어떻게 처리됐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이 조선 시대를 이해하는 데 보다 효과적인 자세가 될 것이다.

 

전통시대 서양의 목욕

고대 로마인들은 발달된 수리시설을 통해

로마 시대 배관
로마 시대 배관

도시로 물을 끌어들여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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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의 공중목욕탕

하지만 중세 유럽이 도래하고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관념화되고 보수화되고 폐쇄적인 농경사회로 고착되어버렸으니, 희한하게 목욕 문화가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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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나병 환자, 시체도 거리낌 없이 만지셨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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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는 것도 위선이라고 말씀하셨음.”

‘씻는 것을 위선’이라고 생각했던 종교인들의 해석은 이후로 유럽인들의 위생 수준을 아찔할 정도로 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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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성직자 성 제롬은 이렇게 말했다.(『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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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세례를 받은 사람은 평생 더 이상 목욕할 필요가 없다능.”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도 아랍인들은 유럽인들을 이렇게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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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

“기독교인들은 평생 씻을 줄을 모른다.”
“태어날 때 받은 세례가 일생 중 단 한 번의 목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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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인들의 일생의 유일한 목욕일 수도 있는 세례식

흑사병이 창궐할 때 유럽 의사들의 처방은 이러했다.(『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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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목욕을 하면 모공을 통해 오염된 물이 몸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절대 몸에 해로운 목욕은 하지 마라.”

 

심지어 목욕물에 떠다니는 정자 때문에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괴담까지 돌아다녀, 여인의 경우 목욕은 더더욱 삼가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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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와서도 이런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으니, 17세기 독일 화가 네처가 그린 귀부인의 그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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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귀족이 아들의 머리에서 이, 벼룩 등을 찾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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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의 팔라틴 공주는 8월의 어느 더운 날 먼지가 나는 도로를 오랫동안 마차를 타고 달려 얼굴에 먼지가 너무 많이 묻어 어쩔 수 없이 세수를 했다고 투덜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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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틴 공주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세수를 해야만 했어염.”

 

 

상황이 이러했으니 당시 유럽인들의 체취란 말할 것도 없었다.

1576년 이탈리아의 음악가 카르다누스는 이렇게 말했다.(『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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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다누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몸에는 벼룩과 이가 득실거리고…”
“암내, 발 냄새, 구린내 등 온갖 냄새가 다 났지만,”
“다 참을 수 있어도 끔찍한 입 냄새만큼은 못 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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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17세기 루이 13세는 이런 자랑을 했었다.(『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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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3세

“짐은 선왕을 닮아 겨드랑이 냄새가 심하다능.”

 

그리고 그의 아들 루이 14세는 끔찍한 입 냄새로 악명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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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왕들은 아무리 악취가 심하다 한들 옷을 갈아입거나 향수를 뿌릴 뿐, 결코 목욕을 하는 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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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목욕

고려 시대만 하더라도 목욕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되어 있어서 12세기 고려를 찾았던 송나라의 서긍은 고려의 목욕 문화를 보고 감탄하기도 했었다.(출처: 『고려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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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긍

“옛 역사서에 고구려 사람들은 모두가 깨끗하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고려인들은 중국인들의 몸에는 때가 많다고 비웃는다.”
“고려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서고…”
“여름에는 시냇가에서 매일 두 번씩 목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서긍의 말 하나로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 시대보다는 목욕 문화가 발전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려 시대는 전통시대 일본과 닮았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교사상이 지배했던 조선 시대는 여러모로 중세유럽과 닮았다.

관념적이고,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고, 신분질서를 중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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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대부분 토지에 얽매어 이동을 제약받았던 점에서 조선 시대는 중세 유럽과 비슷한 부분이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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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우연의 일치인지, 조선 시대에도 목욕 문화는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신체 노출을 극도로 꺼렸던 유교적 관습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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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네들은 목욕할 때도 옷을 다 벗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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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했으니 위생상태는 가히 절망적이었다.

100년 전 서양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상투를 풀어헤친 조선 사람들을 보면서 아연실색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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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머리에서 이가 우두둑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양반들은 ‘이’가 많은 걸 오히려 장수의 상징으로 생각하기도 했으니, 한 양반은 자식에게 이렇게 타이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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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아들아, 너무 목욕 자주 하지 마라. 이가 없으면 빨리 죽는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양반은, 정작 자기 몸에 이가 없어져서 걱정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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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아! 그 많던 내 이들이 다 어디로 갔는고?”
“이가 많아야 오래 산다던데, 내가 이러다 빨리 죽겠구나”

 

그러나 얼마 후에 이가 다시 몸에 모이자 크게 기뻐 감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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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조선 정부에서 목욕 문화를 막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세종 때는 일본의 발달된 목욕 문화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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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공중목욕탕을 만들고자 했었다.

15세기 초 일본을 방문했던 통신사가 세종에게 올린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다. ☞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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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생(통신사)

“일본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욕을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큰 집에는 개인 욕실을 설치하고 있었고 집집마다 여러 군데 욕탕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욕실의 제도가 매우 잘 되어 있어 편리합니다.”
“가령 물이 적당히 끓여지면 뿔피리를 부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내고 목욕을 합니다.”
“조선도 이런 욕실을 많이 설치해서 화폐의 사용법을 돕도록 하소서.”

 

하지만 유교문화의 보수성과 백성들의 화폐에 대한 불신으로 공중목욕탕은 빛을 보지 못했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온천욕
조선 시대 서민들의 온천욕

구한말의 목욕

사람들은 불과 1~2세대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늘날처럼 미디어가 발달된 세상에서도 1~2세대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면 짐짓 놀라게 된다.

1966년 수원시
1966년 수원시
저렇게 살았었나?
저렇게 살았었나?

구한말 조선에 왔던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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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의 위생 수준은 상하수도 시설이 들어서는 19세기가 되면서부터 대폭적으로 개선되게 되는데,

19세기 후반의 상하수도 공사
19세기 후반의 상하수도 공사

구한말 조선의 모습을 보고 서양인들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를 목격이나 한 듯 아연실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17세기 조선에서 13년간을 살았던, 하멜의 표류기에는 결코 나오지 않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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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19세기 말 ‘청결’은 서양인이 동양을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이자 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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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양인은 동양인들의 청결에 대한 차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박지향, 2003, 『일그러진 근대』, 푸른역사,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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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

“일본인은 몸과 옷이 다 같이 청결하고…”
“조선인은 옷의 청결함은 고집하면서 몸에는 관심이 없는 반면,”
“중국인들은 둘 다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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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 풍물지』를 쓴 미국인 조지 길모어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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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어

“한 영국인은 조선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사람이…”
“그가 여태껏 본 가장 더러운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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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제물포에 입국한 영국 군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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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들리는 말로는 조선인은 평생 단 두 번만 씻는다고 하더라.”

 

미국인 선교사 알렌은 왜 침례교가 조선에서는 정착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성공했느냐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신복룡, 2002,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 풀빛, 164~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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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한국인은 목욕을 싫어하기 때문에 침례교가 뿌리를 내릴 수 없었고,”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임.”

 

 

침례교
침례교

하지만 본시 청결함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는가? 개항장이 들어서 일본인 거류지가 생겨나자

제물포 개항장
제물포 개항장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목욕문화가 전파되었으니 구한말 일본 요릿집을 본떠 만든 조선의 고급 요릿집에는 하나같이 ‘목욕’을 하나의 메뉴로 제공하고 있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목욕탕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당시 조선인들은 목욕탕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심지어 요릿집의 이름을 목욕탕 이름으로 짓기도 했다.(임종국, 1995, 『한국인의 생활과 풍속』 상, 아세아문화사,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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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자! 혜천탕이 신장개업했슴돠. 좋은 술과 요리는 물론이고 목욕간이 정결하답니다.”

 

하지만 식사를 하기 전에 목욕을 즐기는 건 극소수 상류층만의 일본 흉내 내기 놀이었을 뿐, 구한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조선 시대의 위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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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서울에서 국내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생겼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하여 곧 문을 닫고 말았고, 대중목욕탕은 1920년대에서야 본격적으로 생겨나게 된다.(이연복, 2000, 『한국인의 미용풍속』, 월간에세이, 164~165쪽.)

일제강점기의 목욕탕
일제강점기의 목욕탕

원문: 레알뻘짓 블로그


※ 「“한양의 길거리는 똥 천지였다.” (2)」로 이어집니다.

Filed Under: 생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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