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제 책 구경하러) 서점에 갔다가 ‘당신의 성격 쉽게 바꿔드립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드릴까요?’ 류의 책들을 우르르 봐서 눈이 빙글빙글 @_@ 한 김에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합니다. (출판사에서 어그로 끌지 말라 그랬는데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근데 성격이 뭐에요?
여러분의 성격은 어떤가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아마 ‘착하다’, ‘성실하다’, ‘활발하다’ 등등의 말로 표현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성격은 어떤 사람의 행동, 느낌, 생각의 ‘안정적인(잘 변하지 않는)’ 그리고 ‘일반적인’ 패턴이라고 할 수 있어요. 꽤 성실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한 번 떠올려 봅시다.
아무리 성실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그 사람의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인간이기에 성실하지 못한 모습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래도 안정적으로(꾸준히) 그리고 일반적(보통)으로 성실한 모습을 꽤 자주 보였기에 우리는 그 사람을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이렇게 성격은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전체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그 사람의 행동, 느낌, 생각의 ‘평균적 패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성격은 어떻게 생겨먹었나요? Big5 이론으로 알아봅시다!
심리학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의 특징들에 대해 기술하는 각종 단어들(성실, 착함, 활발 등등)을 사전에서 모조리 뽑아 관련 있는 것들끼리 엮어보면 인간의 성격이 대략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1990년대부터 전세계적으로 이런 작업들이 진행되었답니다. 그 과정에서 심리학자들(대학원생들)이 엄청나게 갈려 나갔겠지요.
그 결과 인간의 성격은 어느 문화권, 어느 인종이든 상관 없이 5가지 요소(외향성, 성실성, 원만성, 신경증, 경험에 대한 개방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이를 성격 5요인 이론(Big 5)이라고 합니다(Costa & McCrae, 1992). 현대 성격 이론의 끝판왕이라고나 할까요? MBTI나 혈액형 성격 이론 같은 것과 다르게 전세계적으로 엄격하게 검증되었다는 점에서 근거 있는, 곧 ‘믿을 수 있는’ 성격이론입니다.
누군가 성격검사를 해보라고 권한다면 ‘이게 성격 5요인 이론을 기반으로 한 검사인가요?’라고 까칠하게 물어봅시다.
BIG5 란 무엇인가?
- 경험에 대한 개방성: 모험, 여행, 새로운 경험 등을 좋아하고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남. 창의성&높은 지능과도 상관. BUT 정신병적인 증상들과도 상관.
- 성실성: 꼼꼼하고 깔끔하고 철두철미한 특성. 학점/성적이 잘 나오고 건강 수칙을 잘 지켜 장수하는 편. BUT 완벽주의로 인해 불행할 가능성도.
- 외향성: 사람들과 어울리고 시끌벅쩍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특성. 인기를 얻기 쉬움. BUT 전염병 유행 시 감염 확률 높음(빨빨거리고 잘 돌아다녀서), 사랑에 잘 빠져서 바람 필 가능성도 있음, 목소리가 크고 다른 사람 말을 잘 안 듣는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도 있음.
- 원만성: 착하고 갈등을 싫어하고 남을 돕기 좋아하는 특성. 사람들과 관계가 원만. BUT 가십을 좋아하고 사람을 의심할 줄 몰라 사기 당할 가능성 있음.
- 신경증: 걱정이 많고 위험 지각이 빠르고 예민한 특성. 짜증 잘 냄. 이혼률 높음. 불행하기 쉬움 BUT 위험이 닥쳤을 때 제일 먼저 눈치채고 도망, 생존 확률이 높음.
우리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모두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프로파일이 다르지요. 예를 들어 지뇽뇽은 경험에 대한 개방성과 원만성이 높고 외향성 보통, 성실성 낮고, 신경증 낮고, 이런 식이죠. 여러분의 성격은 어떤 모양일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성격은 ‘연속적’, 유형으로 나눌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건 사람들을 이런 사람 VS. 저런 사람으로 이분화 해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Bayesian님의 글 ‘MBTI로 살펴보는 진보/보수 개념의 문제’ 참고), 실제 조사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평균’에 분포한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외향성이 높거나 낮은 사람보다 ‘중간’인 사람들이 제일 많다는 거에요. 성격 분포는 이거 아님 저거! 이렇게 딱 나뉘는 게 아니라 ‘연속적’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둘 중에 하나로 딱 나뉜다고 하면 왼쪽 극단과 오른쪽 극단에 우르르 몰려 있는, 봉우리가 양 극단에 솟아 있는 그래프가 나와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참고 글 : MBTI로 알아보는 진보/보수의 문제 by bayesian)
그렇다면 시중의 수 많은 성격검사처럼 사람을 ‘유형화’해서 이거 아님 저거로 나누는 건 엄청난 왜곡을 일으키는 게 되지요. 예컨대 외향성 100점 만점 중 평균이 50점인데 A군은 49점이고 B군은 51이라고 합시다. 그럼 둘 다 외향성 ‘중간’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하지만 범주화시켜 버리게 되면 A군은 ‘내향인’, B군은 ‘외향인’으로 전혀 다른 성격인 것처럼 되어버리겠지요.
평균에 분포하는, 즉 ‘보통’인 사람들이 제일 많다는 걸 고려해 보면 성격을 범주화 하는 검사들은 엄청 많은 사람들의 성격을 왜곡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격을 개조할 수 있을까?
다시 성격 이야기로 돌아가서… 성격의 또 중요한 특성은 상당 부분 ‘타고 난다’라는 겁니다. 연구에 의하면 성격의 50~60% 많게는 70%까지가 유전의 영향이라고 합니다(Jang et al., 1996). 즉 우리의 성격이란 날 때부터 ‘백지’가 아니라 반이 넘게 이미 어느 정도 그려져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성격이 형성되겠지만 그것 역시 ‘이미 그려져 있는 밑그림을 바탕으로’ 그려지는 것이지 완전 새로운 그림이 떵 그려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성격은 타고나는 ‘씨앗’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외향성의 씨앗을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쉽게’ 외향적인 행동들을 꽃피울 수 있겠지요. 즉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향적인 사람들은 절대로 외향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미 외향성의 씨앗을 잔뜩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 비해 훨씬 많은 ‘에너지’와 MP를 많이 소모하는 고급 기술들(자기통제력 등)이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성실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실성이 높지 않은 저는 뭔가 꼼꼼한 일이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 내긴 하지만 정말 낑낑대면서 짜증내면서 간신히 해내곤 합니다. 반면 높은 성실성을 타고난 제 친구는 같은 꼼꼼한 일도 ‘별 다른 노력 없이(짜증냄 없이)’, 여유 있게 심지어 즐기면서 해내고는 하더군요.
성격이 씨앗이라는 말은 또한 없는 걸 태어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어렵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씨앗을 없애는 것도 상당히 어렵다는 말도 됩니다. 저 같은 경우 낮은 성실성을 타고 났는데 아무리 숨기려 해도 꼼꼼하지 못한 모습이 종종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성격은 ‘타고난 적성’과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이러다 보니 학자들은 자기의 성격을 개조하려고 하기보다(밑그림까지 완전히 바꾸는 건 불가능 한 일) ㄱ) 자기 성격에 맞는 환경을 찾거나, ㄴ) 그때그때 상황에 필요한 기술들을 익히는 게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즉 여러분이 성격을 개조하고 싶다라고 한다면 ‘성격’자체에 포커스를 두기보다 지금 갖고 있는 성격으로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찾거나 아니면 그때그때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다양한 ‘행동적, 인지적 전략’을 습득하라는 말이 되겠지요.
예컨대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굳이 ‘영업직’을 하는 거 보다 사회성이 좀 덜 필요한 직업을, 성실성이 낮은 사람이라면 회계사처럼 꼼꼼함에 대한 요구가 높은 직업 보다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게 본인의 행복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좋은 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때그때 자기 성격과 맞지 않더라도 뭔가를 해야 될 때가 생기면 힘들더라도 ‘자기통제력(상황에 따라 불필요한 욕구를 죽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자기를 조절하는 것)’ 같은 걸 이 악물고 발휘하면 된다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게 가장 행복하고 편한 길이라고 생각되어 그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다니는 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베짱베짱이하며 글을 쓰고 있지요. 내 성격이 ‘팥’인데 여기에서 콩을 나게 하는 데 온 인생을 바치느니 ‘최고의 팥’을 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대로 모든 성격 요인들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뭐가 좋은 성격이고 나쁜 성격이라고 할 수 없지요. 누군가의 성격이 탐난다고 해도 실은 다 ‘나름의 고충’이 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사실 적어도 행복하게 사는 데에는 생긴 대로 사는 것 만한 게 없는 듯 합니다.
다만 그 전에 자기 성격을 ‘제대로 아는 것’, 즉 각각의 성격 요소들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알고 각 장/단점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 하니까요. 물론 시중의 카더라 성격 검사들에도 그 탓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무슨 옥시토신 호르몬 스프레이를 통해서 외향적인 인간이 되라는 상술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외향성을 높여준다는 걸 확인한 연구 결과는 아직 없습니다. 그리고 유전자에 박혀있는 성격 특성이 호르몬 스프레이 몇 번 칙칙 뿌린다고 바뀔리가요.
여튼 이렇게 ‘성격 개조’에 관한 이야기 이전에 우리 성격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참고
- Costa, P. T., & McCrae, R. R. (1992).Revised NEO Personality Inven-tory (NEO PI-R) and NEO Five-Factor Inventoryprofessional man-ual. Odessa, FL: Psychological Assessment Resources.
- Jang, K. L., Livesley, W. J., & Vernon, P. A. (1996). Heritability of the Big Five Personality Dimensions and Their Facets: A Twin Study. Journal of Personality, 64, 577-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