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레슬링 매트를 뜯어내다
올림픽이 얼마나 정치적인지, 혹 상업에 물들었는지, 올림픽 종목은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는지, 올림픽이 상징하는 아마추어리즘이란 무엇인지 – 레슬링 퇴출 사태를 설명하기 위해, 혹 그를 논평하기 위해 가져올 화두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수많은 소재를 끌어올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레슬링 퇴출 사태는 명약관화하게 충격적이다. 대체 레슬링처럼 스포츠의 한 원류에 가까우면서도, 역사가 유구하며, 세계적으로 전파되었고, 완전히 개성적인 종목이 또 얼마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다.
가장 오래된 투기 종목이며, 육상 경주, 복싱 등과 함께 고대 올림픽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스포츠. 힘과 힘이 맞붙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투기로써 아마추어 스포츠로서도 사랑받고 있는 레슬링의 퇴출은, 자연히 올림픽의 의의 자체를 뒤돌아보게끔 한다. 뿐만 아니라 그 퇴출 이유로 한 목소리로 ‘재미’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그렇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올림픽의 정신, 올림피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말 그것이란 말인가. 그럼 노력, 선행, 교육, 윤리, 조화로운 발전, 존엄 – 올림픽 헌장이 담고 있는 올림픽의 정신은, 대체 어떤 형태로 구현되고 있단 말인가?
오히려 레슬링이 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퇴출되었다는 뉴스가 뜨자마자, 언론과 유명 블로거들은 ‘로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IOC의 위원 구성, 각 협회의 로비 능력 등 온갖 정보들을 총동원해 레슬링이 퇴출되었다는 상식 밖의 사태를 설명하려 애썼다. 레슬링이 퇴출된 이유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 대부분, 레슬링이라는 종목이 올림픽에 어울리지 않아 퇴출되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올림피즘을 얘기하는 저 올림픽 헌장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레슬링이 퇴출되어야 할 적절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탓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대척점이 있다. 동계올림픽의 피겨스케이팅이다. 레슬링이 고대 올림픽에서부터 내려온 가장 전통있는 하계올림픽 종목이라면, 피겨스케이팅은 비록 레슬링 정도는 아니지만 동계올림픽에서는 가장 전통있는 종목이다. 피겨스케이팅은 올림픽에 최초로 도입된 동계 스포츠로,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동계 스포츠로서는 단독으로 도입되었다.
레슬링이 로비와 국가간 힘싸움의 희생양으로 거론되는 것처럼, 피겨스케이팅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그 속이 새까맣게 썩은지 오래다. 다만 레슬링이 그 결과 핵심 종목에서 퇴출되며 아예 올림픽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것과 달리, 피겨스케이팅은 그 질긴 수명을 용케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결코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판정 시비와 로비 의혹, 국적에 따른 유불리 의혹까지 스포츠가 입을 수 있는 치명적인 의혹을 전부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이 얘기를 하고자 한다. 기왕 역사적 의미고 뭐고 다 내버리고 레슬링을 퇴출할 거라면, 차라리 썩어버린 피겨스케이팅도 퇴출해 하계와 동계 올림픽의 두 맏형을 한꺼번에 내쫓자는 이야기다.
2002년, 솔트레이크
정치적 이해, 심판 로비, 그리고 초유의 금메달 공동 수여. 어쩌면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빙상은 오늘날 올림픽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마당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아폴로 안톤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과 김동성의 실격 사건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겠지만, 세계적으로는 바로 이 사건, 피겨스케이팅 페어 부문에서 나온 금메달 공동 수여 사건이 가장 큰 스캔들이었다.
어쨌든 당시 상황을 정리해보자. 당시 피겨스케이팅 페어 부문에서는 캐나다의 살레 & 펠티에 조와 러시아의 베레즈나야 & 시카룰리체 조가 금메달을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 직전 세계선수권에서 1위와 2위를 차지한 두 팀의 경쟁은, 결국 실수가 있었으나 더 공격적으로 경기를 해낸 러시아의 베레즈나야 & 시카룰리체 조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순간, 또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 실수 없이 경기를 해낸 캐나다의 살레 & 펠티에 조가 은메달에 그치자, 미국 솔트레이크의 경기장은 야유로 가득찼고, 즉각 편파 판정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 의혹은 삽시간에 불타올라, 프랑스의 심판 마리 렌 르 군유가 의혹의 중심에 섰다.
어떻게 이렇게 의혹이 삽시간에 불붙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프랑스 심판 마리 렌 르 군유가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피겨스케이팅이 채택했던 독특한 채점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첫 번째 요인은 6.0점 만점에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를 따로 채점하는 독특한 채점 방식이었다. 6.0점 만점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점수를 깎아나가는 이 방식은 세부적인 사항 하나하나를 평가하기에는 부적절했다. 덕분에 기술의 난이도나 수행 수준과 별개로, 실수를 하지 않으면 이기고 실수를 하면 진다는 인식이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독특한 순위 선정 방식이었다. 총 9명의 심판이 나서 판정을 내리는데, 이 심판들의 점수는 합산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따로 계산된다.
예를 들어, 여기 박근혜 선수와 전여옥 선수가 겨루고 있다고 하자. 심판은 임예인, 이승환, 아츠히로 세 명이다. 임예인은 박근혜에게 6점, 전여옥에게 3점을 주었다. 반면 이승환과 아츠히로는 박근혜에게 5점, 전여옥에게 6점을 주었다. 박근혜는 총 16점을, 전여옥은 총 15점을 받은 것이다. 박근혜가 더 높은 총점을 받았지만, 피겨스케이팅 룰에 따르면 이 경우 승자는 전여옥이다. 왜냐고? 더 많은 심판이 전여옥이 이긴 것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솔트레이크 올림픽으로 돌아가, 당시 9명의 심판 중 4명은 캐나다의 살레 & 펠티에 조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고, 5명은 러시아의 베레즈나야 & 시카룰리체 조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세부적인 점수나 총점은 중요하지 않다. 과반인 5명이 러시아 조의 승리를 선언함으로써, 금메달은 러시아 조에게 돌아간다.
세 번째 요인은 예술점이다. 실수 없이 연기를 해낸 캐나다의 살레 & 펠티에 조가 대체로 더 높은 기술 점수를 받아갔으나, 빠른 스피드와 공격적인 수행을 해낸 러시아의 베레즈나야 & 시카룰리체 조가 대체로 더 높은 예술점수를 가져갔다. 점수가 같을 경우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예술점수가 높은 쪽이 승자로 간주된다. 이런 특징도 러시아 조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는데, 스포츠에 매겨지는 예술점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스캔들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네 번째 요인이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판정을 내린 심판의 국적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심판은 캐나다 조의 손을, 러시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중국, 그리고 프랑스 심판은 러시아 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체적으로 서구권이 캐나다의, 동구권이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는 양상으로 명백히 갈라진 가운데, 유독 프랑스 심판만 동구권 사이에 붙어 있는 꼴이다. 이런 구도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어디선가 프랑스 심판이 뭔가 이상하다는 의혹이 불거져나왔다. 서구권 심판이 동구권 팀의 편을 들면 안 되는 것인지, 오히려 서구권과 동구권이 명백히 갈린 심판의 진영이 더 문제가 아닌지, 지금 와서는 여러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그랬다.
결국 프랑스 심판이 실토를 했다. 결국 아이스 댄스 종목에서 프랑스에 유리한 판정을 내려주는 조건으로 러시아에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것. 프랑스 심판의 판정은 무효가 되었고, 이에 따라 러시아와 캐나다 두 조가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었다. 뭐 나중에 프랑스 심판은 사실 저 실토야말로 거짓이며 자신은 러시아 조가 더 잘 했다고 생각했다고 또다른 진실(?)을 밝히지만, 글쎄, 어떤 진실이 진짜 진실인지는, 이제 와선 며느리도 모른다.
‘예술’을 평가하는 모호한 잣대
그래서 채점제는 변했다. 세부적인 기술 하나하나를 채점하도록 변했고, 총점으로 순위를 결정하도록 변했다. 또 심판의 국적이 표시되지 않도록 변했다. 여기에 세부적인 판정 내용을 채점표로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기까지 한다. 지금 김연아가 200점을 넘네 마네, 세계 신기록을 세우네 마네 하는 것은 다 이 6.0점 만점 제도가 싸그리 사라지고 새로 들어선 채점제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좋게 변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적어도 예술점이라는, 뭘 채점하겠다는 건지도 마땅찮은 항목이 사라진 것만은 좋은 변화인 것 같지만, 그게 또 따져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이제 심판들은 사라진 예술점 대신 기본적인 스케이팅 기술, 동작과 동작 사이를 연결하는 안무동작, 기술을 수행하는 수준, 안무동작의 충실성, 표현력 등을 세부적으로 채점하여 프로그램 구성 점수(Program Component Score, 이하 PCS)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 점수는 종종 PCS나 프로그램 구성 점수 따위의 알아듣기 힘든 용어 대신, 예술점이라는 사라진 옛 이름으로 불린다. 그 본질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김연아가 ‘지젤’과 ‘오마주 투 코리아’를 선보였던 2010-2011년 시즌.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세계선수권에서는 일본의 안도 미키 선수가 우승하며, 대지진으로 신음하는 일본 국민들에게 작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
뭐 이렇게 아름다운 스토리로 기억하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같은 시즌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안도 미키를 누르고 미국의 알리샤 시즈니 선수가 우승했는데, 이에 두 선수의 그랑프리 파이널 – 세계선수권 사이 PCS 점수 추이를 비교해 보면…
알리샤 시즈니는 두 대회 모두에서 점프를 한 번씩 잘못 뛰었다. 두 대회에서 그녀가 얻은 PCS는 약 61점. 세계선수권에서 약간 낮아지긴 했으나 따지고 볼 정도로 큰 변화는 아니다.
반면 안도 미키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에 비해 세계선수권에서 PCS가 무려 6.4점이나 오른다. 그랑프리 파이널 때 대회를 망치기라도 했던 것일까? 혹 세계선수권에서 갑자기 엄청난 연기를 펼친 것일까? 오히려 반대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모든 점프를 실수 없이 해 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오히려 점프 하나를 망쳤다. 프로그램이 바뀌었나?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도 수 개월만에 그의 PCS 점수만이 저렇게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점수차로 우승하는 바람에 좀 희석된 바가 있는데, 원래 피겨스케이팅은 1~2점 차이로 순위가 갈리는 스포츠다.
예술점에서 PCS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채점의 모호성은 여전하다.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점수가 책정되고 있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이름값에 따라 늘어서는 점수임을, 또한 강대국 선수가 경기를 망쳤을 때 쿠션처럼 이를 완충시켜주는 장치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엉망인 채점
그렇다면 기술 점수는 사정이 좀 나을까. 6.0점 만점으로 뭉뚱그려 채점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세부적인 항목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점수를 매기니 말이다. 그런데 그도 별로 그렇지가 않다. 올해 4대륙 선수권이란 대회에서는 일본의 선수 아사다 마오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것도 200점을 넘는 높은 점수로 우승함으로써, 한국 언론은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의 올해 시즌 기록을 뛰어넘는 점수로 우승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아래는 그 채점표다.
굳이 모두 읽을 필요는 없지만, 혹 궁금하다면 대강의 읽는 법을 ‘빙판에서 귤을 까먹어도 김연아가 이길까’ 라는 글에서 소개하고 있으니 그쪽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이 채점표는 피겨스케이팅에 대해 잘 모르는 문외한이 보기에도 대단히 기괴한데, ‘잘못된 기술’로 판정된 세부 항목에 감점이 없음은 물론 오히려 가산점까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채점표의 < 표시는 ‘점프에서 회전을 완전히 해내지 못했다’는 뜻인데, 2A+3T< 라는 점프에 오히려 가산점 0.07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려 네 명의 심판이 가산점을 주었을 뿐 아니라, 한 명은 2점이나 되는 가산점을 주고 있다. (가산점은 3점이 최고치다.)
또 채점표의 e 표시는 ‘점프를 뛸 때 규정된 날이 아닌 다른 날을 이용해서 뛰었다’는 뜻인데, 3Lz(e)라는 점프에는 고작 -0.3점의 감점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심지어 한 명은 1점의 가산점을 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아사다 마오가 ‘잘못 뛴’ 3Lz(e)에서 얻어가는 점수는 무려 5.7점으로, 이는 플립, 룹, 살코, 토룹 등 그 어떤 3회전 점프의 기초점보다도 높은 점수다.
보다 자세한 기술적 분석은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코치나 해설위원 등에게 넘기기로 하고, 어쨌든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스포츠가 ‘세부적인 채점’을 통해 극복해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기술을 잘못 구사했다고 표시는 되어 있지만 어쨌든 가산점이 주어진다. 이 채점표에서 선수가 정확히 뛴 점프는 7개 중 단 2개 뿐이지만, 역대급의 점수를 받아가며 우승한다. 굳이 규칙을 세세하게 적용하지 않아도, 이미 스포츠의 판정이라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올림픽 헌장: 올림픽은 개인간의 경쟁일 뿐이다
귀찮아서분량의 한계 때문에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경우만 예로 들긴 했지만, 비단 저 두 판정만이 문제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한 번만 대회를 열어도 이상한 판정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온다. 잘못 뛴 점프를 그냥 넘어가는 경우, 잘못 뛰었다고 표시는 되어 있는데 거의 감점이 되지 않는 경우 등, 문외한이 채점표를 들여다봐도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렇다면 왜 이런 엉터리 채점이 이루어지는가? 많은 사람들은 피겨스케이팅에 정치적 스포츠라는 오명을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의 많은 팬들은 피겨스케이팅을 후원하는 기업의 과반이 일본 기업임을 지적하며, 일본의 로비가 이런 엉터리 채점을 낳았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바다 건너에서는 일본의 많은 팬들이 삼성 등의 로비로 김연아가 도에 지나친 점수를 받고 있다는 음모론을 마찬가지로 제기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로비가 존재하는지, 로비가 존재한다면 어떤 나라의 로비가 더 강하고, 누가 그 로비의 덕을 받고 있는지는 여기서 드러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음모론이 횡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스포츠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츠인들의 땀과 노력의 경쟁 대신, 국가와 로비가 끼어드는 기묘한 마당이 된 것이다.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가 보자. 우승 후보로 꼽힌 캐나다 팀과 러시아 팀, 동구권과 서구권으로 완전히 갈린 심판 판정. 러시아 팀을 1위로 꼽았다는 이유로 경기가 끝나자마자 판정 시비의 중심이 된 프랑스 심판에 이르기까지. 판정 시비가 사실이었든 거짓이었든, 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이상하다. 대체 서구권과 동구권의 판정은 어떻게 그렇게 칼로 나누듯 갈라질 수 있었는가? 왜 프랑스 심판은 그렇게 곧바로 의혹의 대상이 되었는가? 정말 판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왜 다른 동구권 국가의 심판들에게는 의혹이 제기되지 않았나? 그 무엇보다, 로비가 있었으리란 의혹은 왜 기정사실처럼 퍼져나갔는가? 실로 정상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
제도가 모조리 바뀌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여전히 채점은 구체적이지 못하며, 세부적인 항목을 나누어 채점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만큼 세부적으로 엉터리인 채점에는 그 어떤 공신력도 없다. 덕분에 흑인은 빙판에서 대접받지 못하며, 약소국의 선수들은 만나보기조차 어렵다. 불공정한 채점이 그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은 하도 많이 나와 이제 지겨울 정도다. 거기에 로비와 편파 판정 시비는 대회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고정 레퍼토리라 이젠 신기할 것도 못 된다. 비록 제도는 바뀌었지만, 스캔들을 낳았던 사람들, 변질된 올림픽 정신, 그 모든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어쩌면 아무 것도 변할 수 없다는 게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이 오래된 스포츠들을 생각한다. 로비와 국가간의 알력, 정치가 레슬링을 올림픽에서 퇴출시켰는가? 강력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를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하계올림픽에서 가장 유서 깊은 종목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그 사실 뿐이다.
그렇다면, 피겨스케이팅은 어떤가? 로비와 국가간의 알력, 정치가 피겨 스케이팅을 더럽히고 있는가? 강력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유서 깊은 종목은 이미 사라진 것이나 매한가지라는 사실 뿐이다. 흔한 편파 판정 시비를 넘어, 아예 심판의 신뢰도 자체가 무너져버린 이 종목에 여전히 피겨스케이팅으로 불릴 자격이 남아 있을까?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확언할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