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혈흡충은 남아메리카부터 아프리카,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국까지 약 200만 명을 감염시키고 있는 주요 기생충 중 하나다. 달팽이를 중간숙주로 하여 주혈흡충의 유생에 오염된 물에 접촉하면 감염되는데, 주로 안전한 식수에 접근하기 힘든 저소득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비단 기생충으로 인한 영양부족이나 장기손상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감염으로 방광암 등의 암 발생률을 증가시켜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어쨌든 주혈흡충은 질병학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기생충이지만, 그 생활사나 생화학에 있어 독특한 면을 지니고 있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에 할 이야기는 바로 주혈흡충의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주혈흡충은 독특하게도 일부일처제(monogamy)를 택하고 있다. 난잡하고 비도덕적일 것만 같은 기생충의 결혼생활이 일부일처제라니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조류는 90% 이상이 일부일처제를 택하고 있지만, 포유류는 약 3%만이 일부일처제를 택하고 있고, 무척추동물에 가서는 극히 찾아보기 힘들어진다.[1] 때문에 주혈흡충은 일부일처제를 채택한 동물 중에는 가장 단순한 동물에 속한다. 특히 기생생물에서 일부일처제를 택한 생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일부일처제의 형성과 발달, 그리고 기원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모델이 된다.
그렇다면 왜 주혈흡충은 암수가 분리된 것일까. 일단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자웅동체였던 주혈흡충의 조상이 체내 기생충이 되면서 숙주의 면역계에 대응하기 위해 암수가 분리되었다는 설이다. 암수가 분리되면서 숙주의 복잡하고 강력한 면역계에 발맞추어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주혈흡충은 숙주의 혈관에 기생하기 때문에 다른 기생충보다 숙주의 면역계에 훨씬 심하게 노출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혈관에 기생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기능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가설도 있다. 주혈흡충의 암수가 나뉜 것은 ‘가사분담’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위의 사진에 보이다시피 근육질의 수컷은 암컷을 안고 혈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도록 근육이 발달했고, 암컷은 알을 낳기 좋도록 근육을 없애고 대신 파고 들기 좋도록 가느다랗게 변했다는 설이다.[2] 적절한 가사분담을 통한 남녀평등이라니 기생충의 결혼 생활이 점점 훈훈해져 간다.
주혈흡충의 일부일처제가 어떻게 발생했고 유지되고 있는지는 아직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입해온 일부일처제의 배경과는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유생활(free living)을 하는 생물들에서 일부일처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암컷이 듬성듬성 분포하고 있거나, 부모 모두가 자식을 양육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수컷 간의 영토나 유전적 배경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다. 암컷이 넓은 지역에 듬성듬성 분포하는 경우 수컷이 일정한 지역을 확보하고 일부다처제를 운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지나치게 넓은 지역을 관리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한 암컷에 정착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양육 역시 중요한 부분인데, 조류처럼 쉼 없이 알을 품어야 하는 경우 암컷과 수컷 모두 자녀의 양육에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수컷의 ‘질적 차이’가 불분명한 경우 암컷은 딱히 배우자를 깐깐하게 골라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수컷도 마찬가지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가며 암컷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된다.[3]
주혈흡충의 경우에는 이 경우들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 암컷이든 수컷이든 결국 숙주 안에서 최종적으로 기생하는 장소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 곳에 개체들이 밀집하게 된다. 암컷의 분포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양육 역시 고려 대상이 아니다. 주혈흡충은 알을 낳은 다음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숙주의 체외로 흘려내 버리므로 양육을 위해 일부일처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수컷의 질적 차이는 어떨까. 아직까지 숙주의 체내에서 각각의 수컷들이 얼마만큼의 저항력이나 생존력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프라지콴텔 등의 기생충 약을 투여할 경우 배우자 변경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는 보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수컷의 질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컷의 질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일부일처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인데, 이 역시 일반적인 일부일처제의 설명과는 상반되는 상황이다.[4]
이처럼 주혈흡충은 독특한 배우자 선택 형태를 보여주며, 배우자 선택이 어떤 식으로 진화되어 왔으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새로운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외부적 압력에 따라 배우자를 바꾸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평생을 서로만을 바라보며 꼭 끌어안고 적절한 가사분담을 하며 살아가는 주혈흡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충의 모습과는 또 다르지 않습니까. 이제 결혼식 때 원앙 한쌍을 선물하는 것 보다 주혈흡충 한쌍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1. Reichard, U. and Boesch, C., eds (2003) Monogamy: Mating Strategies and Partnerships in Birds, Humans and other Mammals, Cambridge University Press ↩
- 2. Loker, E.S. and Brant, S.V. (2006) Diversification, dioecy and dimorphism in schistosomes. Trends Parasitol. 22, 521–528 ↩
- 3. Armstrong, J.C. (1965) Mating behavior and development of schistosomes in the mouse. J. Parasitol. 51, 605–616 ↩
- 4. Beltran S, Boissier J. Schistosome monogamy: who, how, and why? Trends Parasitol. 2008 Sep;24(9):386-91. Epub 2008 Jul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