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과학?
‘과학’이라고 하면 컴퓨터, 로보트, 나로호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요? (저만 그런가요) 그래서 ‘심리학이 과학이다’라고 하면 ‘그래? 침대가 훨씬 더 과학일 거 같은데?’ 같은 반응이 돌아옵니다. 과학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과학적이라는 말은 ‘엄격한 절차를 통해 검증 했느냐’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심리학이 과학이라는 말은 곧 누구나 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너무 뻔해 보이는 것도 ‘정말 그런지’ 엄격한 절차와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는 학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냥 눈 감고 혼자 생각해서 ‘내 생각에 인간은 이런 거 같아’류의, 인간에 대한 ‘카더라’, ‘믿거나 말거나’ 정보는 심리학 지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도 됩니다.
그 말이 맞는 말인가의 여부와 상관 없이 ‘검증’되지 않았다면 과학적 검증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세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거든요. ‘진짜 그러한지 검증할 것’이 곧 심리학을 플레이 하는 룰이라는 것이지요. 만약 받아들여지고 싶다면 본인의 ‘가설’을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검증하고 이를 학계에서 확인 받으면 됩니다. 흔한 심리학도의 대화를 보죠.
– 우선 무언가를 주장할 때는…
“혈액형별 성격이 맞다고요? 자 그럼 이제 혈액형이 성격과 상관을 보인다는 걸 제대로 검증한 논문을 한 편이라도 보여주세요. 증거를 갖고 온 다음에 이야기 합시다.”– 반박 할 때 역시 밑도 끝도 없이 ‘내 생각엔 안 그래’나 ‘난 안 그런데??’가 아니라…
“일리 있는 말인네요. 하지만 ~~논문과 ~~데이터에 의하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은 심리학 서적 고르기
이런 점에서 많은 심리학도들은 그 흔한 레퍼런스(참고 논문 목록,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된 지식들의 출처)도 없는 책들이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시중에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좋은 심리학 서적이라면 일단 책 어딘가에(주로 뒤편) 참고한 논문들 목록이 주르륵 달려 있어야 한다는 것도 됩니다. (책 선택에 참고가 되면 좋겠군요)
사회심리학은 뭐야?
이제 제 전공분야인 사회심리학 이야기를 해 볼까요? 사회심리학이 뭐냐는 질문 역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간단히 말해 우리가 삶에서 ‘타인’과 엮이게 되면서 겪는 모든 것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사회생활 하면서 종종 묻게 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날 좋아하게 할 수 있을까?’ (외로움, 매력/호감, 다양한 사회적 기술들-마음 읽기, 눈치 보기, 이미지 관리 등), ‘나는 그리고 쟤는 도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행동의 원인을 파악하는 ‘귀인’, 행동을 만드는 상황의 힘), ‘나는 그리고 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자아 관련 이슈들-자존감, 정체성, 자기통제력 등) 같은 질문들 뿐 아니라 구체적인 관계들, 친구관계, 연인관계(나는 왜 안 생길까?), 상하관계(우리 상사는 왜 그 모양일까?) 등에서 발생하는 이슈들,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언제나 발생하는 각종 사회문제(고정관념, 차별, 계층 간 문제) 등이 사회심리학의 주요 연구주제가 됩니다.
집에서는 츄리닝 바지에 구부정하게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있지만 나갈 때면 반드시 화장한 얼굴에 말끔한 옷을 걸쳐서 좀 전의 인간과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새 모습으로 나가는,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영향권 안에 있게 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학자들은 심지어 이빨 닦고 머리 빗는 행위도 어느 정도는 타인을 의식한 행위라고 봅니다. 만약 이 세상에 혼자 산다면 지금처럼 자주 씻고 머리를 빗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지요.)
사회심리학, 관계의 과학
이렇게 인간관계, 사회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민들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학문이 사회심리학입니다. 근데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푸냐고요? 이성관계에 관한 예를 하나 살펴 봅시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헤프다는 말이 있지요. 너무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정말 그런지 실험을 해 봅니다. 남녀 실험자들이 거리에 있는 이성에게 랜덤하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함께 합시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70%가 그 자리에서 OK(올레)를 외치지만 여성은 거의 아무도 승낙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Clark & Hatfield, 1989). 그러면 연구자들은 ‘역시 남자는 짐ㅋ승ㅋ’이라는 과학적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ㅍㅍㅅㅅ에 제가 포스팅한 적도 있으니 한 번 읽어 보세요.
하지만 또 이 결과에 의문을 품는 연구자들도 생길 수 있지요. ‘여성들도 원나잇 많이 하잖아? 그럼 원나잇을 함에 있어 남녀의 차이는 뭐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혹시 여자는 원나잇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단지 상대를 고르는 게 좀 까다로운 거 아닐까?’이렇게요(요게 바로 가설).
이 사람들도 이전의 실험과 비슷한 실험을 합니다. 남녀에게 이성의 사진을 잔뜩 보여주고 각 사람과 원나잇을 할 의향이 얼마나 있냐고 묻는 식이지요. 근데 이번에는 사진 속 이성의 ‘매력도’를 다르게 합니다. 이전 실험에서는 매력도가 평균 정도(보통)인 실험자들이 원나잇의 대상이었다면 이번에는 못생긴 사람에서부터 잘생기고 예쁜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러면 남자는 여성이 예쁘던 못생겼던 웬만하면 다 OK하는 경항을 보이지만 여성은 남성이 못생겼을 때는 NO, 그러나 잘 생겼을 때는 OK하는 경향을 보입니다(Conley, 2011). 즉 여전히 남자가 더 OK의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헤픈 건 맞지만 여성도 원나잇을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요. 이런 식으로 남자만 완전 짐ㅋ승ㅋ이라는 오해(?)가 (조금이나마) 과학적으로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more about 연구 방법
이 외에도 보편적으로 ‘어떤 성격, 행동의 사람이 인기가 많은가?’같은 질문들도 실험과 설문을 통해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외향적일수록 인기가 많을까?’라는 게 질문(가설)이라면, 우선 간단하게는 여러 사람들의 성격과 인기도를 함께 측정해서 외향성과 인기도가 상관을 보이는지를 보면 됩니다.
조사 결과 a)나 d)그래프가 나왔다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정적 상관). 참고로 그래프 모양은 같더라도 얼마나 선이 촘촘하게 그려졌느냐에 따라 a)가 d)보다 더 두 변인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강한’ 상관). 만약 c) 그래프가 나왔다면 a) & d)와는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들이 별로 인기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b) 그래프가 나왔다면 외향성과 인기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게 되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상관’ 연구는 ‘인과관계’를 말해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ㄱ) 외향적이어서 →인기가 많은 건지, ㄴ) 인기가 많아서 → 외향적이 되는 건지(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ㄷ) 외향성과 인기에 동시에 영향을 주는 제 3의 변인(예컨대 외모??)이 있는 건지에 대해 전혀 이야기 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관 연구에서는 말 그대로 ‘상관’이 있는지, 즉 무관한 건 아닌지 정도만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옆으로 새는 이야기지만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해 보면.. 아쉽게도 언론에서 종종 (매우 자주) 이런 ‘상관연구’를 과대해석하곤 합니다. 게임을 많이 하면 뇌가 이상해진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강타했었는데 사실 이것도 상관연구거든요. 정말 주장대로 ㄱ) 게임을 해서 → 뇌가 이상해진 건지, ㄴ) 뇌 이상이 생긴 사람이 → 게임 중독이 되는 건지, ㄷ) 뇌 이상과 게임 중독을 불러오는 제 3의 요소가 있는 건지(예컨대 환경적인 결핍 이라던가).
상관 결과만 가지고는 이 세가지 전혀 다른 가능성 중 어떤 게 맞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세가지 가능성 중 자기 맘에 드는 걸 하나 찝어서 ‘이게 결ㅋ론ㅋ’이라고 한다면 ‘사기’가 되는 것이지요. (기자님들 아시면 좋을 내용)
인과관계를 알고 싶다면 ‘실험’을 해야 합니다. 실험집단과 통제집단을 두어 다른 요소를 전부 통제하고 오직 관심의 초점이 되는 요소 하나만 달리해서 그 요소의 차이가 집단의 차이를 불러오는 지 보는 겁니다. 외향성으로 다시 돌아가서 외향성과 인기가 상관이 있다(무관하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면 이번에는 조건을 두 개 둡니다. 외향성 외에 인기에 영향을 줄 것 같은 요소(참가자들의 외모, 학력, 재력 등)에 있어 두 조건이 동일하도록 사람들을 각 조건에 무작위로 배치합니다.
한 조건에서는 사람들에게 외향적으로 행동해보라고 하고 다른 조건에서는 내향적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평가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두어 과제를 수행하는 참가자들을 직접 만나게 하거나, 관찰하게 한 후 그 사람에게 얼마나 호감이 가는지 등을 묻습니다. 그러면 외모, 학력, 재력 등이 동일하나 외향성만 다른 두 조건 사람들 중 어떤 조건 사람들이 더 많은 인기를 얻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겠지요.
물론 실험도 단 한번 한 결과를 가지고 ‘결ㅋ론ㅋ’ 이럴 수는 없습니다. 조금씩 다른 상황에서도, 실험실 밖에서도 비슷하게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되느냐가 중요한 이슈이지요. 그래서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는 데에도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9개의 실험 및 상관연구들이 포함되게 됩니다. 그래서 논문이 그렇게 긴(읽기 짜증나는) 것이지요.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한 게 간단하지 않게 된 것 같아 왠지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인간에 대해, 관계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는 게 어떤 건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정보를 드릴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ㅇㅇ심리학’이라며 이런 저런 정보들을 이야기 하면 상관이나 실험 데이터가 있는지, 레퍼런스가 있는지 묻는 까칠한 소비자가 되길 바라며(?)
참고 문헌
Clark, R. D., & Hatfield, E. (1989). Gender differences in receptivity to sexual offers. Journal of Psychology & Human Sexuality, 2, 39–45.
Conley, T. D. (2011). Perceived proposer personality characteristics and gender differences in acceptance of casual sex offer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0, 309–329.[/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