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였던가. 재개발, 노사 분쟁, 뭔가 이슈가 생길 때마다 두 글자 단어가 꼭 따라붙는다. 언제부터 이토록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첨예한 이슈에 대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그 두 글자에 대해서만큼은 심대한 사회적 문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것을 사람들은 ‘용역’이라 부른다.
이미 원래의 사전적인 의미에서 한참 이탈해버린 ‘용역’을, LA타임스는 이렇게 묘사했다. (美 LA타임스, 한국 재개발 용역업체 이례적 보도 – 경향) “경찰 등이 처리하길 거부하는 재산권 분쟁에서 종종 폭력을 동반한 용병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 “젊은 남성들로 이루어져 법적 사각지대에서 임대인, 기업인, 심지어 정부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협박이나 폭력을 동원하는” 이들. ‘용역’이란 이름 대신 아무래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 듯싶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자.
용역을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대집행’ 과정에서다. 그렇다면 대집행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행정관청으로부터 명령받은 행위를 그 의무자가 이행하지 않을 때, 행정관청이 직접 또는 제3자로 하여금 권리자를 대행하는 일”이라고 한다. 멋들어지게 (그리고 알아듣기 어렵게) 설명되어 있는데, 보통 이런 얘기다. 불법 건축물이나 노점상, 또는 재개발 지역의 기존 건물 등을 철거할 때 그곳을 점유하던 사람들이 “예 알겠습니다”하고 물러나지 않으면, 그들을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 강제로 쫓아낼 수 있다는 얘기. 그런데 보면 이 과정에 행정관청이 직접 나설 수도 있지만, 제3자로 하여금 하게 할 수도 있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제3자, 즉 대집행이 시행될 때 실제로 사람들을 ‘쫓아내는 일’을 맡는 제3자가, 소위 ‘용역’이다.
사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이 행정대집행을 뉘라서 함부로 ‘그르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마는, 문제는 ‘용역’이 이 일을 떠맡는 순간부터 이 장이 아비규환, 아수라장이 된다는 것이다. 2007년 보도된 SBS의 짤막한 보도 꼭지 하나를 살펴보자. “수십 년째 되풀이되는 철거폭력, 이유는 뭘까”라는 제목의 이 보도에서 기자는 “행정집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해 정작 그들에게 대집행을 맡긴 관청은 나 몰라라 하고 있고, 경찰은 행정집행에 간섭할 수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한다.
MBN이 보도한 “재개발 ‘철거반 폭력’ 왜 반복되나”란 제목의 기사는 철거 과정에서 불거지는 폭력 문제의 원인을 다룬다. 철거 과정에서 용역업체가 행사한 폭력에 대한 법적 처벌이 미흡하고, 시간 내에 철거를 끝내지 못했을 때 보상 문제까지 얽힌다는 것. 철거 신고 없이 집을 부숴도 벌금은 30만 원에 그치지만, 철거를 제때 끝내지 못하면 재개발 조합에 억 단위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런 현실이 결국 대집행 과정에서 속도전을 낳고, 속도전 속에서 폭력과 충돌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폭력과 충돌에도 불구하고, SBS의 기사가 지적했듯 관청은 나 몰라라 하고 경찰은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니, 여기에선 공권력의 권위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지경이다.
그렇다면 ‘용산 참사’는 어떠했는가? 경찰과 용역업체가 합동으로 진압작전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실제 경찰과 용역업체 간의 무선 내용이 공개되기도 해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용역업체가 경찰의 진압 장비인 ‘물대포’를 시위대에게 발사하기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폭력을 수반한 공권력이 경찰이나 검찰, 행정 기관을 대신해 ‘용역’이라 불리는 사적인 집단에 주어진 것이다.
그들은 이런 ‘대집행’ 과정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노사 분규에서도 그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우선 아주 건조하게 용역의 존재를 보도하는 기사를 살펴보자. MBN의 “유성기업 용역-노조 충돌… 20여 명 부상”이란 제목의 기사다. 노사 분쟁이 벌어진 유성기업에서 노조원들이 직장 폐쇄에 반발, 공장 진입을 시도하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 직원과 충돌하여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지적된다. 대포차를 이용, 인도를 걷던 조합원들을 덮쳤다는 의혹이나, 노조를 흔들기 위한 목적으로 성적인 언사 등 성폭력까지 가했다는 주장은 대표적. 이처럼 노사 분쟁에서 불법적인 폭력이 있었다는 의혹은 거의 늘 제기되는 것이지만, 정작 이러한 의혹에 대한 공권력의 수사는 미흡하다.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미성년자를 용역에 투입하여 물의를 빚었다는 얘기도 있다. 유성기업에 투입되었다가 도망쳐 나왔다는 한 청년의 이야기는 씁쓸하다. 복지는 물론 최소한의 휴식조차 보장되지 않는 작업 환경은 잔혹해 보이기까지 한다.
용산 참사가 보여주듯이, 재개발이나 불법 건축물 철거, 노점 철거 등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세입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자릿값’ – 권리금 문제는 대표적. 법적으로 보장할 방법이 마땅찮으면서도 현실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또한 그것을 일순 철폐할 수 없음은 물론 줄여 나가기조차 어렵다. 노점은 분명한 불법이지만 종종 노점상의 생존권 문제가 대두해 이에 관한 판단을 어렵게 한다. 이런 모순을, 행정 권력은 용역이라는 제3자를 투입함으로써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는 한 대학생이 등록금 압박에 ‘용역업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거기에 적응해가며 급기야는 친구에게 “완전 깡패 다 됐다”는 얘기까지 듣는 ‘현실’을 만화화한다. 이건, 만화 속에 담긴 세상만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바로 그 현실이다. 그 현실이 이제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