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큰 사건에서, 각 문제들은 개별적이되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사회현상에 대한 실질적 개입과 해결을 위한 기본 전제다. 각 문제들이 개별적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는 지나치게 크고 복잡한 덩어리가 되어 해결 불가능이 되어버리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무시하면 당연히 제대로 된 해결이 아닌 임시 땜질만이 가능하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문제들을 적당히 뭉뚱그려서 A 문제와 B 문제를 서로 상쇄시키려고 하거나, A 문제에 대한 판단에서 개판을 쳐놓고는 B 문제로 단순히 화제를 돌리는 방식들이다.
도심 재개발 전략의 층위
예를 들어 용산참사의 경우, 당연히도 여러 층위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겹겹이 쌓여있다(그런 측면을 살짝 드러내기 위해 이전의 포스팅에서는 ‘토막들’의 형식을 표방했다). 우선 도심 재개발 전략 자체의 행정적 층위가 있다. 최근 재개발 사실을 알면서도 3억 들여 업종 변경하고 인테리어에 넣었다는 세입자 사례가 “3억을 동원하는데 그게 서민이냐”니 하는 좀 비생산적인 논의로 굴러다니곤 하는데, 그 사안은 보상금이나 다른 것보다 당장 재개발 전략의 차원에서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던져준다. 여하튼 그 상점주인은 재개발이 결정 난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철거가 들어가기까지 수년의 기간이 있을 것을 상정하고 그동안 장사로든 보상으로든 투자금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런 경영결정을 내린 것이니 말이다.
물론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고 응당 그에 대한 자신의 책임이 있지만, 미친듯한 속도전으로 냉큼 철거 일정을 잡아버려서 기존 재개발 사업의 타임라인 관행을 깨버리고 시장 혼란을 야기한 행정당국의 신중하지 못한 조급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그렇다, ‘보수주의자’를 자청하는 분들은 이 대목에서 정부와 지자체에 분노해주심이 맞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시설계, 지역행정에 관심과 지식이 있으신 분들이 논의를 발전시켜주심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실제 법과 제도로 이을 수 있는 구체성으로. 예를 들어 이런 류의 이야기라든지(클릭).
지주와 세입자 간 협상이라는 층위
또 재개발 지역 안에서 지주와 세입자 간 협상이라는 민사적 층위가 있다. 이건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텐데, 하나는 공정한 협상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조율장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개별 사례의 특수성이다. 제도적 조율장치의 층위에서 관건은 협상의 모든 근거들이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일관된 기준으로 적용 가능해야 하고, 협상과정 혹은 그 이후에 사적 폭력 등 강압을 동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capcold는 이전에 3가지 요소를 언급했는데, 바로 1) 공적 중재위 운영, 2) (평가자료 없는) 권리금의 불법 규정, 3) 용역깡패업체에 대한 거액 민사소송 루트 확보.
지주들의 개발조합이든, 철거민 측을 지원하는 이익단체든, 근거와 제도로 비폭력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동산 전문가, 경영이나 미시경제학 쪽의 분들이 제격일 듯싶다. 반면 개별사례의 특수성은 그 외에 개별적으로 나타나곤 하는 요소들, 즉 개개의 잘된/잘못된 투자 사연들을 이야기한다. 이런 건 부동산 분야 민법쪽으로 관심 많은 분들이 풀어주시면 베스트.
그리고 당연히, 협상에 문제가 생겨서 농성과 진압이라는 극단적인 구도로 갔을 때 그것을 어떻게 수습하는가에 대한 공공안전의 층위가 있다(공안이라고 줄여서 말하면 뉘앙스가 이상해져서…). 핵심원칙이야 물론 농성은 3자 민폐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진압은 희생 없이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3자 민폐 없이 농성이 주목을 끌기는 힘들고 진압과정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높은 기술적 숙련도와 정확한 지휘가 요구된다.
철거민들이 망루를 쌓고 농성을 하는 패턴을 타는 이유는, 사안을 알리는 시위로서의 목적도 있기는 하지만 핵심은 자신을 인간방패로 삼아 하루라도 더 오래도록 철거작업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철거를 못 하고 있는 동안에는 추가협상의 여지라도 있지만, 철거가 되고 나면 정말 기댈 곳이 없으니 말이다. 반면 개발조합의 입장에서는 재협상은 하지 않고 하루라도 먼저 밀어야 이득이니, 주판알 튕긴 다음 사적 강압수단(그러니까, 용역깡패)을 동원한다. 그러다가 영 수습이 안 된다 싶으면 결국 공권력이 출동. 그런데 목표가 ‘일치’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공권력이 용역깡패를 그냥 방관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협력하는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제대로 된 공권력이라면 용역깡패들도 몰아내고, 농성도 진압하고 둘 다 해줘야지.
여튼 아예 농성이 필요없이 제도적으로 협상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특정 요건이 충족되면 재개발 가처분을 걸 수 있도록 하면 베스트지만, 이왕 사법처리 각오하고 농성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면 역시 새총이나 화염병 같은 발사형 무기보다는 바리케이드와 죽창장벽 같은 확실한 방어진지형 도구로 한정 지으면 안될까. 그리고 어차피 투포환 선수가 아닌 한에야 길 건너 닭장차까지는 닿지 않으니까, 공연히 화염병 던져서 길거리에나 떨궈서 3자들을 위험하게 만들지 말고.
그리고 공권력은 진압을 하겠다면, 길 건너에 지네 차들을 표적판처럼 세워놓고는 중간 도로는 통제도 안 해서 불바다를 유도하지 좀 마시길… 차라리 차를 건물 쪽으로 세워서 그냥 불똥 좀 맞더라도 일반 시민들을 좀 보호해달라고!!! 즉 공권력은 진압에 있어서 제발 안전매뉴얼 지키고, 사전 연습 좀 하고, 현장 상황 담당자들의 판단을 믿고(“신나 불에 물을 뿌리면 X됩니다!” 라든지), 사적 폭력과 어떤 식으로든 손잡지 말고, 무엇보다 지조때로 조급해 하지 말고 타이밍을 제대로 만들라고. 안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경찰조직의 치안능력을 신뢰하겠냔 말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경찰학이라든지 사회운동 전문가들이 더 풀어줘야 할 사안.
사회가 파악하는 담론 방식이라는 층위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이 사안을 사회가 파악하는 담론 방식에 대한 층위다. 하나는 저널리즘이라는 제도화된 루트를 통한 것, 다른 하나는 블로그나 게시판이라는 온라인 담론 같은 개인화된 루트를 통하는 것, 그리고 하나 더 하자면 그 두 가지가 종종 슬쩍 섞이는 것.
왜 제도화된 저널리즘이 이 참사 사건에 있어서 실시간 생방송의 역할이 사적 블로거들이나 아마추어 보도인 정당방송 등으로 넘어가도록 방치했는지, 왜 그 이후의 후속 보도들이 급속하게 정파적 이해(라기보다 방송진출 같은 자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나 노골적인 의제설정을 선택하고 있는지 혹은 아예 보도지면에서 밀려났는지. 왜 지금 이 포스팅 같은 “전체적 이해틀 펼쳐놓기” 기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등장하지 않는지. 그런 상태에서 KBS는 낙하산 사장이 친정권적 개편 행보에 항의하는 이들을 잘라서 현장기자들이 제작거부 중인 와중에, 간부급들이 보도를 맡아 더욱 친정권스러운 아니 좀 꼴통스러운 보도를 만들곤 했다. 여튼 저널리즘판 의 각각 기업들의 이해관계, 업계의 큰 추세(예를 들어 자극적 대결구도 위주의 뉴스라든지, 기계적 중립 요구라든지, 줄어드는 투자와 함께 스테디하게 하락하는 취재품질이라든지 등등) 등이 서로 엮이면서 쌩쑈를 만들어가고 있다. 언론학 쪽의 훌륭한 논문연구감. 다만 이런 사안들을 시의적절하게 다루기에는 학계의 시스템이 지나치게 느리고 경직되어있다는 결정적 단점도 있고.
반면 개인화된 담론 루트의 경우 애초에 입장에 의거한 주장이 훨씬 보편적이다 –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이쪽의 경우는 어떻게 해서 용산사태에 관한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엉뚱한 다른 사안이나 혹 그냥 거대한 세계관 문제로 확장되는가를 바라보는 쪽이 더 흥미롭다. 예를 들어 강자/약자, ‘서민’ 같은 사실 꽤 임의적인 주관적 잣대를 놓고 다투는 것은 실제 이 사안 자체보다도 좀 더 큰 세계관에 그대로 맞닿으니까.
물론 이야기가 그쪽으로 튀는 것은 “시위대는 약자니까 극단적인 수단을 쓸 수 밖에” “가게에 수억 투자할 수 있고, 투쟁에 천만 원씩 각출하는데 뭐가 약자임” “제도적으로 자신들을 반영시킬 방법이 없으니 약자 맞음” “민폐 끼치지 말고 혼자 열심히 고생하는 게 아름다운 것임” “그런 고생 좀 덜해도 되게 국가라는 걸 하는 거야” 뭐 그런 식의 논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거지만 말이다(물론 사실은 죽은 이들을 무슨 부록 취급하거나, 정파적 입장에서 상대진영을 비웃기 위해 아무 자료나 대충 짜깁기하는 야매질 같은 수준 이하의 짓거리들이 더 많이 오가곤 하지만, 굳이 그딴 걸 다루느라 시간낭비하지 말자).
이쪽의 경우는 정보의 근거를 확립하는(혹은 확립하지 못하는) 과정, 이오공감의 신고소동에서 보였듯 타 의견에 대한 폭넓은 불관용, 논의 축적보다는 승부에 집착하는 패턴, 하나의 논의를 정리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기보다 상쇄와 물타기로 흐르는 방식 등이 지켜볼 만한 점들이다. 여론으로서는 가치 있고 덕분에 책임자 처벌에는 나름대로 힘이 되겠지만, 정작 유사 사태 예방에는 도움이 되는 내용이 적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여튼 미디어 전문가들에게 또다시 대형 소재 떡밥이 투하되었으니 좀 풀어줘야 할 영역.
수많은 층위의 ‘얽힘’
아 뭐 여튼. 그러니까 이런 층위들, 그리고 아마 까먹고 넘어간 또 다른 층위들은 모두 개별적이되 연결되어 있다. 각각 영역에서 나름대로 더 세부적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여러 층위를 모두 뭉뚱그리기보다는 자기 할 수 있는 쪽으로 공략하는 게 맞고,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서로 연동되는 부분을 합쳐나가는 것. 다만 예를 들어 capcold의 경우는 집중 관심분야는 아니지만, 현재 과잉진압 사안의 수사과정에서 계속 더욱 깊숙한 야매의 증거들이 (민주당의 증거자료 폭로로) 나날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이거 사람들의 여론이 계속 관심 기울이지 않으면 도대체 어디쯤에서 대충 매듭지어버릴지 모르겠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쪽에도 어쩔 수 없이 일정량의 관심을 둘 수밖에 없더라.
만약 조만간 수사가 납득할만하게 마무리되면, 그때는 또 재개발 제도 자체에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정석이다. 그동안 누군가가 협상방식에 대한 제도를 입법하도록 자기 동네나 지지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어주고(사실 이런 걸 주도하는 건 17대 국회에서는 심상정 노회찬 이런 이들이 적역이었는데, 진보 진영의 현 상황이…). 반면 원래의 집중분야인 저널리즘과 개인화된 담론들이 만들어가는 바람직한 다이내믹에 대해서는, 이번 건을 소재 삼아 시도때도없이 계속 무언가 사고하고 주장을 할 터이다.
무려 이 정도만 해줄 수 있어도, 제한된 집중력만을 가지고 있는 대형 민주사회의 시민치고는 감지덕지할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라고 본다. 그 이상도 물론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너무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라는 속도전™은 무리무리. 그럼 다들 새해에도 즐 블로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