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 시리즈는 견종 전문가 Mastiff의 지식과 이야기꾼 아츠히로의 협업에 의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남자의 개를 소개한다
현재 우리는 ‘개’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멍뭉이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우리가 테크라는 단어를 말할 때 애플과 삼성의 구도를 생각하고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을 연상하듯이. 그런 기술들의 원천이 세계대전과 냉전 때의 전쟁을 위한 원천기술에서 파생되었다고는 우리는 망각하곤 한다. 그리고 개라는 ‘인간의 친구’가 한 때는 도구이며 살육, 투견, 사냥에 이용되었다는 것을 망각하기도 하고.
개의 본질은 싸움이고 투쟁이다. 현재 남아있는 개들도 거슬러 올라간다면 결국 그런 투쟁과 맞닿게 된다. 그렇다면 개의 본질이란 현재의 귀요미보다는 힘쎄고 강한, 전투종족이 아닐까? 특히 우리나라의 아파트 위주의 주거환경에 따라 소형견들이 대세가 됨에 따라 대형견, 전투적인 남자의 개는 설 자리를 잃어가는 편인데, 사실 개의 본질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이번 시리즈는 그런 개의 본류를 거슬러 올라가 전투적인 견종들, 강한 견종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보려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선 첫번째로 소개할 견종은 마스티프이다.
현재는 개별 견종이라고 보기보단 ‘테리어’, ‘하운드’, ‘스피츠’와 함께 견종타입의 카테고리 중 하나로 여겨지며 개별견종으로 따지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형견의 시조, 아버지들의 아버지와 같은 의미가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첫번째 시리즈는 조금 억지스럽더라도 앞으로 소개할 ‘남자의 견종’의 뿌리를 한 번 짚어본다는 점에서 이렇게 시작하도록 한다.
콜럼버스의 두 얼굴
위인전에서 꼭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한 인물, 이탈리아 출신의 항해사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사람들에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선구자이며 유능한 리더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벌인 악행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항해시대 혹은 후추의 시대, 그는 어떻게든 후추가 지천에 널린 인도의 항로를 찾아 인생 역전을 꾀하고 싶었다. But 그에게는 인도까지 항해를 시도할 만한 함대도 선원도 없었다. 말 그대로 시정잡배. 그저 계획만 가지고 있었던 전형적 과대망상의 백수였던 그는 포르투갈의 주앙 2세를 비롯한 각국의 왕들에게 접촉해 지원을 요청했지만, 허술한 계획과 과도한 요구로 가는 곳마다 번번이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러다 구라가 좋았던 건지 운때가 맞아 얻어 걸린건지(…) 마침내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에게 3척의 함선과 120명의 선원을 지원받게 되어 후추의 성지 인도를 향해 떠날 수 있게 된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가 후추를 얻어오겠다고 하자 그를 해군제독에 임명하고, 그가 발견하는 것의 10%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선박 두 척과 승무원들을 제공했다. 거기에 동원된 승무원들은 사형수와 범죄자들. 죽어도 상관없는 인물을 지원하는 것으로 볼 때 이사벨은 큰 기대를 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애초에 거리계산도 잘못해서 사람들은 “이건 미친 짓이야! 이놈은 굶어죽고 말거야!” 라고 외쳤지만 신경쓰지 않고 강행할 정도로 콜럼버스는 또라이였다. 당초의 계획대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인도에 도달했다면 그는 분명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과 인도 사이에는 우연히도 아메리카 대륙이 존재했고 운 좋게 살아남은 그들 일행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게 된다. 물론 콜럼버스는 그게 인도라고 믿었고 기적의 수학가로 등극하게 된다.
콜럼버스는 그곳을 인도로 알고 상륙했고 돌아가서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사실 반 바퀴도 못 돌았는데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후추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원주민들이 금붙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진 후 30명의 부하를 남겨둔 채 돌아왔다.
목적이었던 후추는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일단 사기였고 임무 실패였지만, 콜럼버스는 그 대신에 막대한 금을 가져오겠다며 다시금 지원을 요청한다. 이사벨은 아마 꺼림직했겠지만 이미 지원을 했던 것 때문에 본전의식을 느껴서일까? 한 번 더 콜럼버스에게 지원을 결심한다.
2차 원정에서 콜럼버스는 도합 17척의 배를 지원받게 된다. 1차 원정과 달리 이때는 배에 대포도 장착하고 선원들을 칼과 갑옷, 총으로 무장시켰다. 1차처럼 면죄부를 전제로 여전히 범법자 선원을 모집하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전직군인도 포함돼 있었을 정도로 지원규모가 확대되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 보니 30명의 부하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원주민들을 강간하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약탈을 하는 등 행패를 부리다 식인종 부족에게 제압당해 잡아먹히고 만 것.(명불허전 야만적인 서양 오랑캐들!) 그는 빡치기 보단 오히려 웃음을 지었다. 이를 명분 삼아 살육을 벌이기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아버지를 잃고 서주를 침공할 정당성은 얻은 조조와도 같다고 할까?) 식인종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의 죄 없는 원주민들까지 창칼로 찔러 죽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금들을 긁어모아 본국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계속해서 확장되는 지원에 비해 원주민들의 금붙이들은 기대치만큼 많지는 않았다. 콜럼버스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금을 약탈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고, 3차 원정에서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원주민을 학살하고자 맹수 사냥용 초대형 견을 데려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협박했다. 그 맹견은 사람보다 빠르게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마구 죽였고, 콜롬버스는 많은 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해피엔딩(?)
원주민의 빠른 학살을 위해 콜롬버스가 데려갔던 견종. 그것은 바로 마스티프였다.
고대의 전투견
마스티프의 역사는 상당히 길다. 기원 전 3,000년경 이집트 회화에 이와 비슷한 개가 그려져 있으며, 중국에도 기원 전 1,100년경의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의 이름은 아시리아에서 이 개의 토우(土偶) ‘마스테나스(mastenas. 라틴어로 현관이란 뜻)’에 묻어 마귀를 쫓은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3가지 종으로 구분하는데 ‘올드 잉글리시 마스티프’ 그리고 ‘티베탄 마스티프’ 그리고 ‘도사견(재패니즈 마스티프)’가 그것. 하지만 마스티프란 이름이 붙지 않은 견종 중에도 전투적인 견종 대부분은 마스티프의 피를 어느 정도라도 이어받은 것. 가히 아버지들의 아버지라 할 수 있겠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견종 중 하나로 약 2천년 전부터 영국에선 전투용, 맹수사냥용으로 사육되었다. 당시 원주민인 켈트족(갈리아인)이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BC 55년에 카이사르가 전리품으로 획득해 로마로 데려오면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콜로세움에서 맹수와 대등하게 싸우며 투견의 원조격이 된 것. 어쩌면 투견이라는 스포츠(?)가 생긴 것은 고대의 마스티프 덕이 아닐까?
매우 크고 사나워서 전투견이나 풍장견(시체 처리견) 등으로 이용되곤 했는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에 동원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자료 등을 봤을 때 고대의 마스티프는 우리가 현재 남아있는 마스티프의 후손을 보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지 않았을까? 그 전투본능과 파워에 있어서 말이다.
가장 잔인하고 강력한 개에서 이미지가 바뀌기 된 것은 1415년 전투에 동원되면서부터였다. 아쟁쿠르(Agincourt) 전투에 마스티프는 군견으로 참전하게 되었는데, 그때 한 마스티프는 부상당한 주인 옆에서 동료 병사들이 구하러 올 때까지 그 살벌한 전장 속에서 몇 시간이나 주인 곁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던 ‘병기’ 속에 숨어있던 충성심과 따스함을 느끼게 된 사례. 개새끼지만 우리 개새끼라는 명언이 생각나는 순간. 그 전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 목표만을 향해 달려드는 정말 ‘머신’이란 시각은 통제할 수 있고 공감이 가능한 ‘전우’로 바뀌게 된다.
호재가 겹쳐 그 전까지 도박용 투견이나 전투견으로 이용되던 마스티프는 1853년 빅토리아 여왕이 법으로 투견을 금지함에 따라 번견이나 군용견으로 개량되었다. 그 과정에서 흉폭함 등은 완화되었고 이전의 피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호사마다라고 이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사람을 살리기도 벅찬 상황에서 마스티프들은 방치되어 잡종화됨에 따라 멸종의 위기를 겪기도 한다. 이후 마스티프를 기반으로 생성되었던 불 마스티프의 피를 빌려 부활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새옹지마로 좀 더 얌전하고 순수한 성격으로 개량되게 된다.
죽고 죽이는 나선에서 내려간다.
잔혹했던 과거와 달리 의도적인 개량과 의도치 않았던 혈통복원 과정을 통해 마스티프는 온순하고 반려동물로 삼기에 좋은 견종이 되었다. 충실한 성격에 주인과 가족들에게는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응석을 부리곤 한다. 덩치가 큰 다른 견종들이 그렇듯 다른 개에 대해서도 부드럽게 대하는 편이라 싸움이 일어나는 일도 많지 않다.(강자의 여유) 그런 호의적인 성격이면서 낯선 사람에게는 경계심이 강하고 무뚝뚝하기에 번견, 경비견으로 적합한 편. 그리고 주인 입장에선 자신에게만 친절하다는 점이 더 뿌듯하게 느껴진다는 감정적인 이점도 있다.
물론 체구가 크고 성장이 빠르기에 사료가 많이 들어간다는 건 부담스러운 점 중 하나. 아무리 온순해지는 과정을 겪었다곤 하나 야성이 강한 편이라 만일에 대비해 복종훈련은 필수로 해 두어야 한다. 아무리 온순한 성격이라 하더라도 덩치가 큰 이상 우발적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피해가 클 수가 있기 때문에. 치와와가 물면 예끼 요놈! 하겠지만 마스티프한테 물려본다면??
한 때는 킬링머신이었지만 지금은 덩치 값 못하는 순둥이로 거듭난 마스티프. 충실하고 애교많은 마스티프의 모습을 보면 피를 부르는 검, 피에 갈구하는 저주받은 검에서 벽에 걸어놓은 외양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지는 장식도로의 변화라고 할까? 덩치와 파워가 쓰일 일이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일까? 글쎄. 오랜 세월동안 충분히 잔혹의 소용돌이를 겪어온 마스티프는 이제 안락 속에서 덩치값 못하는 허당으로 살 자격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