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우리는 언론, 방송 등에서 하는 이야기를 공익적인 정보라고 여기며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여 왔다. 주요 방송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등장한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이고, 다음날 신문은 그 정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하며 증폭시켜왔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다음날 점심시간의 화두가 되고,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입에서 입으로 반복되며 그것은 관념처럼 뿌리 깊게 자리 내렸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믿고 형성된 관념 중 실제로 검증된 것들이 얼마나 될까? 관념의 진위 여부를 엄밀하게 되짚어 본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그중에는 우리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검증하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도 많다. 모든 것들을 검증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엔 일반 상식으론 가늠할 수 없는 것들도 많으니까.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우리가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인데.
뉴스, 가장 대표적인 사례
먼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자.
무엇보다 먼저 뉴스가 떠오른다. 근래 ‘기레기’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부적절하고 과잉된 정보가 무차별하게 양산되고 있다. 구독자의 충동적 클릭을 유발하는 사례, 대상의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이슈가 될만한 내용을 서로서로 베껴 쓰고 있다. 심지어는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다. 필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상당수의 언론은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현시대에 난립하는 방대한 데이터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방송에 패널로 초대된 전문가들 역시 자극적인 허위, 과장 정보를 남발하고 있다. 식품 전문가의 천일염의 효과 과대포장, MSG나 인공조미료의 섣부른 위해성 언급, 일부 한의사들의 부정확한 정보 제공, 헬스 트레이너들의 운동 효과 과장 등의 사례들은 너무도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또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한 정보를 걸러내지 못하는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 정보보다 내부 정보를 우선해서 보여주며, 그 근간은 지식인, 블로그, 카페 등에 치중되어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그런 구조를 역이용해 자신의 정보(홍보)를 우선 노출하기 위해 갖은 편법을 동원하고 있으며 포털은 효과적으로 필터링해 정확한 정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중개 업소로 방문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네이버 부동산, 자동차 사이트의 낚시성 허위매물 사례 같은 것들은 정상적인 것이 없다고 볼 정도로 빈번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례들은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이 여러 분야에 광범위하다.
그렇다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런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어떤 것일까?
바로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의 이익만을 따진 ‘고의적 허위정보’ 즉, 노이즈이다.
신문은 기존의 광고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겼다. 광고주들은 더 이상 불확실한 구독자 수와 열독률에 근거해 효과 측정도 어려운 광고를 싣지 않는다. 종이 신문이 줄어든 것과 달리 신문사의 수는 증가했다. 인터넷의 보편화로 신문 창간의 비용 또한 현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컴퓨터 한 대와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누구나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최소한의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방송 역시 매체의 증가와 다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채널이 늘고, 인터넷 사용 시간과 서비스의 종류도 다양화되면서 더 이상 일방향적인 방송을 장시간 시청하지 않는다. 시청 총량은 줄어드는데 떨어지는 시청률을 잡기 위해선 말초적 소재나 자극적 전개가 자주 이용될 수밖에 없다. 시사, 교양, 정보 프로그램까지 그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외의 사례
부동산 중개업은 어떨까? 애초에 IMF 이후 쏟아져 나온 실업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자영업 장려책으로 공인중개사들이 과잉 공급되었다. 소자본 창업과 높은 수익에 매료된 점도 클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거래의 총공급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중개 수수료를 매개로 하여 가격 경쟁이라도 벌여보겠지만 수수료는 거래 증대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결국 수요자의 시선을 끄는 허위 매물이라도 올리는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중고차나 여타 중개 거래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인터넷 포털도 이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정보를 효과적으로 필터링하지 못한 채, 자체 DB에 의존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아직은 ‘한글’이라는 언어의 벽으로 보호받고 있지만, 정보의 신뢰성 저하와 사용자 스트레스는 갈수록 늘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사례의 원인을 일률적으로 추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통합적 관점으로 볼 때 유추되는 공통점은 해당 매체가 다른 매체의 대두로 경쟁력을 상실해가거나 또는 산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악화가 구축해가는 양화를 구조할 수 있을까? 나쁜 기사를 걸러내고 좋은 기사를 쓰고,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패널의 출연을 막고, 허위 매물을 올린 중개업소를 처벌하고, 네이버에 광고 글을 올린 이들을 차단하는 것으로 해결이 될까?
어려울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 자체에 답이 있다. 16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말은 순도가 떨어지는 금, 은화가 순도가 높은 금, 은화를 사라지게 한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악화의 통제는 대부분 실패했고 화폐 시스템 자체를 변화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보는 여전히 중요하다
악화의 양화 구축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조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가 장기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은 단발적으로 치명적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기실 총량을 따지면 어떠한 사례보다 피해는 광범위하고 크다. 장기간에 걸친 노이즈는 이용자의 피로도를 높이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결국 이런 노이즈는 관념에 뿌리내렸더라도 언젠가는 제거되고 교정된다.
중장기적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또는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중개인과 매체, 전문가의 ‘노이즈’는 그 속에 ‘양화’가 혼재되어 있더라 할지라도 ‘악화’와 함께 제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악화의 증식을 내부에서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매체와 시스템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은 어떤 분야던 동일하다.
사회는 역사와 진보의 과정 속에서 시행착오와 함께 좀 더 정확한 것, 실수하지 않는 것, 노이즈를 만들지 않는 것, 나의 시간과 선택이 허비되지 않는 것의 합리성을 선택해왔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광고는 타겟팅된 맞춤형 광고로 변화되어 가고 있고, 매체에 노출되는 정보는 실시간으로 검색되며 검증된다. 시스템과 룰은 점차 개선되고 복잡한 사례도 표준화, 간략화되어간다.
‘부동산 중개인’을 예로 들자, 기실 현시대 주택 거래에 중개인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과거처럼 주택의 형태가 다양하지도 않고 살펴야 할 조건도 많지 않다. 현시대 주택은 몇 종류 되지 않는 원룸, 빌라, 아파트 등의 형태로 규격화되었다. 무엇보다 인터넷의 보편화로 수요자와 공급자를 찾는 것 자체도 쉽다. 그간 신용의 문제로 ‘고가의 실물’이라는 것 때문에 거래를 꺼렸을 뿐이다.
하지만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쌓인 인터넷 거래의 신뢰는 고가품 실거래도 가능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개인 간 ‘원룸’ 직거래의 물꼬를 튼 ‘직방’ 같은 서비스는 머지않아 ‘아파트’도 그 바운더리 속으로 집어넣게 될 것이다.
특별한 가치를 하지 못하는 중개업자에게 수십, 수백만 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내야 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 가치를 하지 못하는 거래의 비용은 최소한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인터넷으로 가장 고가품인 아파트의 거래까지 가능하게 된 데는 지난 20년간 쌓인 보이지 않는 ‘신뢰’가 자리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인터넷에서 산 물건이 정말 올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언론, 방송도 마찬가지다. 낚시 기사는 필터링 될 것이고 전문성 없는 기사, 사실 근거가 불분명한 나쁜 기사들은 퇴출당할 것이다. 이미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져 있고 신문 서비스가 오랫동안 쌓은 신뢰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 패러다임이 변화된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정보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니 지금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그 자리에 ‘소비자가 원하는 올바른 정보의 효과적이고 빠른 전달’이 무엇보다 큰 가치로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가운데 악화의 증식을 억제하고, 그 가치를 이어가는 매체는 오랫동안 살아남지 않을까.
원문 : 내일의죠, 탐구하고 실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