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경제든 마찬가지다. “그깟 성장 좀 안하면 어떠냐. 아웅다웅 안하고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살면 되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성장이 멈추면 성장을 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 문제들은 결국 성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데 한 번 정체되면 다시 성장모드로 진입하기 어렵다
기업에서 성장이란 보통 매출액의 증가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매출이 증가하는 기업이 수익성도 유지된다. 산업 내 경쟁이 심화되어 매출 마진이 감소하더라도 매출이 증가하면 영업레버리지 효과 덕분에 영업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다. 매출이 정체되면 수익성은 하락하고, 감소하면 적자가 나기도 한다
성장이 정체되면 경기변동에 매우 취약해진다. 성장하는 기업은 경기 침체기를 맞아 일시적으로 재고가 쌓이고 적자를 보더라도 나중에 그 이상으로 물건을 팔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하지만 성장이 정체된 기업은 재고가 쌓이면 안되기 때문에 극단적인 유연화를 시도해야 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인력을 짜르고 투자를 줄여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생존에 도움이 되나 길게 보면 성장동력을 상실하여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갉아먹을 수도 있다.
성장이 정체되면 내부의 견제와 다툼도 심해진다. 제로섬이거나 마이너스섬의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에 제몫 챙기기 경쟁이 심화된다. 서로간의 신뢰를 잃고 조직의 활력도 사라진다.
가장 큰 문제는 외부와의 경쟁에서 밀려버린다는데 있다. 이른바 붉은 여왕의 효과가 나타난다.
붉은 여왕은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경이로운 달리기 실력을 보유한 체스판의 말이다. 붉은 여왕의 세계에서는 주변 경치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있는 힘껏 달리지 않으면 안된다. 어딘가에 가고 싶다면 적어도 두 배의 속도로 뛰어야 한다.
“허리가 부러져라 일해야 겨우 남들처럼 먹고 산다” 자조섞인 말이지만 현실은 붉은 여왕의 세계에 가깝다.
스톨포인트(Stall point)라는 단어가 있다. 스톨이란 비행기가 속도를 잃고 서서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조종이 불가능하다. 기업도 매출 성장률이 멈추는 스톨포인트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50년 동안 포춘 100대 기업에 들었던 600여 기업의 스톨포인트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무시무시하다. 조사 대상 기업의 87%가 매출 성장 둔화라는 스톨의 덫에 걸렸다. 여기서 11%만이 스톨에서 벗어나 성장을 재개했고, 나머지 76%는 도태되었다.
스톨포인트는 예기치 못하게 나타난다. 스톨포인트에 빠진 기업의 58%가 매출 성장률이 상승하거나 안정세를 보이던 기업이었다.
스톨에 빠지는 이유의 70%는 전략의 실패였다. 시장 지위에 대한 과신(23%), 기술관리 실패(13%), 핵심사업의 성급한 포기(10%) 등이 대표적인 요인이었다. 과거에 성공했던 모델을 고집하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스톨에 빠진 기업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스톨의 기간을 최소화 해야 한다. 스톨포인트를 경험하지 않는다면 최상이다. 위의 조사에서 스톨포인트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한 기업도 13%가 존재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시장을 찾거나, M&A를 하거나, M/S를 늘려야 한다. 기업의 성장에서 시장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M&A가 30%, M/S확대는 20% 정도로 나타난다. 즉 기업이 같은 시장 내에서 경쟁사를 죽이는 것보다는 경쟁을 벌일 시장이나 산업을 잘 선택하는 것이 네 배 이상 중요하다.
경제와 산업이 성숙 단계에 이르러 성장 정체에 직면한 기업들이 너무도 많다. 질적 성장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이 시기를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질적 성장이라는 것은 새로운 성장을 위한 체질 개선과 학습의 시기라고 보는 것이 옳다. 결국은 새로운 성장 시장을 찾아야 한다.
얼마전 내가 쓴 건설 이슈 보고서에서 스톨포인트에 이른 선진건설업체의 새로운 성장전략을 3가지로 요약했다.
1. 인프라 운영 등 서비스업 진출 – 빈치
2. 신흥시장의 잠재력있는 기업 M&A – 혹티프
3. 첨단 기술이 필요한 신 시장 진출 – 사이펨
이렇게 분류를 하긴 했지만 위 3개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핵심 전략은 M&A였다. 결국 M&A에 대한 기피 성향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성장이 쉽지 않을 것이다.
원문: 마왕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