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편 : 이번에 밀양에 내려가셨었지요? 가서 그분들을 만나고 무엇을 느끼셨나요?
이 : 평범하다는 것이었어요.
편 : 평범하다고요? 옷을 벗고 몸을 쇠사슬로 묶어서 시위하는 할머니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이 : 네, 그분들을 말하는 게 맞습니다. 밀양에 갔을 때, 걸어가시는 할매들을 태워주면, 집이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도 일찍부터 계속 ‘여기 내려 주이소, 여기 내려 주이소.’ 하며 사양하시는 거예요.
편 : 차를 그냥 얻어 타는 게 미안하셨던 거군요.
이 : 한 번은 독감 걸리신 할머니를 집까지 태워드렸는데, 그 추운데 나와서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시더라고요.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요. 핸들을 돌려서 돌아오는데 눈물이 났어요.
편 : 아…
이 : 전 스스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분들을 보고 있자니, 이 분들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분들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보수적인 할매들이에요. 내외하는 문화도 남아 있고요. 폐를 끼칠까 봐 사소한 것도 많이 미안해해요. 아직도 여자로서 예쁘게 보이고 싶고 수줍음도 많이 타요. 그런데 옷을 다 벗고 쇠사슬로 몸을 묶으면서 시위를 했어요.
그 할매들이 원래 투사였을까요? 아녜요. 처음엔 ‘국가가 우릴 와 죽으라고 하겠노’ 하던 분들이에요. 지금 그렇게 격렬하게 시위하는 모습이 추한 모습일까요? 그것도 아니죠. 저는 그분들이 거인처럼 느껴졌어요. 평범하던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눈살을 찌푸릴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나? 그런 생각을 해야 해요.
편 : 그래서 이 <민중의 적 : 2014>를 기획하셨군요.
이 : 손가락 하나라도 거들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획한 것이지요. 다만 지금으로서 가장 두려운 것은, 이것이 잘못되어 오히려 할매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예요. 저희가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마음을 다치시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다른 문제가 생기거나…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어요.
그래서 연극이 끝난 후엔 관객과의 만남도 갖고 싶고요.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고 피드백도 궁금해요. 또 밀양 송전탑 투쟁으로 지친 밀양 할매, 할배들을 직접 모셔와서 함께 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싶어요. 관객들은 물론, 밀양 할매, 할배들과도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요.
편 : 사회극을 기획하시면서 뭔가 블랙리스트 같은 데에 오를 수 있다거나 하는 그런 걱정은 안 해보셨나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거나.
이 : 전 그렇게 주시해야 할 만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웃음). 주변에서 걱정하긴 해요. 너무 첨예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걸 할 거예요. 처음에도 말했듯이, 그 평범하던 할매들도 이제 밀양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나아가 원전 문제까지 이야기하죠.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어려움도, 결국은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니까요.
편 : 이 연극을 준비하면서 극작가로서 가장 힘드셨던 점은 무엇인가요?
이 : 타겟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여러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밀양의 문제를 알려야 한다, 밀양 할매들을 위로하고 싶다, 사회 문제에 관심 없던 이들의 지지를 얻고 싶다, 극으로서 완성도도 있어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힘들어요.
편 : 그래도 가장 중요한 하나를 고르자면?
이 : ‘썩는 하나의 밀알’이 되고 싶습니다. 관객이 많이 오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밀양의 이슈를 만드는 데 이 연극이 쓰였으면 좋겠어요.
미약하지만 이 인터뷰 기사도, 썩은 하나의 밀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이야기
이문원 연출이 자리를 뜨고, 몇 명의 배우들과 인터뷰를 조금 더 할 기회를 얻었다. 그들에게 사회극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묻자, 주인공 성도일 역의 김정석은 이렇게 대답했다.
김정석(성도일 분) : 저는 초등학교를 명동성당 뒤에 있는 좋은 초등학교를 나왔어요. 저희 집은 부자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부자학교를 간 거죠. 전 그 학교에서부터 계급을 느꼈어요. 가난한 애들은 대중교통으로 등하교하는데, 다른 애들은 기사가 데리러 왔지요. 저는 하교할 때 명동성당을 걸어서 지나갔어요. 명동성당 앞에는 항상 시위하는 사람들의 천막이 있었죠.
아직도 기억나요. 5.18 민주화 항쟁에서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의 시위가요. 잔인하게 살해당한 온갖 일반 시민들의 사진들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걸 보면서 생각했지요. “왜, 저 사람들은 땅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을까?”
김정석 배우는 그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극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일부러 찾아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이 작품을 작품으로 볼 뿐이며,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다고 했다. 그저 사회극이라는 이유로 피하지 않는 것뿐인 것이다.
김정석(성도일 분) : 사회 문제에 매번 관심을 갖고 있는 걸 아내도 알아요. 어느 날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으면,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하기로 했어요. 그러려면 ‘잘’ 해야 하죠.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회극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로는 의미가 없어요. 잘 연기해야 하죠. 완성도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작품으로서요.
최종원(영감 분) : 저는 밀양에 원래 관심이 있었어요.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대학생 때는 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었죠.
윤미현(할매 분) : 저는 사실 사회적 이슈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몸 사리고요.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에 FTA 때부터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하던 것과 너무나 다른 정치의 민낯에 깜짝깜짝 놀랐어요. 그러나 세월호 사건을 겪었어요. 일상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죠. 그때 느낀 거예요. 더 이상 남 일이 아니구나, 하고.
윤미현 배우는 연극을 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보낸지 8년이나 지났다고 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이 극을 알게 된 후 8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무대에 서려고 하고 있다.
최귀웅(권탁 분) : 저는 원래부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많았어요. 졸업 후에 ‘앵그리 볼트’라는 사회극 연출을 했고요. 마침 이번 작품에도 참여하게 된 거죠.
편 : 개인적으로 즐거운 상황이겠군요?
최귀웅(권탁 분) :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냥 사회극을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지 않으려면, 이게 하나의 연극 작품으로써 잘 만들어져야 해요. 그러려면 제가 연기를 잘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죄송합니다. ㅜㅜ
편 : 연기가 어려운 모양이군요. 다들 자신의 캐릭터의 어떤 점을 중점으로 연기하시나요?
김정석(성도일 분) : 처음엔 순진하게, 많은 사람들이 감정 이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중간자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공감하길 원했거든요. 그런데 이젠 그건 건방진 생각 같아요. 사람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아닌가 하고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연극이 세상을 바꿀 수 있나? 불가능하거든요. 이 공연을 보는 사람이 바뀌면 가장 기쁘겠지만 그게 힘들 거란 건 알아요. 그저 세월호 유족이건, 쌍차 사건이건,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이 사실은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계기가 있었다, 라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최종원(영감 분) : 영감은 스토리적으로 3가지 정도의 분기를 가진 캐릭터예요. 분노-통쾌-굽신, 이 세 가지죠. 캐릭터 변화의 폭을 잘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남과의 유대의식이 없고, 자기중심적이며, 권력 지향적인 인물이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인데, 저는 이런 인물이 외로워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악당이니까 악당답게 할 생각이죠. 다만 조금이라도 입체적인 특색을 불어넣어 보고 싶어요.
최귀웅(권탁 분) : 저는 지역 신문사 편집장이에요. 가장 민중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자기 신문사가 언론 플레이에 당하고, 송전탑을 몰아낼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될 때, 쉽게 자신의 입지를 바꾸는 거죠. 개인의 영달에도 욕심을 내고요. 다수의 입맛을 맞춰주면서, 자기편을 계속 배신하면서 살아남는 거죠. 그런데 이 배신이 납득이 되려면, 이 인물에 대해 납득을 시켜야 해요. 그런데 제가 이 인물에 공감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연기가 너무 어려워요.
최귀웅 배우가 어렵다고 하자 다른 배우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너랑 너무 다른 종류의 인물이야.’라고 동의해주었다. 자신과 신념이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윤미현(할매 역) : 저는 평범하던 경상도 할매가 반정부적 시위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캐릭터를 통해 알리고 싶어요. 나라가 왜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는가?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말하던 할매예요. 그러나 어릴 적부터의 소꿉친구가 분신자살한 뒤 뭔가 내면에서 달라지죠. 이 할매는 선동당한 것도 아니고, 돈으로 꼬임당한 것도 아니에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죽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고향에 대한 것을 지키고 싶어해요. 그러니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하려고 하는 거죠. 할매 한 분이 그러셨어요. ‘내가 반대하는 이유는, 그게 순리이기 때문’이라고요.
김정석(성도일 분) : 이 할매들이 비핵화까지 가게 된 이유가 뭘까요? 대체 누가 뭘했길래? 젊어야 60대, 보통은 7-80대 분들이에요. 남들이 평화롭게 인생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 새롭게 공부하고 새롭게 싸워서 전사로 거듭난 거예요. 왜 이래야 했을까?
최종원(영감 분) : 싸우기 전엔 평범하죠.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하기 위하여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것, 그게 민중 같아요. 저는 그게 민중이라고 생각해요.
편 : 모두에게 민중의 씨앗이 있다는 거군요.
그러자, 모든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인터뷰는 종료되었다.
끝으로
인터뷰가 끝나고 이문원 연출의 페이스북을 찾아가 친구 신청을 했다. 다음 날, 페이스북으로 게임 얘기에 한창인데, 이문원 연출로부터 페이스북 메세지가 왔다.
‘게임을 좋아하시네요ㅋㅋ~ 저도 8살때 아날로그 게임부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열혈 게이머~^^ 제 핸폰엔 현재 몬스터크라이와 plants vs zombies2가..’
갭모에 소박하신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문원 연출은 페이스북에서 <민중의 적 : 2014>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이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관심 있으신 분은 페이스북에서 친구 신청이나 팔로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배우들이 그날 의상을 보러 가야 한다고 해서, 더 질문하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이만 접어야 했다. 아마 기사를 읽으신 분들도 어떤 내용인지, 어떻게 리메이크 되었는지, 밀양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궁금한 게 많이 남았을 것 같다.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제 곧 무대에 오른다. <민중의 적 : 2014>는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천공의 성’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