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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싫은 인간의 ‘어쩌다 슬로우 러닝’

2025년 7월 31일 by 호사

평생 자발적으로 ‘달리기’를 해본 기억이 없다. 학창 시절 가장 싫었던 과목은 체육, 그중에서도 오래달리기는 최악이었다. 출발선에 선 순간부터 초조한 마음과 말을 안 듣는 몸, 쫓기는 기분, 줄 세우는 순위표까지. 그 모든 게 싫었다. 운동회에서 달리기 잘해서 공책이나 연필을 받는 아이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달리기 하위권’ 단골이었던 아이는 자라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어도, 지하철 문이 닫힌다는 안내음이 들려도 뛰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왜냐고? 뛰면 숨차니까.

나만 그런 거 아님

하지만 나잇살의 저주 앞에서 자발적으로 뛰러 나갔다. 러닝 붐에 단단했던 마음의 벽이 스르르 허물어져, 러닝 관련 영상 몇 개를 본 뒤 중랑천으로 향했다. 평소 입던 요가복에 늘 신던 운동화를 꺼내 신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기록을 위한 러너가 아니다. 나는 슬로우 러닝을 한다.

느긋하게,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달리기 시작한 지 벌써 3개월이 넘었다. 물론 중간중간 부상으로 ‘숨 고르기’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뛰고 있다. 이게 어디야!

일주일에 4~5일, 아침 혹은 저녁 8시 무렵 1시간 정도 뛴다. 달리기를 할 때 고비는 사람들의 시선도, 기록도 아니다. 바로 러닝화를 신기 직전이다. “오늘 꼭 뛰어야 할까? 왼쪽 무릎 느낌 안 좋은데? 인간이 아니라 망고가 살기 적합한 이 날씨에? 이 컨디션에? 지금 내가?” 머릿속에서 ‘뛰지 말아야 할 이유’를 40만 8천 가지쯤 뽑아낸다. 그걸 다 듣고 있자니 이런 내가 한심하고 지쳐서 결국 일어난다. 러닝화에 발을 구겨 넣고 “하기 싫어…”를 중얼거리며 걷다 보면 어느새 출발점. 기록 어플을 세팅하고, 카운트다운 소리에 맞춰 시작한다.

초반엔 상쾌하다. 그다음은? 숨차고, 다리 무겁고, 몸이 하는 말은 하나다.

오늘은 이만하자.

하지만 영혼의 멱살을 부여잡고 말한다.

저 다리까지만. 아니 저 나무까지만. 아니 진짜 마지막으로 저 표지판까지만.

그렇게 꾸역꾸역 뛰다 보면 1시간이 지난다. 죽을 것 같다. 그런데 안 죽는다. 땀에 절어 물미역처럼 흐물흐물한 채 집으로 향할 때 기분이 묘하다. 게으름에게 KO승 거둔 기분. 이겼다. 아주 잘 싸웠다.

오늘도 잘 달렸다 / 출처: freepik

‘슬로우 러닝’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이 모든 시작도 없었을 거다. ‘러닝’ 하면 뭔가 군살 하나 없는 사람들이 치타처럼 뛰는 속도전만 떠올랐으니까. 경쟁도, 속도전도 절레절레하는 나 같은 인간이 러닝이라니. 그런데 ‘러닝’이라는 단어에 ‘슬로우’ 하나 붙었을 뿐인데 마법처럼 부담이 사라졌다. “저렇게 느리게 뛸 거면 걷는 게 낫지 않냐?”는 말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내가 뭐 올림픽 나가? 나한텐 이게 전력 질주야.

슬로우 러닝에서 시작해 슬로우 다이어트, 슬로우 재테크, 슬로우 독서, 슬로우 글쓰기까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모든 것에 슬로우를 붙였다. ‘슬로우’라는 단어는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허락된 면죄부이자 포기 방지책이다. 천천히라도 하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백 배는 나으니까.

예전엔 무언가 시작할 때마다 속도를 의식했다. ‘나만 너무 느린 거 아냐?’ ‘남들보다 뒤처지는 거 아냐?’ 조급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느리게 가도 괜찮고, 느려야 오래간다는 걸.

슬로우 러닝을 하며 배운 건 달리는 법이 아니라 사는 법이다. 닳고 닳은 말이지만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는 걸 러닝을 하며 날마다 깨닫는다. 매일 성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고, 멈춰도, 돌아가도, 심지어 눕고 싶을 때는 눕고 가도 된다는 걸.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고, 비교보다 소중한 건 ‘지속’이니까.

오늘도 조금씩, 게으름과 타협하지 않은 내가 있다. 그 사실 하나로도 나는 꽤 괜찮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오늘도 뛴다. 조금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슬로우, 그 마법 같은 단어를 품고. 가끔은 의심 많은 내가 내 안의 나에게 묻는다. “이렇게 느릿느릿 가도 괜찮을까?” 그러면 내 안의 다른 내가 씩 웃으며 대답해 준다.

그래, 너 지금 엄청 잘 가고 있어.

슬로우 러닝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 출처: KBS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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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건강,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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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의 깨춤 전문가. 여행하고 먹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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