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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횡단보도 건너는 법

2025년 6월 4일 by 호사

1.

살다 보면 온몸이 얼어붙는 순간을 만난다. 나에게 그런 순간이 있었다. 하노이 한인촌 미딩 한복판, (아마도) 12차선 도로 위에서였다. 그날은 하노이에서 멀지 않은 닌빈 당일치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주일 가까이 먹던 현지 음식에 지쳐 한식 수혈이 간절했던 우리는 미딩에 들러 삼겹살과 김치를 흡입했다.

배불리 먹고 식당 밖을 나서자마자, 끝이 안 보이는 도로에 퇴근길 차량과 오토바이 떼가 뒤엉켜 있었다. 슬프게도 우리는 그 길을 건너야만 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들은 경적을 울리며 짜증을 쏟아냈고, 눈치 없이 한 발 내디뎠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두려움에 멈춰 서기만 하면 영영 호텔로 돌아갈 수 없었다. 마침, 호출한 그랩이 도착했다는 알람까지 울렸다. 초조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 도로 한복판에 박제되고 싶지 않았다.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나 건너갈 거야.”라는 신호다. 운전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일정한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매연과 소음에 정신은 혼미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처럼 멀게만 느껴졌던 건너편 인도에 도착했다. 별것 아닌 미션 같지만, 우리는 외국인끼리 현지인의 도움 없이 무사히 도로를 건넜다. 말도 안 되게 뿌듯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그저 ‘횡단보도’를 건넜을 뿐이다.

출처: unsplash

베트남 자유여행 중 가장 어려웠던 건 바로 이 ‘횡단보도 건너기’였다. 신호등은 있으나 마나 했고, 오토바이들은 쉴 새 없이 밀려왔다. 처음 며칠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방법은 하나. 현지인들이 가는 길에 숟가락을 얹는 것. 그들이 건너는 타이밍을 눈치껏 따라 걷는 수밖에 없었다. 건너는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외국에서 교통사고 나면 어쩌지?

여행자 보험에 교통사고 특약 넣었었나?

하지만 몇 번의 경험 끝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하나의 원칙을 체득했다.

멈추지 말고, 일정한 속도로 걷기

베트남 운전자들은 보행자의 속도를 계산해 피해 간다. 예측이 안 되는 보행자가 가장 위험하다. 갑자기 멈추거나 뛰는 게 아니라 꾸준히,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삶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도로 위의 오토바이처럼,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두려움과 마주하게 된다. 입도, 발도, 머리도 굳어버리고 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왜 유연하지 못할까. 계획형 인간인 나는 항상 예측하고 대비하려 애쓴다. 하지만 인생은 깜빡이 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자동차 같다. 멈춘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내가 움직여야 바뀐다.

사진: Unsplash의Silver Ringvee

신호등이 무색한 도로 위를 건너듯, 삶의 난장판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곳에 닿기 위해선 걸어야 한다. 무리하지 않고, 멈추지도 말고, 그저 일정한 속도로. 그래서 오늘도 똑같은 하루를 살아낸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기지개를 켜고,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신다. 밥을 먹기 전 삶은 채소 한 접시를 먼저 먹고, 천천히 식사하고, 커피 대신 차를 마신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요가하고, 달리고, 샤워하고, 영양제를 먹고, 잠든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은 매일매일 온다. 불투명한 미래, 불안한 현재, 후회투성이의 과거… 사는 건 두려운 것투성이다. 하지만 하노이 거리에서 배운 그 감각을 기억한다. 멈추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걷는 것. 그러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오른손을 번쩍 들었던 그 순간처럼.

오늘도 그렇게 걷는다. 도로 위든, 인생이든.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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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생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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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의 깨춤 전문가. 여행하고 먹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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