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79년생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마음은 27~28세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20대 청년입ㄴ… 시작부터 무리수네요. 죄송합니다. 믿기 힘든 숫자라 AI에게 79년생이 몇 살이냐고 물으니 47이라는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옵니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제 나이대 분들. 그러니까 70~80년대생 분들은 참으로 재미있는 경험을 하며 산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부심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던 어린 시절에 하이테크의 발전을 그대로 보면서 자랐거든요.
저보다 형님 세대 분들은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변하는 걸 보셨습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만, 예전 TV 수상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생생히 기억합니다. 최초의 핸드폰인 모토로라 단말기도 봤고, 거의 최초의 게임기인 대우 재믹스도 해봤고, 오락실이라는 게 처음 생겨서 50원, 100원 들고 한판 해 보겠다고 뒤에 서 있다가 동네 무서운 형들에게 털리기도 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도 늘어날까 봐 소중히 듣다가 CD가 나오고 MP3가 나오는 변화도 겪었죠. 이거 추억팔이하면 끝이 없는데, 암튼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변화하던 시절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서 빌려준 돈을 현물로 받아오셨습니다. 당시 엄청난 고가였던 대우전자의 X-2라는 컴퓨터였습니다. 그게 제 인생을 일정 부분 바꿔주었습니다. 통신사에 입사하고, 금융회사로 와서 신기술을 접하고 있는 저의 밑바탕이 그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1988년이네요.
그때 처음으로 접한 OS가 MSX-DOS였는데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가 일본의 아스키라는 회사와 합작해서 만든 OS였습니다. 제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순간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때도 대단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대단한 회사가 되었죠. 빌 게이츠는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저한테는 좀 먼, 뭐랄까 전설 속의 캐릭터 같았습니다. 뉴스 너머로 볼 뿐이었죠. 사실 저는 게이츠를 많이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알려진 정보만 보면 딱 그 시절 미국의 금수저였거든요. 부모 빨로 성공한 캐릭터 같은 느낌이 싫었습니다.
- 1955년에 성공한 백인 부부인 변호사 아버지와 은행가 집안 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 살면서 큰 어려움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으며, 부모님도 승승장구. 아버지는 로펌 파트너, 어머니는 대기업 임원.
- 명문가 자제들만 가는 고등학교를 갔는데, 당시에는 귀하디귀한 컴퓨터를 쓸 수 있었던 환경!
- 하버드에서 뜻있는 친구들과 창업!
아니 딱 봐도 이건 뭐 금수저가 ‘맡겨놓은 성공 찾으러 왔다’ 느낌이지 않나요. 흙수저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사기캐입니다. 그래서 신경 안 쓰고 살았는데, 이번에 회고록이 나왔다고 합니다. 어찌어찌 알았는지 출판사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인(죄송합니다) 제게 서평을 부탁하더라고요. 원고료라도 많이 주면 잘 써보겠지만 책만 주고 돈은 안 줍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거 잘 걸렸다. 금수저 디스나 해야지’ 생각하며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서두가 장황했으니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책을 읽어보니 제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1. 무언가에 미친 Nerd로 집중하고 노력하며 살았던 삶
13살 때부터 컴퓨터에 미쳐서 외박을 밥 먹듯 하며 부모님 속을 썩이고 다른 모든 것을 안 하는 삶을 살았더군요. 제13살 때를 돌이켜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컴퓨터로 게임하는 걸 좋아했는데, 빌 게이츠는 프로그래밍 자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 옆에서 먹고 자면서 주 80시간 이상 개발만 했더군요. 당시에도 금수저들은 많았을 텐데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을 보면, 본인의 적성과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금수저인데 머리까지 좋습니다.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을 다 합격하고 하버드를 갑니다. 거기에 수학은 SAT 만점입니다. 숫자에 대한 감각은 사업할 때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책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금수저라서 되는 건 아니죠.
인공지능이 세상을 뒤흔드는 지금 보면 컴퓨터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요즘 말로 팩트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러니까 70년대 초반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겁니다. 빌 게이츠 또한 하버드를 나와서 좋은 일자리를 잡고 평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회고록에서도 ‘그때 확신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바뀔 것이고,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옳다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하버드를 휴학하고 졸업도 하지 않고 회사에 올인합니다. 결론을 다 아는 우리지만, 저 당시로 돌아가면 우리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요? 못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일 겁니다.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해서 이거 다 읽을 수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실제로 책 초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재미없습니다. 놓을까 했는데, 고등학교 가서 코딩을 접하는 부분부터 아주 흥미롭습니다. 대학교에서 창업 후 스티브 잡스와 만나는 장면은 영웅 신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느냐? 네, 추천합니다. 먼저 4050 이상이시고 그 시절 컴퓨터를 기억하신다면(예를 들어 애플 II 시절) 아주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책에서 다루는 시대와 지금 시대가 놀랍게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모르는 시대라는 공통점입니다.
소스코드는 빌게이츠 자서전 3부작의 첫 번째 책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다음 편이 훨씬 기대가 되는데요. 나오기 전에 한 번씩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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