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집에 가면 메인메뉴가 나오기 전 개불, 낙지와 함께 멍게가 종종 나옵니다. 멍게 다들 좋아하시나요?
특유의 싸한 맛 때문에 소주 안주로 각광받는 멍게. 저도 처음에는 이상한 비주얼 때문에 머뭇거렸지만 지금은 즐겨 먹습니다. 잘 아는 건 아니라서 그냥 바닷속에서 적당히 사는 녀석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맛있으면 그만이지, 어떤 생물인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어느 책에서 멍게에 대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충격받을 일이 잘 없는데 말이죠.
멍게 녀석, 엄청난 습성을 가지고 있잖아…?
여러분은 멍게에 대해 잘 아시나요? 멍게는 양식도 하지만 해녀들이 바닷속에서 잡아 올리기도 합니다. 바위틈에서 입만 뻐끔거리고 있어서 칼로 따서 채집해 온다고 하네요.
횟집에서 손질하기 전의 멍게는 다들 보셨을 겁니다. 전체적으로는 붉은 파인애플 같은 모양을 하고 있고, 입 역할을 하는 구멍이 있죠. 돌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바닷물을 마셔서 플랑크톤 등을 먹는다고 합니다.
멍게는 자웅동체로,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같이 합니다(몸에서도 새끼가 분리되어 나오지만, 정자와 알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것도 신기하죠) 알에서 갓 깨어난 멍게는 꽤 고등생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도 뇌, 신경, 척수 등 고등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갖추고 있죠. 그 상태로 바닷속을 둥둥 떠다니며 뿌리내릴 장소를 찾는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괜찮은 장소를 보면 자리를 잡고 몸을 변화시켜서 우리가 아는 멍게처럼 되는데요. 이때 자기 뇌와 신경 등을 모두 먹어서 소화시켜 버린다고 합니다(…?!) 소화기관과 순환계 장기만 남겨놓고요. 스스로 뇌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덜덜덜.
저는 처음에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남들은 없어서 만들어보려고 애쓰는 기관들을 스스로 없애다니요? 하지만 이 녀석은 그때부터 뿌리를 내리고 바닷물을 빨아들여서 플랑크톤을 먹으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짱박혀서’ 편히 사는 거죠. 아니지, 편하다는 개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뇌가 없어지면 아예 생각 자체를 안 할 테니까요.
예전에 「가축은 뇌가 작아진다고 합니다」라는 글에서 회사원이 야성을 잃고 가축화되어 가는 것을 걱정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훨씬 더 대단한(!?) 녀석이 멍게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기관을 없애버리는 생물이 있을 줄이야.
우리 몸에서 뇌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서 두개골로 보호되는 이유는, 그만큼 가장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놈은 그 중요한 뇌를 스스로 없애버리고 있는 겁니다.
한편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멍게가 남 같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멍게의 삶의 방식에 호기심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요즘 ‘멍게의 유혹’을 많이 느끼거든요. 심지어 주변에서 ‘인간 멍게’들을 많이 보기도 했고요.
대기업이 사육하는 ‘인간 멍게’ 이야기
대기업 회사원이 멍게가 되어가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취준생 때는 눈을 빛내며 어느 회사든 뽑아만 주신다면 충성할 각오를 보입니다만… 취업 후 회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부서나 직무를 찾을 때 본능적으로 천적이 오지 않을(임원이 관심을 두지 않고 일도 별로 없을) 안락한 곳을 찾아갑니다. 어차피 일 열심히 하나 안 하나 월급 차이는 크지 않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러니 대충 하는 척하면서 눈에 안 띌 곳이 필요합니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니, 자리 잡을 때까지는 뇌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하면서 (짱 박히기)좋은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렇게 자리를 찾은 후에는 자신의 창의성과 온갖 아이디어를 다 뇌에서 들어내는 게 좋습니다. 조직이 시키는 거 말고 창의적으로 뭐 하려고 하면 힘들어지거든요. 그러니 시키는 것만 합니다. 윗사람 말이 곧 빛이요 진리입니다. 임원 지시가 이상한 걸 알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삽질해도 월급은 나오니까요. 그렇게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뇌가 없는 것처럼 일을 합니다. 시키는 것만, 욕 안 먹을 정도로 말이죠. 멍게도 혹여나 너무 열심히 플랑크톤을 잡아먹으려 바위틈 밖으로 나가면 해녀 눈에 뜨여서 끌려 올라가기나 합니다. 일을 많이 하면 일이 더 오는 것과 비슷하죠. 그러니 퇴직하는 그날까지 적당히 다른 멍게들처럼 되도록 돌 사이 깊숙이 숨어있는 게 좋습니다.
가축, 월급루팡, 멍게 모두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멍게의 각오가 좀 더 결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자기 뇌를 없애버리다니 이거야 로 결사의 각오 아닐까요. 그런데 멍게야 그렇다 해도 사람은 왜 일부러 멍게가 될까요?
‘멍게’를 키워내는 조직이 되거나, 되지 않거나
저는 조직과 시스템이 멍게를 양산해 내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열정 있는 직원이 열심히 뭔가 해 보려 하지만, 잘되면 조직과 상부의 공이고 안 되면 본인 탓이죠. 이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자포자기하고 스스로 뇌를 없앤 멍게가 되어가는 것이죠. 이런 증상은 사람이 몇 없는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별로 없으면 티가 나서 하기 힘듭니다)
물론 좋은 회사라면 멍게로 변해가는 직원도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겁니다. 한데 그런 회사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멍게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동기부여만 잘하면 됩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래 3가지 중 하나만 채워주면 되죠.
- 내 지갑을 채워주든가
- 내 경력을 채워주든가
- 내 자부심을 채워주든가
중요한 건 입사나 재직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는 회사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부분이고, 회사원 스스로도 어떻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연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생물들을 보면 늘 놀랍습니다. 인간 멍게 분들도 어찌 보면 회사라는 환경 속에 나름 잘(?) 적응한 분들일 겁니다. 저도 회사에 뿌리를 내리고 뇌를 덜어내는 중 아닐까 반성이 되나요.
여러분은 어떤 생물에 가까우실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 길진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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