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회사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요한다거나 몸을 갈아 넣으면서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아닙니다. 실무자들에게 주도권이 충분히 주어질 경우에 말이죠. 하지만 일을 너무 많이 하게 되어 지쳐 버린 상태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원인을 찾기도 어려운 야근에 종종 빠져 버리고는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루는 법정 근로 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남들은 대부분 쉬거나 잠에 들 시간에 일을 하면서 마찬가지로 퇴근을 못 하고 있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눈 적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일하는지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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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뒤집기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명확하게 사전 협의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제 브런치 초창기부터 반복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일을 시킬 때, 정리되지 않은 양식에 값을 잔뜩 채워야 할 때 일은 결국 다시 뒤집히고, 어마어마한 리소스를 다시 써야 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왜 처음부터 정리하지 않았을까요? 소위 ‘멍부’이기 때문입니다. 멍청한데 부지런한 경우나, 그냥 게으른 경우죠. 멍부의 경우에는 상위의 의도를 모르니 정리되지 않은 양식을 계속 바꾸면서 다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숱하게 본 사례입니다. 많이 일하고 많이 쓰고 많이 이야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의외로 단순하고 큰 것 한 방을 자꾸 놓치고 있습니다. 지엽적인 것에 많은 시간을 쓰며 수정합니다. 이런 집착은 실무자 수준이 리더가 되었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실무자가 리더가 되었을 때, 마인드셋이 실무자에 멈춰 있다면 중요한 다음 그림을 그리는 대신 허슬에 집착하게 됩니다. 일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마이크로 매니징만 심화되게 되죠. 과거에도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쓴 적 있는데, 요즘도 그런 것을 보면 사실 시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 같기도 합니다.
늦게 알려주기
일을 늦게 알려주는 경우는 보통 2가지로 나뉩니다. 정말 몰라서 전달하지 못한 경우와 혼자 독점하고 있다가 뒤늦게 알려주는 경우죠. 두 가지는 차이가 있고, 대응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조직의 리더가 늦게 알아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리더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구조의 문제입니다. 대규모 조직에서 의사소통은 리더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리더가 병목이 되는 정보 전달 구조를 가지게 되죠. 따라서 실무자가 실무자와 논의하면서 정보 전달이 되고, 리더는 공유를 받으면서 방향을 지도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리더가 너무 바빠서 듣고서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업무 범위가 너무 넓어서 쳐내는 수준으로 일하고 있는데, 여기에 새로운 이슈까지 생기면 충분히 보고 검토하는 게 아니라 집중력을 빼앗긴 상태로 일을 하게 됩니다. 조직 구성원의 수가 너무 많거나 여러 기능이 하나의 도메인 안에서 한 조직으로 움직일 때, 혹은 그 반대로 하나의 기능이 여러 도메인을 담당하면서 과제의 수가 통제되지 않을 때에는 조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늦게 일을 알려줄 때 가장 큰 문제는, 늘 하는 사람한테 일을 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일을 잘하는 사람이 계속 소모되면서 지쳐 버리고, 종국에는 조직을 떠나게 됩니다. 간과한 것들이 반복되면 곪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어도 장기간 반복되면 체력이 무너지면서 정신도 같이 어려워지는 것이죠.
여러 부서가 필요할 때
일반적으로 상품이 여러 유통 단계를 지나게 되면 가격은 필요 이상으로 오르고 상품 관리는 복잡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업무도 여러 조직을 지나게 되면 성과로 연결시키기 위해 에너지가 추가로 들어가고, 결과적으로 정작 고객과 시장에 들이는 에너지보다 내부 관계자를 설득하고 바꾸는 데 집중력을 빼앗기게 됩니다. 큰 조직에서 주로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때는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성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질문하고, 단순한 조직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이 역시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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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효율적인 회의 문화를 추구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문서를 없애거나 회의 시간을 줄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한 주제를 담당하는 데 필요한 조직의 수를 줄이고, 리뷰 단계를 단순하게 줄이고, 리더를 정리하는 등의 치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치며
아쉬운 것은, 야근을 하고 있는 실무자 본인이 바꿀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상황이죠. 해당 조직의 리더들이 확증편향을 내려놓고 제로 베이스로 바라보게 될 때까지 고통은 사라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브런치에 무언가를 쓴다고 해결되는 것은 많이 없습니다. 다만 기록하고 남겨두어 유사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조금이나마 제 역할을 하게 되겠죠. 지금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야 할 테니까요.
원문: Peter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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