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철근처럼 씹어 먹고, 각종 병원을 순회해도 영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2년 만이었다. 토요일 새벽부터 공장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건강검진센터에 다녀온 지 2주 후, 결과지가 도착했다.
건강 검진 결과지를 확인할 때마다 시험 성적표를 받아 들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 얼마나 공부했는지 대신, 그간 얼마나 자신을 돌보며 살았는지 인생 성적표를 받는 것 같아서다.
다행히 종합 소견서에는 잔고장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건 없다고 쓰여 있었다.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놓였다.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너 잘 살았다.
정신이 번쩍 든 건 체성분 결과였다. 2년 전과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가장 달라진 건 운동을 주기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전까지는 숨쉬기 운동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지금은 몸짱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 인내심, 배려, 자상함, 친절 등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모든 것은 체력에서 나오니까. 그러니 몸무게 변화는 크게 없더라도 근육량이 늘었기를 기대하며 수치를 확인했는데 체지방은 정직하게 늘었다. 쳇.
성과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중 3에서 고1로 넘어가기 전 1년 사이 10cm가 자란 이후 성장판은 완전히 닫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확히 2년 전보다 0.9cm가 컸다. 조금만 더 힘을 냈다면 1cm라는 경이로운 숫자에 가 닿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0.9cm. 기적 같은 숫자를 확인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지? 봉인됐던 성장판이 뒤늦게 열린 건가?
그럴 리 없다. 내 몸은 하루하루 낡아 간다. 벤자민 버튼이 아닌 이상 시간이 거꾸로 갈 리가 없다. 답은 하나다. 내 몸에 숨어 있던 키가 자세 변화로 드러난 것.
2년 사이 가장 큰 도전이자 변화는 ‘요가’였다. 다이어트나 자세 교정이 목적은 아니었다. 미친 날씨처럼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켜 보고자 요가 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명상과 마음수련. 그게 내가 요가에서 얻고 싶은 거였다.
일주일에 3번, 많으면 5일 요가원에 가는 성실한 회원이었다. 그 사이 3개의 요가 매트가 바뀌었고, 한 분을 제외하면 선생님도 모두 바뀌었다. 2년 사이 바뀐 무수한 것 중에 내 몸도 있다. 모든 것에 쫓기며 사는 현대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시간에 쫓겨 숨을 헐떡이며 살면서도 악착같이 요가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게으름을 줄이고, 핑계를 없앴다. 기계처럼 정해진 시간이 되면 요가 센터로 향했다. 그래서 이제는 습관을 넘어 일과가 됐다.
한 시간 동안 은은한 어둠 속에서 몸을 구기고 폈을 뿐인데 내 안의 숨은 키가 쏙 뽑혀 나왔다. 솔직히 키가 성장한 게 아니란 걸 안다. 구부정한 자세로 줄어들었던 키가 자세를 바르게 잡으면서 펴진 것일 뿐이다. 굽은 쇠를 두드려 펴는 이치와 비슷하다. 꼬박꼬박, 차근차근 수련이란 이름으로 단련했기 때문이다.
0.9cm 작았던 2년 전보다 지금은 시야가 달라졌다. 여전히 하이힐이나 발받침의 도움이 없다면 160cm 이상의 공기는 맡을 수 없지만 2년 전보다 0.9cm 높은 곳에서 무언가를 보게 됐다. 한층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동시에 시야도 조금 더 넓게 한다. 조급한 마음에 전전긍긍이 일상이었던 2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점이다.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될 일은 안된다는 진리를 가슴에 품고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린다. 단, 과정에서의 열심은 변함없다. 과정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 어떤 결과가 오든 두렵지 않다는 믿음도 있다. 그 모든 건 바른 자세에서 나온다.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체감한 2년이었다. 삐뚤어진 마음과 삐딱한 시선이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확인한 시간이었다. 대장장이가 망치를 두드려 굽은 쇠를 펴듯 틀어져 굳은 뼈와 마음을 펴기 위해 요가를 한다.
한 호흡을 길게 내 쉬며 ‘아사나(요가 자세)’를 이어간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자세는 통증이 심하다. 하지만 그 통증을 이겨내면 잘못 굳은 자세가 서서히 펴진다. 그 시간이 쌓이면 바른 자세가 되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숨은 키가 뿅! 하고 나타날 것이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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