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흔하지만 독특한 경력이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력이 그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아주 흔한 경험이 아닌가 싶겠다. 그래서 편의점은 ‘흔하지만 독특한 경력’에서 ‘흔하지만’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편의점이 청소년은 감히 들어올 수 없는 유흥가의 중심지에 있다는 것과 아르바이트 기간이 5년이 넘는다는 것이 ‘독특한’에 해당한다.
유흥가 편의점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터득한 스킬이 하나 있는데, 바로 ‘콘돔 찾는 손님 맞히기’다. 우리 편의점은 콘돔이 조금 특이한 위치에 진열되어 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계산대 바로 맞은편 매대의 맨 위에 진열되어 있다. 이 위치가 특이한 이유는 우선 생활용품 매대가 아닌 초콜릿 매대의 최상단이라는 점이다. 보통 콘돔은 의약품이나 생활용품, 위생용품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넓은 편에 속하는 우리 편의점에서 계산대 주변 매대는 손님들이 가장 마지막에 들르는 코스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 편의점에 처음 온 손님들은 콘돔 찾는 데 애를 먹는다. 흔히 ‘모텔촌’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한 편의점 특성상, 콘돔을 구매하는 손님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콘돔의 위치는 내가 일을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점장님은 콘돔이 유독 도난당하는 사례가 많아 위치를 계산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고 설명해 주셨다.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 콘돔 덕분에(?) 콘돔을 찾아 헤매는 손님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고, 오랜 학습 끝에 ‘콘돔 찾는 손님 맞히기’ 스킬을 터득했다.
1. 커플 손님이 편의점으로 다가오다가 여자 손님은 밖에 남고, 남자 손님만 들어와 무언가를 분주하게 찾는다.
90%의 확률로 콘돔을 찾는 손님이다. 유독 식품 매대가 아닌 생활용품, 위생용품 매대 등 비식품 매대만 기웃거린다면 99%다.
2. 커플 손님이 함께 매장으로 들어와서 여자 손님은 여유롭게 안주나 디저트류를 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이번에도 역시 남자 손님만 분주하게 비식품 매대를 기웃거린다면 90%다. 이때 남자 손님이 여자 손님에게 “그거 없는 것 같은데?”라고 찾는 물건을 ‘그것’으로 지칭한다면 99%다.
우리 편의점에서 비식품 매대를 기웃거릴 일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손님은 주류나 안주류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가거나 쿨하게 들어와 담배 한 갑만 사 간다. 찾는 물건이 휴지나 물티슈 같은 생필품이라면 주저 없이 내게 위치를 물어보았을 것이다.
콘돔을 찾는 손님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끝끝내 콘돔의 위치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콘돔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기 어색해서일까, 콘돔이 어디 있는지 묻기를 주저한다. 특히 매장 내에 다른 손님이 있을 경우에 더 그렇다. 편의점을 수색하듯 5분 이상 매대 곳곳을 꼼꼼히 살피다가 쓸쓸히 퇴장하는 손님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게 된다. 바쁘지 않을 때는 찾으시는 물건이 있느냐고 물어보지만, 계산 중일 때는 빈손으로 나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다년간 유흥가 편의점에서 일해본 결과 콘돔을 자연스럽게 사 가는 손님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아직도 콘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콘돔을 ‘성인용품’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콘돔은 국가기관의 제품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다. 남성과 여성 모두를 지키는 가장 보편적인 피임 도구이기도 하다. 기능성 콘돔을 제외하고는 청소년도 구매할 수 있다. (나선형, 돌기형 등 기능성 콘돔은 바코드를 찍으면 ‘0000년 이후 출생자는 구매할 수 없습니다. 신분증을 확인해주세요’라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눈에는 사탕을 구매하는 사람도, 콘돔을 구매하는 사람도 다 똑같은 손님일 뿐이다. 들어오자마자 콘돔의 위치를 물어도, 남녀노소 그 누가 콘돔을 구매해도 정말 별생각이 없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현금이 아닌 카드로 계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당당하게 콘돔을 구매하길 바란다. 콘돔에 대한 보수적 인식이 개선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PS.
-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에서는 아직도 콘돔을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 결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라고 뜬다.
- 비대면이 일상인 요즘은 배달 앱에서 편의점 물건도 손쉽게 배달시켜 받아볼 수 있다. 물론 콘돔도 가능하다.
- 기능성 콘돔 외에도 미성년자는 편의점에서 부탄가스, 라이터 등을 구매할 수 없다.
원문: 예스준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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