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청소기
전동기를 이용한 흡인력으로 티끌과 먼지를 빨아들여 청소하는 기구.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청소기의 첫 고객은 영국 왕과 여왕이었다
1898년 존 서먼(John Thurman)은 ‘공기압 카펫 리노베이터(pneumatic carpet renovator ’라는 기계를 발명습니다. 압축공기를 이용해 먼지를 날리는 기계였죠. 그리고 런던에 살던 공학자 허버트 세실 부스(Hubert Cecil Booth)가 우연히 이 기계를 보게 됩니다.
부스는 생각했습니다. “먼지를 날려 보내는 방식보다는 빨아들이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는 자기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 손수건을 카펫 위에 깔고 입을 바짝 붙인 후 숨을 빨아들이는 간단한 실험을 합니다. 부스의 예상대로, 손수건에는 먼지들이 달라붙어 있었죠.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부스는 엔진과 흡입 펌프, 그리고 천을 이용해 진공청소기를 만들고, 1902년 영국 진공청소기 회사 British Vacuum Cleaner Company를 차립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최초의 진공청소기는 마차 형태로, 5마력의 엔진이 실려 있었고, 긴 호스를 연결해 먼지를 빨아들이는 형태였습니다. 게다가 청소기를 판매한 것은 아니고, 고객이 부르면 가서 청소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죠.
그러다 청소기를 판매하게 된 재미있는 일화가 생깁니다. 당시 영국에는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대관식 일정이 거의 다가온 후에야 대관식 장소인 웨스트민스턴 성당의 카펫이 더럽다는 문제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카펫을 빨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죠.
이 이야기를 들은 부스가 출동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깨끗이 청소하는 데 성공했고, 대관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뒤늦게 사연을 알게 된 에드워드 7세는 부스에게 기계의 시연을 요청하죠. 부스는 버킹엄궁에서 직접 보여주었고, 왕과 여왕은 청소기 두 대를 구입해 한 대는 벅 하우스, 다른 한 대는 윈저궁에 놓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04년 부스는 판매용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모터와 펌프, 먼지 통을 작은 트롤리에 올린 제품이었죠. 물론 아직까지는 약 40kg에 가까운 무게였지만요.
2. 호치케스, 포크레인, 후버?
한편, 미국에서는 머리 스팽글러(Murray Spangler)가 진공청소기를 발명했습니다. 당시 그는 수위로 일하고 있었죠. 문제는 지병인 천식이었습니다. 빗질할 때마다 먼지가 날려 죽을 맛이었던 거죠.
그가 만든 청소기는 나무와 깡통, 전기 모터, 빗자루에 붙어있는 베갯잇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기계를 사용화한 건 아닙니다. 약 1년 후 사촌이었던 윌리엄 후버(William Hoover)가 만든 것이죠.
후버는 말 안장과 가죽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1908년 ‘Model O’라는 진공청소기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가전기기를 주력으로 삼게 됩니다. 그리고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공장화를 하여 대량생산을 시작하고 시장을 장악하면서, 후버사의 진공청소기는 청소기의 대명사가 되죠. 작동하는 모습은 이 영상에서 볼 수 있어요.
1920년대 후버 사는 청결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고캠페인을 진행하는데요. ‘d.p.m(dirt per minut)’ 즉 분당 먼지라는 개념을 만들어 자사의 청소기가 더 많은 분당 먼지를 빨아들인다고 광고했죠.
1979년에는 블랙앤데커(Black&Decker)에서 최초의 핸디형 진공청소기가 출시됩니다. 이 청소기는 흡입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무선에 가볍고 편리했으며 저렴했죠. 이러한 장점에 첫해에만 100만 대 이상 팔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죠.
3. 먼지봉투를 없앤 다이슨
1902년 세실 부스가 청소기를 개발한 이후로, 공기를 빨아들여 먼지봉투에 먼지를 담는다는 기본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1978년 제임스 다이슨이 구매한 후버 사의 진공청소기도 마찬가지였어요.
다이슨은 이 청소기를 이용하던 중, 흡입력이 급속도록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뼛속까지 엔지니어였던 그는 청소기를 분해하고 몇 번의 실험 끝에 원인을 찾아냈죠. 먼지 봉투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공기가 빠져나가야 하는데, 먼지가 구멍을 막는 것이었어요.
당시 다이슨은 이미 가드닝 용품 제작 회사를 운영 중이었는데요. 비슷한 시기 그의 공장에서 페인트 입자를 빨아들여 공기에서 분리해 떨어트리는 사이클론 타워를 만들었어요. 그는 이 원리를 청소기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죠.
마침(?) 자신이 설립한 Kirk-Dyson 회사에서도 쫓겨나 시간이 많았던 다이슨은 5년간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하며 청소기 연구에 몰두합니다. 5년간의 연구 기간 동안 수입이 없었기에 자금이 떨어졌고, 다이슨은 판권을 판매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그의 아이디어를 사지 않았죠. 그런데 뜻밖에 일본의 에이펙스라는 회사에서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1986년 지포스(G-Force)라는 이름의 첫 번째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가 출시됩니다. 당시 1,200파운드의 비싼 가격에도 출시 3년 만에 연 매출 1,200만 파운드를 달성하죠.
G-Force의 성공에 힘입어 1993년 다이슨은 직접 회사를 설립해 DC01을 출시합니다. DC는 듀얼 사이클론의 약자죠. 듀얼 사이클론이라는 이름은 작고 빠른 사이클론과 크고 느린 사이클론 두 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지어졌습니다. 빠른 사이클론으로는 강한 원심력을 일으켜 작은 입자를 가라앉히고, 깃털이나 실 같은 큰 입자는 빠른 사이클론만 있으면 오히려 튕겨 나가기 때문에 천천히 가라앉히는 용도였죠.
이제 구조적인 혁신보다는 다이슨은 ‘무게는 줄이고 퍼포먼스는 높인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모터를 개량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2004년 출시된 V1부터 현재의 V15까지 점점 더 작고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모터를 장착해나가고 있죠.
4. 로봇청소기
2001년 일렉트로룩스 사에서 세계 최초의 로봇 청소기 ‘트릴로바이트Trilobite’가 출시됩니다. 트릴로바이트라는 이름은 삼엽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었죠. 트릴로바이트는 9개의 초음파 센서가 부착되어있어 주변 정보를 수집하여 움직이는 당시로는 혁신적인 제품이었죠.
하지만 2,000달러가 넘는 가격과 무자비한 소음(2003년에 나온 신제품 광고에 청소 중 통화가 가능하다고 홍보했죠)과 짧은 배터리, 게다가 청소마저 잘 되지 않아 시장의 외면을 받았죠.
그로부터 1년 뒤 I-robot사가 트릴로바이트의 1/10에 가까운 200달러에 룸바(Roomba)라는 로봇 청소기를 출시합니다. 100만 대 이상 판매한 룸바의 성공을 보고 수많은 업체가 로봇 청소기 시장에 뛰어들었죠.
당시까지 로봇청소기의 가장 큰 문제는 가격, 소음, 배터리보다도 정해진 경로에서 장애물만 피하는 형태이다 보니 효율적으로 청소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초기 로봇 청소기는 적외선 센서로 물체를 감지하고, 시작 지점부터 움직인 거리와 방향을 계산한 정보로 맵핑을 하는 자이로스코프 센서를 이용해 아무렇게나 가는 랜덤 방식으로 청소했죠.
이후로는 천장을 향해 카메라를 달아 촬영한 정보를 기억해 움직이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2003년 삼성전자에서는 이미 입력된 지형 이미지와 앞으로 비행해야 할 곳의 사진을 비교하는 크루즈미사일의 항법장치 기술을 적용한 로봇 청소기 특허를 내기도 했죠.
2009년에는 니토 로보틱스Neato Robotics 에서 라이다LiDar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로봇청소기를 출시합니다. 라이다를 이용해 주변을 스캔해 공간을 3D 맵핑하여 메모리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청소할 수 있게 되었죠.
최근에 출시한 로봇청소기에는 AI 기술까지 적용해 카메라로 사물을 인식하고 딥러닝을 통해 공간을 학습하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다이슨에서도 360도 시야각 기술을 탑재한 로봇 청소기를 출시했지만 큰 반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2022년 상반기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는 중국의 로봇락, 2위는 룸바를 만든 아이 로봇이죠.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참고
- 『제임스 다이슨』 자일스 코렌. (2017). 제임스 다이슨 자서전. 미래사
- 『세탁기의 배신』 김덕호. (2020). 뿌리와 이파리
- 남미경. (2010) 「국내외 인공지능형 로봇 개발 및 시장 현황 연구 – 인공지능형 로봇청소기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디자인문화학회.
- 대한전기학회 편집부. (2003). 「삼성전자 – 크루즈미사일 항법장치를 도입한 로봇 청소기 등」 대한전기학회. 전기의 세계 제 52권 제3호 pp.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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