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1일,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 개최국인 카타르와 경기를 한 에콰도르 팬들은 골을 넣을 때마다 함성을 외쳤다. “케레모스 세르베사(Queremos Cerveza)!”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바로 “우리는 맥주를 원해(We want beer!)!”라는 뜻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사상 최초의 ‘무알콜 월드컵’이 되었다. 이슬람 문화권인 카타르가 경기장의 맥주 판매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카타르 월드컵 직관러들은 축구를 보러 왔다가, 맥주를 찾는 전쟁을 하고 있다. 우승보다 맥주라나?
넘치는 수요에도 불구하고 맥주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장에서 떨어진 공간에 마련된 부스에서 맥주를 살 수 있도록 허가를 하였다. 문제는 사람들이 쏟아진다는 것이고(약 2시간 정도 기다린 후에 맥주 한 잔을 맛볼 수 있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 경기는 이미 끝나있을 거라는 것이지.
하지만 정작 답답한 곳은 따로 있다. 개막 이틀 전에 맥주 판매가 금지될지 모르고 산더미만큼 맥주를 카타르에 가져온 ‘버드와이저’다. 그들은 물류창고에 쌓인 버드와이저 박스를 보며 트윗을 남겼다가 곧 지웠다.
어, 이러면 곤란한데(Well, this is awkward)
저희 나라는 축구 경기장에서 맥주를 판매하지 않아요
축구경기장에서 맥주를 팔지 않는 것은 카타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축구를 잘하기로 소문난 브라질에서도 축구경기장 안에서는 2003년 이후 맥주를 판매하고 있지 않다. 카타르가 종교적인 이유로 판매를 하지 않는다면, 브라질은 음주 관객들 사이에서 소동(이라고 쓰고 훌리건이라고 말한다)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논란은 축구도 선수도 아닌 ‘버드와이저’였다. 경기장 내에 월드컵 공식 맥주 버드와이저를 판매해야 한다는 FIFA의 입장에 브라질 의원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FIFA는 “경기장 내 맥주 판매는 월드컵의 주요 전통”이라며 뜻을 꺾지 않았다. 결국 월드컵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경기장 내에 버드와이저를 판매하게 되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카타르 월드컵 맥주 판매를 금지하며 FIFA 회장 잔니 인판티노(Gianni Infantino)는 축구사에 기록될 명언을 남겼다.
3시간 동안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사람은 살 수 있다.
선생님, 사람은 살 수 있어도 축구 보는 사람은 맥주 없으면 살기 힘들걸요?
축구와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또?
2006년 월드컵이 열린 독일에서도 경기장 내에서 버드와이저를 금지시켰다. 이유는 조금 독특하다. 줄여서 말하자면 “미국맥주는… 맥주가 아니잖아.”다. 보리와 물, 홉과 효모 4가지 재료로만 맥주를 만들어야 하는 ‘맥주순수령’을 따르는 독일에서 옥수수가 섞여 있는 ‘버드와이저’는 맥주가 아니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버드와이저(체코의 맥주)’라는 맥주가 따로 있어서, 유럽 내에서 버드와이저는 ‘버드(Bud)’라고 팔리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독일의 제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FIFA의 고유 권리인 월드컵 경기장의 광고권 역시 독일 국내법상의 이유로 허가해주지 않았다. 버드와이저도 못 팔고, 버드와이저도 광고를 못 하는 상황. FIFA는 협상을 시작했다. 결국 월드컵경기장에 ‘버드와이저 광고’를 거는 대신, 경기장 내에서 버드와이저와 함께 독일 맥주 비트부르거(Bitburger)를 함께 판매하기로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축구로는 이탈리아가 우승했지만, 같은 경기장에서 일어난 맥주 월드컵만은 독일이 우승하고 말았다고.
국가가 아닌 MOM이 트로피를 거부한 이유는 ‘맥주’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첫 경기는 치열한 것으로 유명했다. 조별리그 A조 1차전은 우루과이와 이집트의 경기였다. 당연히 에딘손 카바니, 루이스 수아레즈가 있는 우루과이의 승리를 생각했지만, 때리는 슛마다 골키퍼의 손에 막혔다. 결국 경기 종료 직전 우르과이가 1골을 넣어 1-0으로 승리했지만, 사람들에게 기억 남는 것은 신들린 듯이 골을 막은 이집트의 골키퍼 ‘무함마드 시나위(Mohamed Elshenawy)’였다.
당연히 그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MOM)’은 이집트의 무함마드가 선정되었다. 트로피를 들고 가던 FIFA 관계자들은 뜻밖의 소식을 듣고 만다. 무함마드가 MOM을 거부한 것이다. 패배한 팀에서 MOM을 타는 게 미안해서냐고? 아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이슬람교를 믿는 무함마드는 ‘주류회사인 버드와이저에서 주는 상을 받을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MOM 트로피의 이름도 ‘버드와이저 MOM 트로피’였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많은 이슬람 문화권의 국가들이 참가한 월드컵이었다(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7개국). 다행인 것인지(?) 무함마드 이후 MOM을 타는 선수는 없어서, 트로피 보이콧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2022년 이슬람 국가에서 월드컵을 열게 된 것이지.
무알콜 월드컵이라 불려도 버드와이저는 멈추지 않아
다시 2022년 현재로 돌아오자. 카타르에 쌓여있는 마실 수 없는 ‘버드와이저’. 결국 버드와이저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렸다. 바로 우승팀에 이 맥주들을 준다는 것이다. 펴, 평생 마셔도 못 마시는 거 아니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이벤트다. 뜨거운 카타르의 날씨 9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달리고 나서도 맥주 한 잔 마시지 못한 선수들에게, 평생 마실 맥주를 선물로 준다는 것은 트로피만큼이나 신나는 일이 아닐까. 축구공보다 맥주가 더 주목받는 월드컵의 열기를 지켜보며 과연 누가 저 많은 맥주를 가져갈지 궁금해진다.
번외 : 이렇게 힘든데… 버드와이저는 왜 월드컵과 함께할까?
버드와이저와 월드컵의 역사는 1985년부터 이어졌다. 독일월드컵, 브라질월드컵, 러시아월드컵, 카타르월드컵의 수난의 역사(?)를 지나면서도 월드컵을 놓지 않는 이유는 ‘축구와 맥주’는 하나라는 유구한 역사 때문이 아닐까… 라고 말하면 사실 뻔한 이야기고. 2026년 월드컵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2026년 월드컵 개최국은 캐나다, 미국, 멕시코다. 버드와이저의 본진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다음 월드컵! 무알콜월드컵을 지나 지금까지의 설움을 없앨 맥주 월드컵이 돌아온다!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주류회사가 주는 상 싫어…” MOM 수상 거부한 이집트 골키퍼」 박광수, 중앙일보, 2018.6.17
- 「<월드컵 이모저모> “맥주 맛없고 비싸다” 경기장 최고 불만」 박광재, 이준호, 문화일보, 2006.6.13
- 「독일,’2006월드컵 맥주전쟁’에서 FIFA 콧대눌러」최원창, 조이뉴스24, 2006.12.23
- 「술이냐 직관이냐… ‘양자택일 월드컵’」 동아일보, 김배중, 임보미, 2022.11.22
- 「맥주 마시려고 1시간 30분 대기… “우승보다 더 꿀맛”」 이영빈, 조선일보, 2022.11.22
- 「FIFA 사무총장, ‘술 취한 팬’ 우려…술 판매량 조절 가능성 있어」 김근한, 스포츠투데이, 201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