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감에 대한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결과가 있다. 바로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은 사과를 거의 하지 않는다. 힘의 논리로 따지면, 사과는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많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팅에 늦은 CEO는 사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서열이 낮은 직원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고 또 할 것이다. 권력 사다리 아래에 있는 사람이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힘의 관계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것은 대놓고 하는, 또는 드러나지 않는 방식의 처벌로 이어질 수가 있다.
언젠가 대학원생들이 발표를 하는 심포지엄에 간 적이 있다. 대학원 학생이 조금 버벅거리며 발표했다. 그랬더니 토론 시간에 교수가 크게 화를 냈는데, 그 수위가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학생은 우리의 시간을 낭비했다고 했다. 참석한 사람은 총 30명이고 발표 시간은 30분이었으니 30명×30명= 총 900분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은 몹시 당황했고, 총 900분 어치의 사과를 해야 했다. 나는 그 900분에 나의 30분까지 포함시킨 것이 무척 불쾌했다. 그 교수는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낸 것일까? 자신의 시간이 타인의 시간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 시간이 권력의 상하관계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2.
하지만 단체나 집단이 크게 잘못할 경우, 권력 사다리의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이 대표 격으로 사과한다. 이럴 때의 사과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공개 사과의 형식을 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 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작은 일들은 넘어가지만(그래서 사과를 연습할 기회도 없지만), 그 집단이 책임을 질 일 있을 때는 대표격으로 무겁게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역사적 공개 사과의 좋은 예가 있다. 1970년 겨울, 독일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방문하여 유대인 묘지의 전쟁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헌화하게 되었다. 그런데 총리는 독일의 과거를 반성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다가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한 나라의 총리가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참회한 것이다. 이 모습은 진정성 어린 대표의 사과로 자주 회자되는 사례가 되었다.
그는 직접적으로 유태인을 살해한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치와 동일한 입장에 서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은 쪽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나치를 대신해서 사과했다. 이처럼 대표성을 가진 사람은 국가와 양심을 대표하여 사과하게 된다.
그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독일의 총리들은 연이어,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과를 했다. 1977년에는 헬무트 슈미트 총리가, 1989년과 1995년에는 헬무트 콜 총리가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고 사과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재임 10년간 끊임없이 반성과 사과를 했다. 2008년에는 이스라엘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와 생존자 모두에게 머리를 숙인다’며 사죄했고, 2013년에는 2차대전 당시 다하우 수용소를 찾아가서 사죄했다.
수감자들의 운명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대다수의 독일인이 당시 대학살에 눈 감았고, 나치 희생자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2015년 아우슈비츠 해방 70년 연설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치 만행을 기억하는 건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
그리고 2021년 퇴임을 앞두고 이스라엘을 다시 방문해서 사죄했다. 독일은 말로 사과를 하는 것을 넘어 배상을 하고, 피해자와 후손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 홀로코스트를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학교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 일본은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정작 사과를 받은 한국은 사과받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이 차이가 뭘까?
3.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하는 궁중 만찬회에서 히로히토 일왕이 이렇게 말했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 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다.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하는 만찬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를 통해 한일간의 과거 문제를 언급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통석(痛惜)의 염을 금할 수 없다.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한일 파트너십 선언(한일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일본이 과거의 한 시기에 한국 국민에 대해 식민지 지배에 의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 선언문은 일본이 처음으로 한국을 지칭해 사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했고,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취임하면서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교과서를 발표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의 위안부는 일본과 아무 상관없다고 발뺌해 왔다. 1992년이 되어서야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그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배상이 끝냈다 주장했으며, 2007년 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에 대하여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었다고 했다.
4.
<권력자들은 왜 사과를 안 할까>라는 제목의 유튜브가 있다. 여기에 출연한 언론 비평가 정준희 교수는 일본의 사과문에서 쓰인 단어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유감’은 감정이 남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감정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이것이 나의 불쾌감인지, 너의 불쾌감인지 말하지 않는다.
‘통념’은 고통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뜻으로, 후회감이 들어있는 표현이기는 하고 유감보다는 진전된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뿐이지, 책임 주최를 정확히 밝히는 표현이 아니다.
독일의 사과와 일본의 (비)사과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일관성·진심·사과의 실천, 이 세 가지 부분에서 다르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본 사과의 문제에 대한 핵심은 아래 3가지로 집약된다.
- 이랬다 저랬다 하는 일관성 결여
- 사과에 대한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위안부 문제나 왜곡된 교과서 내용을 보면 진심으로 보이지 않음
- 책임 있는 실천이 없는 사과와 실천 사이의 비일관성
- 『쿨하게 사과하라』 217-218p
5.
SPC 그룹의 허영진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기자들의 질의응답은 일절 받지 않았다. / 출처: JTBC
요즘 뉴스를 보면 대기업 총수나 정치인 등 대표격을 가진 이들이 사과를 안 하거나,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하거나, 사과를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잘못한 주체에 대한 표현이 빠졌거나, 사과가 아닌 유감을 표현한다거나, ‘이 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식으로 수식하거나 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언론학자인 정준희 교수는 사과를 ‘미안, 사과, 사죄’로 나누어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 미안: 내가 뭔가 잘못한 거 같아서 내 마음이 불편하고 당신 마음도 불편한 것 같으니, 화해를 해서 안정을 이루자는 제스처
- 사과: 명백한 잘못이 존재하며, 그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이야기하는 것
- 사죄: 잘못의 수준의 심각하여 교정하지 않으면 나에게 처벌이 있거나, 다른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는 경우 취하는 제스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사과하는 것일까? 행해진 잘못이 나로부터 유래했다는 인정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에게 초래한 고통과 피해에 대해 공감해야 하며, 이 상태에서 적절한 언어를 쓰거나 적절한 행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한국어에 사과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있고, 사과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미안함도,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해야 하는 사과도 드문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도 제시한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위계가 강하고, 사과는 언제나 밑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통념이 있는 것이다. 요즘 국민들이 눈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과는 최고 권력자들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사과에 대한 개념이 구멍이 많다.
제대로 된 사과에는 “내가”라는 주어가 있어야 한다. “잘못의 내용”이 있어야 한다. “손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야 가장 좋은 사과이며, 좋은 사과문이 된다고 정준희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대국민 사과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A. 주어가 없다.
잘못한 사람이나 잘못한 행동이 언급되지 않고, 피해를 받은 사실이나 상황만 표현한다.
- 예시: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께 불편함과 피로감을 끼쳐 죄송하다”, 김건희
B. 조건적이다.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피해를 증명할 책임을 옮긴다.
- 예시: “제가 만약 상처를 입혔다면 사과합니다.” 또는 “불쾌했다면 사과합니다.”
C. 자기를 방어한다.
방어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한데, 대의를 위해서 했다거나(연구자들은 이것을 ‘초월 전략’이라고 부른다), 나도 피해자라는 방어가 흔하게 쓰인다.
- 예시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 박근혜
D. 수동태를 쓴다.
‘나’라는 주어를 없애고,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만 말한다. 또는 상대방이 입은 피해에 대한 언급만 한다. 최근 빵 공장 노동자가 작업 중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가 발생한 후 SPC가 처음으로 발표한 사과문이 그러했다.
- 예시: “저희 회사의 생산 현장에서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매우 참담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며,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 SPC 허영인 회장, 2022년 10월 15일 첫 사과문
SPC 불매운동이 커질 기미가 보이자 SPC 회장은 사고 6일 만에 두 번째 사과문을 직접 읽었고, 머리를 여러 번 조아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사과는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유가족들에게 직접 사과한 게 아니라 대국민 발표를 통해서 사과했고, 피해가 있었음을 인정했으나 회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어서 그럴 것이다.
또한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 조치,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말은 있었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책임지는 회사의 대표가 유가족께 ‘예우’해 드리기로 했다는 표현을 썼다.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는 하나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그리고 ‘직원들을 잘 가르치지 못해서’라는 이유도 들었다. 이는 결국 내 탓이 아니라 직원 탓이라고 말하는, 자기 방어적인 사과문의 형태이다.
사과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자신이 초래한 고통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분적인 사과와 자기 방어적인 사과는 상대방의 입장으로 관점이 움직인 것이 아니다. 그런 사과는 회복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로하지 않는다.
5. ‘자기 방어의 전략’
다음은 『공개 사과의 기술』에 인용된 William Benoit라는 학자의 자기 방어 전략들 가운데, 사과와 사과문에서 흔히 보이는 요소들이다.
부인
- 그 일이나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을 부인한다.
-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린다.
책임의 회피
- 누군가가 나를 도발했다. 즉, ‘쟤가 시작했다’.
- 나도 피해자다.
- 몰랐다.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 통제권 아래의 일이 아니다. 또는, 나는 그 일을 막을 능력이 없었다.
- 좋은 의도였다. 좋은 의도가 안 좋은 결과를 만든 것은 사고였다.
잘못의 축소
- 자신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나라는 사람이 그랬을 리가 없다.
-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못 보는 것이 뭔지는 말할 수 없다.
-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더 큰 대의를 위해서 한 것이다.
- 사과한 사람을 공격한다. 진짜 잘못은 네가 한 것이다.
원문: 정은혜의 브런치
참고문헌
- 그레고리 베이티슨 『마음의 생태학』, 책세상, 2006
- 김호,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신경과학에서 경영학까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신뢰 커뮤니케이션』, 어크로스, 2011
- 정준희 ‘권력자들은 왜 사과를 안 할까‘, 〈정준희의 해시태그〉, 2022년 10월 17일
- 이충원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발언, 사과 일지‘, 연합뉴스
- 에드윈 L. 바티스텔라 『공개 사과의 기술』문예출판사, 2016
- ‘허영인 SPC 회장, 평택 공장 사고 대국민 사과문(전문)‘, 2022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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