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투자 유치, 하긴 했는데요
지난 10월 14일 발란이 시리즈C 라운드를 마무리하면서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3개 플랫폼 모두 추가 투자금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실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투자 유치 자체에 성공한 것만 해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극단적인 경우 서비스 중단을 선택하는 곳이 나올 정도로, 대외적인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장의 위기를 넘겼을 뿐, 여전히 발란이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우선 기업가치가 대폭 내려갔습니다. 올초만 해도 명품 커머스 최초의 유니콘을 꿈꾸던 발란이었지만, 최종적으로 3천억 원 수준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는 작년 10월 시리즈B 기준으로 2,500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에 비하면 20% 정도 오른 것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투자금액 규모도 줄었습니다. 시리즈B 때 총 325억 원을 받은 반면, 이번에는 250억 원을 확보하는데 그쳤거든요.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경쟁자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도 발란에게는 악재입니다. 우선 트렌비는 350억 원이라는 가장 큰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금 공격적인 확장을 준비 중에 있고요. 머스트잇은 가장 적은 금액인 200억 원을 받았지만, CJ ENM이라는 강력한 우군을 얻게 되었습니다.
시장 1위라도 쉽진 않습니다
물론 여전히 셋 중에 발란이 가장 유리한 지점에 서있다는 걸 부인할 순 없습니다. 현재 명품 버티컬 내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플랫폼이 바로 발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발란은 올해 연간 거래액 목표를 1조 원이라 밝혔는데요. 안타깝게도 현재 돌아가는 상황만 봐서는 아무리 업계 1등이라 하더라도, 이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발란의 상반기 거래액이 전년 대비 400% 증가한 3,812억 원을 기록하며 고속 성장한 것 같지만, 전년이 아닌 직전 반기와 비교하면 확실히 성장세가 둔화된 모양새고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3분기 실적도 좋지 않았을 걸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러 데이터를 종합해 볼 때, 명품 수요는 확실히 급감하고 있습니다. 우선 네이버 쇼핑 클릭량을 봤을 때,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을 제외한 주요 프레스티지 브랜드와, 가장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아미, 메종마르지엘라 등 매스티지 브랜드 모두 관심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고요. 이를 반영하듯이, 명품 플랫폼 3사의 MAU 추이도 올해 1분기를 정점으로 점차 하락 중인 데다가, 특히 3분기 들어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명품 수요가 감소한 원인을 추정해보면요. 우선 2분기에 본격적인 엔데믹에 접어들면서, 소비가 분산되기 시작했고요. 특히 그간 어려움을 겪던 명품을 제외한 다른 패션 브랜드들의 실적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이러한 대체재 소비의 증가는 당연히 명품 소비 감소를 불어왔을 거고요. 또한 3분기 들어서는 인플레이션 등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환율로 인해 여행이나 면세점으로 명품 수요가 이탈하진 않았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락 속도는 확실히 우려되는 수준이고요. 이처럼 시장 자체의 역동성이 떨어진다면, 아무리 내부 경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발란의 내일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멀고 먼 흑자 전환의 길
그렇기에 발란은 이제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IPO라는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해선 성장과 수익 두 마리 토끼 중 하나는 적어도 잡아야 하니까요.
일단 발란의 부채비율은 55% 수준으로 타 명품 버티컬 대비 양호합니다. 더욱이 작년 적자 확대의 주원인이 공격적인 마케팅이었던걸 고려하면, 올해는 확실히 이를 자제한 터라 수익성이 일정 수준 이상 개선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안정적인 흑자를 기록하기엔 역시나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일단 거래액 경쟁을 하기 위해, 벤더 상품 비중이 크게 늘렸는데요. 이러한 오픈마켓 형태로는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선 수수료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거래액 성장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디지만,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오케이몰이 직매입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매입은 상당한 운영 역량 없이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거래액 규모를 키우는 데도 불리하고요.
다행히도 발란이 론칭 초기부터 강점으로 내세웠던 것이 해외 부티크 확보입니다. 따라서 이를 기반으로 직매입 사업을 꾸준히 키우고, 소싱 측면에서도 차별화 노력을 지속한다면 발란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더욱이 일단 작년 치열한 경쟁 속에서 1위 자리를 선점했다는 건, 큰 힘이 될 거고요.
다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명품 버티컬 커머스들이 여전히 구색과 가격 이외의 고객 차별화 요소를 찾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를 찾지 못한다면, 설사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친다고 해도 공급자들에게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고요. 더 많은 트래픽을 가진 다른 플랫폼들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할지도 모릅니다.
과연 발란은 자신만이 가진 본질적인 차별화 요소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원문: 기묘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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