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유세린 1등 만들기의 배후」에서 뷰스컴퍼니와 유세린의 협업에 대해 자세히 적은 적이 있다. 요약하면 140년의 전통을 지닌 바이어스도르프 그룹의 안티에이징 브랜드인 유세린을 ‘탄력’ 키워드로 소구해 타깃 다운그레이딩에 성공하고 올리브영 1등 브랜드로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자그마치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독일 본사를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답답했다. 본사 가이드라인에 맞게 수시로 점검하는 과정이 꽤 까다로웠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유럽 뷰티 브랜드와 달리 독일에서 나고 자란 바이어스도르프. 그들이 이러한 컨펌 과정을 통해 지켜내고자 하는 전통성이 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바이어스도르프의 가장 대표적인 얼굴이자 세계인이 사랑하는 스킨케어 브랜드, 니베아(NIVEA)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역사의 ‘푸른 통’, 1890년에 시작되다
푸른 통으로 유명한 니베아는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화장품 회사다.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는데, 1882년 독일인 파울 카를 바이어스도르프가 설립한 의약품 회사 ‘바이어스도르프’가 1890년 슐렌지엔 출신의 약사 오스카 토플로위츠에게 인수되며 시작한다.
반창고, 밴드를 최초로 생산하고 보디케어 제품을 판매하던 바이어스도르프는 1911년 이작 리프쉬츠 박사에 의해 양모에서 추출한 최초의 유화제를 만들게 된다. 물과 기름을 결합시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주는 유화제는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으며, 훗날 모든 크림의 기초가 됐다. 리프쉬츠 박사는 이 유화제에 ‘아름다운 왁스’라는 뜻의 유세릿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걸 활용해 만든 크림이 니베아 크림의 시초다.
그럼 브랜드 이름은? 대부분의 유럽 뷰티 브랜드는 지역 혹은 사람들을 모티브로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니베아는 ‘눈처럼 하얀’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니비우스(Nivius)’에서 유래했다. 크림의 특성인 색을 활용한 것이다. 이렇듯 니베아는 크림에 진심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푸른 통에 든 하얀 크림을 하루에 50만 개씩 생산하고 있다. 대체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걸까?
시그니처 컬러로 브랜딩
디자인을 잘하고 못 하고의 기준이 뭘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각인 효과는 염두에 둬야 한다. 화장품 시장은 원물, 그리고 그에 맞는 아이디에이션을 통해 컬러적인 부분을 확장한다. 이미 다른 브랜드에 선점된 컬러는 경쟁력을 가지기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브랜드를 떠올렸을 때 그 브랜드 고유의 컬러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단순한 2~3가지 컬러를 활용해 마케팅하는 경우가 많다.
니베아는 파란색과 하얀색의 조화로 단순하게 포지셔닝했다. 물론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각인된 건 아니다. 이때 니베아는 무척 인상적인 방법을 쓴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세계적인 경제 성장이 지속되며 바캉스 같은 야외 활동이 크게 늘었는데, 이때 야외 활동에 적합한 ‘니베아 볼’을 광고용 소품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이 공은 제품을 사면 사은품으로 받을 수도 있었다. 인기가 어마어마해 전 세계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니베아는 볼의 시그니처 컬러를 가지고 브랜드 이미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카테고리의 확장
1950년대 말, 소비자 인지도가 올라감에 따라 바이어스도르프는 니베아 브랜드로 상품 라인업을 확장하는 전략을 펼쳤다. 크림뿐만 아니라 립밤, 보디로션, 핸드크림, 데오도란트 등등 500여 가지에 달하는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전략으로 니베아는 화장품 제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우리가 브랜드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A부터 Z까지 전부 기획해 라인업을 풀로 세팅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제품 혹은 어떤 라인이 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태핑해보고 가장 잘 먹히는 제품을 파악한 뒤 다양한 라인을 구축하는 게 좋다고 본다.
니베아는 제품과 브랜드를 동일시하는 방향으로 마케팅했지만, 요즘은 성분이나 라인을 띄우는 게 잘 먹힌다. 뷰스컴퍼니의 클라이언트 중 나인위시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에는 앰플을 주로 밀었지만, 이후 앰플 토너, 앰플 세럼, 하이드라 앰플 비비 스틱, 앰플 크림 등 다양하게 제품을 확장하며 하이드라 라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제품 하나만 띄우면 그 안에 갇힐 수 있지만, 라인에 대한 성분과 키워드까지 띄우면 전반적인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
R&D 기반 로컬라이제이션
니베아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가장 주요한 이유는 R&D에 대한 꾸준한 투자에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로컬라이제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에서 유행했다고 해외에서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화장품의 기본적인 특성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인종별 피부 타입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바이어스도르프는 함부르크 본사에 아시아인 및 라틴 아메리카인을 위한 R&D 센터를 설립해 제품을 개발한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이외에도 세계 여러 국가에 약 50여 개의 R&D 센터와 850여 명의 인력을 두고 다양한 인종과 피부 타입을 연구하고 있다.
K뷰티가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 부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아무리 좋아할지라도 화장품만큼은 그들에게 적합하게 변형돼야 한다.
MBX에서 나온 브랜드 ‘KAJA’가 이를 잘 수행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에 맞게 제품을 만들 수 있는 BM을 통해 세포라와 손을 잡고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분명 전통성도 중요하지만, 확장성 역시 필수로 가져가야 한다. K뷰티의 붐이 꺼지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로컬라이제이션의 부재다.
마무리하며
결국은 독자 기술이 있어야 오래갈 수 있다. 국내 제품은 전 세계에서 탑으로 여겨지는 코스맥스와 콜마에서 대부분 생산하고 있지만, 이들 안에서 특징 있는 기발한 제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브랜드가 원료에 대한 특허나 기술에 투자하고 있으나 R&D에 대한 전문성을 찾기는 어렵다. 소비자와의 소통 그리고 세일즈 마케팅에 편중된 현실이다.
과거에서 미래의 정답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요즘 브랜드 스토리 시리즈를 연재하며 과거에 있었던 성공 전략이 지금도 새롭게 먹히는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매번 강조하지만, 인문학적인 관점이 중요하다. 사람은 시대와 문명을 타고 난다. 과연 누가 전문성과 전통성을 토대로 세상의 흐름을 잘 타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원문: 박진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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