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서도 한때는 마법소녀물이 인기 절정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원래 이 바닥 원조라 하면 〈요술공주 샐리〉나 〈큐티하니〉를 꼽아야 하겠지만, 이 인기작들은 일본 문화 수입 금지 조치가 한창이던 시절이기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런데 1982년 즈음 〈요술공주 밍키(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를 공중파에서 틀어주면서 단숨에 어린이들의 눈을 사로잡게 된 것이다.
귀여운 그림에 다양한 코스튬, 그리고 밍키의 변신 장면은 당시 정말 센세이셜한 인기를 자랑했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놀이터에서 잘들 놀다가도 누가 “TV에서 밍키 한다!”라고 외치면 아이들이 싹 사라질 정도였다.
이렇게 시작된 마법소녀물의 인기는 이후 〈천사소녀 새롬이(마법의 천사 크리미 마미>〉가 이어받게 된다. 타카다 아케미의 수려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단순한 마법소녀가 아닌 변신 ‘아이돌’이 된다는 참신한 설정이 또다시 아이들(과 어른들ㅋ)에게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이다.
특히 성장한 새롬이의 모습에서는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작화와 캐릭터를 맡았던 타카다 아케미가 이전에는 〈시끌별 녀석들〉의 라무를, 이후에는 불후의 러브 코미디 히로인인 〈변덕쟁이 오렌지☆로드〉의 아유카와 마도카를 맡아 그렸음을 생각해볼 때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이 당시엔 아이들이 입으로 “빠빠르 샤클링클핑클!”혹은 “크르크르 피카링 크르피카링!” 하는 작품 내 주문을 외우고 다니는 일도 흔했다.
2.
그러나 한국에서의 마법소녀물은 이다음에 한번 삐끗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수입할 작품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다. 당시 일본에서 한창 잘 나가던 차세대 마법소녀물인 〈마법의 스타 매지컬 에미〉를 두고 평범하디 평범한 마법소녀물인 〈샛별공주(마법의 요정 페르샤)〉를 들여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마법소녀와는 달리 샛별공주는 자신의 연애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면 금단의 마법조차 기꺼이 쓰겠다는 자기중심적 주인공이었다(그로 인해 중간에 잠시 마법의 힘을 잃기도 함;). 작화나 캐릭터 면에서도 어린이들의 눈을 이끌 요소가 부족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방영된 〈꽃나라 요술봉(마법의 아이돌 파스텔 유미)〉는 샛별공주만도 못한 화제성으로 인해 소리 소문 없이 묻히다시피 했다. 이건 국내에서 방영한 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마법소녀물은 국내에서 사그라들게 되는데, 그나마 〈뾰로롱 꼬마마녀(마법의 천사 스위트 민트)〉정도가 명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대들에게 마법소녀물은 끝물인가… 하던 차에, 초초초대박이 터지게 된다. 바로 전설의 레전드 〈달의 요정 세일러문(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 나타난 것이다.
3.
세일러문의 대성공으로 한동안 ‘마법소녀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1990년대는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일러문들의 후속 편은 물론 〈빨간망토 차차〉, 〈마법기사 레이어스〉, 〈사랑의 천사 웨딩 피치〉, 〈간호천사 리리카 SOS〉, 〈천사소녀 네티〉 등등 기라성 같은 작품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면서, 마법소녀물은 그야말로 절정에 이른 듯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진정한 마법소녀의 전성시대는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1998년, 세기말의 패자 가운데 하나인 〈카드캡터 체리(카드캡터 사쿠라)〉가 등장했다. 이 작품은 마법소녀물의 클리셰를 모으고 재해석해 다시 쓰면서 재탄생시키고 그대로 전설이 된다. 특히 국내에서 체리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체리 때문에 애니메이션 세계에 입덕했다는 사람이 절대다수였을 정도다. 동인 행사가 있을 때 코스튬 플레이어의 절반은 체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설의 레전드가 된다.
그 뒤를 이어 유소년을 타겟으로 하는 마법소녀물 〈꼬마마법사 레미(오자마녀 도레미)〉 시리즈가 나오긴 했으나… 카드캡터 체리의 후폭풍이었을까. 21세기에 들어서자 그렇게나 많았던 마법소녀물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게 된다.
4.
명맥을 이어가는 시도가 없던 건 아니었다. 2004년부터 시작된 〈프리큐어〉와 〈리리컬 나노하〉시리즈가 그나마 위상을 이어받았다. 대신 〈스트라이크 위치스〉 같은 메카 무스메 식의 변주가 이따금 나오긴 했지만, 그야말로 극히 일부 계층에게만 어필하는 정도였다.
그 암흑기가 길게 이어지는 듯싶었으나, 암흑기 동안에 칼을 갈던 새로운 마법소녀물이 있었다. 이들은 기존의 클리셰를 완전히 박살 내면서 나타난다. 바로 꿈도 희망도 없기로 유명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가 나타난 것이다.
이후에는 싸우는 변신 소녀물의 새 막을 열었다는 〈전희절창 심포기어〉, 분명 변신소녀물이긴 한데 어지간한 액션 애니메이션 뺨친다는 〈킬라킬〉 등이 뒤를 잇게 된 것이다. 이 ‘싸우는 마법소녀’ 콘셉트는 정통파에도 유입된다. 그래서 프리큐어 시리즈의 여주인공들은 북두신권 뺨치는 주먹싸움(…)을 하기에 이른다.
※ 정말로 가차 없는 주먹싸움임
5.
세월이 흐르면서 2020년대가 되자 〈카드캡터 사쿠라〉의 후속편이 등장했고, 〈세일러문〉의 본격 리메이크, 그리고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마도카 마기카 극장판 최종편〉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이들이 마법소녀물의 명맥을 굵게 이어가는 셈이다. 전처럼 채널이 하나가 아니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분산되기는 하지만, 마법소녀물의 미래가 아직도 기대되는 이유다.
원문: 마루토스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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