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자인은 아무런 힘이 없다. 무엇을 하든, 전체 프로젝트 비용 중 디자인 비용이 가장 적게 책정된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망가지면 디자인이 가장 먼저 질책받고 , 가장 먼저 팀이 정리된다. 그래서 디자인과 학생이 가장 먼저 배우고 깨우쳐야 하는 게 있다.
디자인은 아무런 힘이 없다.
이걸 빨리 깨달을수록,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 다른 힘을 키워 디자인에 결합하는 학생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2.
사람들은 디자인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정작 디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도 듣지 않고 읽지 않는다. 그 누구도 전화기가 작동하는 원리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은 아직까지 디자인 후진국이다. 성공한 케이스 몇 개로 자꾸 대단한 것처럼 포장하려 하는데, 성공한 케이스가 전체 중 0.1%면 나머지는 대부분 잊혀지고 버려진다.
3.
디자인 하나로 벌어먹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디자인은 전문직이 아니라 노동직으로 전락했다고 봐야 한다. 노동의 강도는 점점 세지지만, 돈도 많이 벌지 못하고 대우도 좋지 않다. 과연 이런 환경에 미래가 있을까? 어서 빨리 다른 능력을 키와 디자인에 결합하든, 디자인을 부업으로 두든 해야 살아남는다.
기업과의 공조로 이루어진 순환 구조는 깨진 지 오래다. 과거처럼 디자인을 해서 회사를 운영하고, 그 직장이 평생직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스튜디오는 대기업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만 할 뿐이다.
외주 작업은 내 영혼과 젊음을 박박 갈아서 먹기 좋게 포장해서 남에게 파는 것이다. 이는 먹는장사와 다름 없어서, 블랙 컨슈머가 다수 존재한다.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 디자인 잘하는 걸 고민하지 말고, 아부하고 고개 숙이는 법을 먼저 배우면 편해진다.
만약 그래도 꿈꾸고 싶다면, 스스로를 위한 디자인을 하라. 남을 위해 하는 디자인은 잠시 동안 내 지갑을 두툼하게 하지만 나를 위한 디자인은 장차 내 삶을 꿈꾸게 만든다. 남의 프로젝트로 번 돈은 내 프로젝트를 위해 꼬박꼬박 모아둬야 한다. 내 콘텐츠가 없는 디자이너의 끝은 보험 없는 노년과 같다.
4.
디자인을 예술이라 부르던 사람들 대부분 생계가 어려워져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디자인으로 철학하려 했던 사람들도 생계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아직도 디자인으로 예술을 하고 철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진짜 중에 진짜, 서바이벌 킹이다. 배울게 많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까지 디자인을 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래도 어딘가에서 나의 소소한 능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바닥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디자이너들과의 연대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우리들이 자꾸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고 반대로 돈을 벌어주지 못하면 좋은 디자인 결과물이라 할 수 없다.
6.
그리고 제발, 디자이너들은 같은 디자이너들끼리 놀지 마라.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이 일을 왜 아직도 하고 있나’라는 절망감뿐이다. 대신 끝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이야기로 자극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 역시 새로운 걸 내놓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원문: 김광혁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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