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조금 진정된 것 같아서 한 마디를 조금 더 보태자면(…) 흠뻑쇼/워터밤을 둘러싼 논란에서 가장 위험한 의견은 사실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최 측이) 정당한 대가(=돈)를 지불하고 (물을) 사용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
현대 자본주의는 너무나 발전한 나머지, 돈은 자원을 배분하는 절대적으로 올바른 기준이며, 돈을 내면 자원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원은 유한합니다. 그리고 가격이라는 것도 사실 온전한 수요 공급 법칙의 결과 정해지는 것은 아니죠. 또 돈만으로 자원을 배분하면 당연히 불평등, 불공정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이재용이 갑자기 “태권 브이를 만들고 싶다”면서 여름철 전력 피크 타임에 대량의 전력을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이재용의 재력이라면 전기요금을 지불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재용이 ‘정당한 돈을 냈으므로 맘껏 전기를 써도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좀 더 복잡한, 자원의 배분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지구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우리가 함께 생존하기 위한 룰의 문제이기도 하죠. 전기나 수도를 쓰는 데 돈을 받는 건 그 룰의 일부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가뭄이 계속되어 시골에서는 제한 급수가 시행더라도, 도시권에서는 가뭄을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일단 도시권에 인프라가 집중된 탓이 가장 크겠죠. 그래서 이런 문제는 단순히 ‘돈을 냈으면 그만큼 물을 써도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풀어선 안 됩니다. 농지에서는 물이 부족한데 흠뻑쇼를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수도 인프라의 문제를 짚은 기사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런 도시 위주의 인프라 조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겠지요.
… 물론 어떤 사람들은 “꼬우면 니네가 도시에 살아라”라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기도 합니다만… 이 수준의 논리는 도저히 논의란 게 가능한 지경이 아닌 것 같으니 넘어갑시다.
좀 더 간단하게는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흔히 나오는 논쟁거리(?) 중 하나인데요. “옆자리에 누가 앉는 게 싫다”는 이유로 명절 귀성열차를 혼자서 옆자리까지 2자리 동시에 예매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겠죠. 의견이 갈릴 수는 있겠지만, 이걸 ‘돈을 냈으니 그만’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해서 용인할 수 있을까요?
저는 능력주의나 노력주의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능력과 노력이 여전히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게 여전히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이건 어쩌면 굉장히 ‘올드한’ 형태의 문제의식이기도 하죠.
다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능력주의를 너무 단순화해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거둔 보상을 순전히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과신하거나, 능력이 있으면 뭐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더 나아가 돈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소한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룰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 문제가 그 단초일 수도 있겠지요.
원문: 임예인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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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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