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상속자들〉의 김탄(이민호 분)은 전형적인 재벌 2세다. 출생의 비밀이 있고, 재벌 총수인 아버지는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다. 아버지는 돈과 명예만 안다. 친모는 철이 없다. 적장자인 이복 형은 아버지의 사업 승계를 받으면서 동생인 김탄을 ‘서자’라며 무시한다. 재벌 2세 친구들은 학교 폭력을 일삼는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당차고 매력적인 박신혜가 나타난다. 그녀를 위해 김탄은 점점 더 완벽한 왕자님으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정의로워지고, 학교 폭력을 일삼는 못된 녀석들을 혼내주고, 박신혜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간다. 뻔하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다.
극 초반에 그는 차은상(박신혜 분)과 미국에서 우연히 만나 여러 해프닝을 겪는다. 위기에 처한 그녀를 도와주다 미국인 부랑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같이 도망치던 중 숨기 위해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대사를 날린다.
혹시 나 너 좋아하냐?
이 멘트는 이후 수많은 예능에서 패러디되었고, 실제로 연인들의 주요한 멘트로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수많은 여성들을 심쿵하게 만든 아이돌 스타의 닭살 돋는 멘트로 이후 수많은 예능에서 패러디되었고, 실제 그 이후 고백하는 연인들의 주요한 멘트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실제로 결혼하게 된 박신혜에게 이민호가 멘션을 보내면서, 10년 만에 여러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여기서 심리학적 관점으로 질문하고 싶다. 김탄이 10년 전 그 멘트를 날렸을 때, 차은상은 정말로 ‘심쿵’했을까? 차은상보다 더 ‘심쿵’한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1. 자기 설득 (Self Persuasion)과 단순측정효과
사람들은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서 나온 정보나 이야기에 설득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신뢰할 만한 사람 중 최고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장 잘 설득된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당사자 스스로가 질문하고 답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러면 단순측정 효과로 인해 설득될 확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어떤 의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에 대한 행동이나 내용 범주의 기억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자기 행동을 과다하게 예측하여 답변하게 되고, 자신의 답변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효과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2. 자기 인식 이론(Self Perception Theory)
우리는 원래 어떤 대상에 대해 명확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색을 좋아해? 어떤 음식을 좋아해? 어떤 노래를 좋아해?
물어본다고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잘 모르기도 하고, 이전까지는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게 되면 그것을 계기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떤 색을 좋아하지? 답을 찾기 위해 자신에 대해 탐색하게 된다.
나는 차도 흰색이고, 옷장에 있는 옷도 대부분 흰색 계열이고, 가방도 흰색이야. 그러면 나는 흰색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렇게 자기 행동을 통해 자기 태도를 추론하고, 그 추론의 결과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기 인식(self perception theory)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 인식 절차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한 후 태도를 일치시켜 자신을 확증하게 된다.
김탄이 “나 너 좋아하냐?”라고 물었던 것은 어쩌면 자기 설득을 위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먼저 단순측정효과로 인하여 기억을 활성화시키고, 자기설득을 위해 자기인식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추적하여 추론했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 온 차은상을 자신의 집에 하루 재워 주었고, 차은상의 언니를 찾기 위해 동행하면서 갖가지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 왔던 자신의 행동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추론했을 것이다.
내가 얘를 되게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김탄은 차은상을 ‘심쿵’하게 만들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먼저 ‘심쿵’했을 것이다. 그리고 멋진 왕자님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에게 질문하라. 그가 답을 하도록 유도하라. 당신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하라. 스스로 답을 찾아봐라.
원문: 장철우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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