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회자 되고 있는 루나코인과 테라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테라-루나코인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이나, 이슈가 된 이유 등은 이미 다른 곳에서 다루고 있는지라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나는 현재 미디어에서는 다소 왜곡되어 알려지는 스테이블 코인과, 코인 투자와 관련한 토큰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
우선 테라-루나코인을 언급할 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코인 상장(ICO; Initial Coin Offering)을 통해 투자금을 담보로 한 일반적인 코인과는 달리, 특정 현물과의 연계(binding)를 통해 그 가치를 담보하는 형태의 코인을 의미한다. 스테이블 코인을 포함한 모든 코인류는 블록체인 기법을 사용하기에, 기술적인 측면에는 대동소이하다.
이렇게 기술적인 부분과는 별개로 각 코인별로 주어진 담보를 어떤 식으로 관리할지, 코인의 가격을 어떻게 설정할지, 코인 숫자는 어떻게 결정할지 등에 대한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 이러한 운용은 실질적은 현금 흐름을 발생시키고, 현금 흐름은 경제 활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경제 활동을 통상적으로 토큰 경제(Token Economy)라 칭한다.
스테이블 코인은 기술적으로 일반 코인들과 동일한 블록체인 기법을 사용하면서, 현물과 연동된 코인을 의미한다. 이렇게 코인과 연계된 현물은 기축통화(달러화·엔화 등)가 될 수도 있고, 오일이나 부동산같이 국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물이 될 수도 있다. 참고로, 이번에 이슈가 되었던 테라(Terra)는 달러화와 연동이 된 코인이다.
스테이블 코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신용이 있어야 한다. 즉 실제로 1코인이 1달러로 바인딩이 되려면, 1달러의 가치를 담보해줄 수 있는 확실한 뒷배(혹은 지원자)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자유롭게 자신이 투자한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투자금(즉 코인을 매입한 돈)과는 의미가 다르다. 즉 투자가 아닌, 코인 자체의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무언가(작가 주: 뒷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테라코인과 같이 달러가 바인딩된 경우, 가장 확실한 뒷배는 아마도 달러 제조국인 미국이 될 것이다. 나라가 뒷배가 되는 경우이다. 물론 기축 통화국인 미국이 달러보다 리스크가 큰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 뛰어들리는 없겠지만, 비기축 통화국인 나라에서는 자국 통화와 연계된 코인을 고려한 나라들이 꽤 된다.
그래서 테라-루나 사태가 심각해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의 뒷배가 실질적인 현물(달러)이 아닌, 루나라는 일반 코인으로 설계가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테라의 뒷배인 루나코인의 투자금이 테라의 투자금을 상회할 경우에는 이러한 설계가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루나의 투자금이 빠지기 시작하면(즉 투자자들이 팔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테라에서 보장했던 20%의 연 이자율은 달러 환율의 변동이 없더라도 루나가 매년 20% 이상의 성장을 해야지만, 겨우 본전(break even)을 찾을 수 있는 구조이다.
물론 코인이 확보한 담보와 시가총액(혹은 기대가치)이 1:1일 필요는 없다. 이는 기업을 담보로 하는 주식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시가 총액 또한 기업 자체가 가진 가치와 투자자 기대에 의한 가치가 합쳐진 형태로 반영이 되고, 이러한 시가총액의 반영은 코인에도 동일하다. 그리고 기업의 가치는 단순히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담보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 자체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이윤을 포함하게 된다. 하지만 코인은 코인 자체가 뭔가를 할 수 없다. 오로지 투자자의 투자금만이 실제 가치가 된다. 투자금은 투자자의 심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일반적으로 스테이블 코인은 단순히 투자자의 투자금뿐만 아니라, 바인딩이 된 현물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일반 코인보다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테라의 경우는 코인(루나)을 담보로 설계가 되어 있다. 원래는 테라가 이윤이 나면 루나를 보전해주고, 루나가 이윤이 나면 테라가 보전해주는 형태를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테라가 손해가 나면 루나로 메꾸고, 루나가 손해가 나면 테라로 메꾸는 형태, 즉 ‘밑장빼기’ 혹은 ‘카드 돌려막기’로 변질 되었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손실을 보전할 담보(달러)가 없으니, 단순히 코인의 수를 늘리는 방법 외에는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가 경제를 부양한답시고, 실질적인 생산활동 없이 돈을 마구 찍어내면 초인플레이션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면, 경제학 원론(ECON101)을 참고하시라).
2. 테라코인&루나코인
자꾸 테라-루나코인이 스테이블 코인이라서 더 위험하고, 다른 코인류들은 덜 위험하다고 떠들고 다니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헛소리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루나코인은 일반 코인이기 때문에 다른 일반적인 코인들과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동일하다. 루나는 일반 코인이고, 테라가 스테이블 코인이다. 즉, 테라코인이 얼핏 보기에는 스테이블 코인처럼 보이지만, 그 담보가 일반 코인인 루나이기에 사실상 일반 코인이다.
일반 코인이 위험한 이유는 코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담보가 오로지 투자자의 투자금만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돈을 투자할 때는 문제가 없는데, 어떠한 이유로든 투자자들이 돈을 빼기 시작하면 이를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렇게 시장에서 코인을 팔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속도가 붙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투자금이 빠지는 현상을 뱅크런(bank-run)이라 한다.
주식에서는 이 현상이 짧아도 몇 시간, 길게는 몇 주에 걸쳐서 일어난다. 그러나 코인에서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다. 몇 초 사이에도 발생한다. 이는 돈이 모일 때도 그렇고, 빠질 때도 마찬가지다. 이를 ‘변동성이 크다’고도 한다. 뱅크런의 위험성은 현존하는 모든 코인류가 동일하다. 심지어 투자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담보가 확보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코인류에 대한 투자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루나코인은 망했지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안 망했으니 다른 것 아닌가요?
아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사실상 동일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다르게 보인다면, 그것은 투자자들의 기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루나가 망한 건 투자자들의 기대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이고, 다른 코인들은 아직까지 기대가 남아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루나의 예에서도 봤듯이, 투자자들의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루나는 불과 몇 주 전까지 가치가 50조에 이르는 코인이었다. 그 안전성을 의심했던 사람이 없었다. 그런 코인마저도 불과 일주일 만에 상장폐지가 되었다.
욕망의 불나방. 이게 내가 한 줄로 정의하는 코인 투자다. 오로지 인간의 욕망에 이해 그 가치가 결정되고, 그 가치를 쫓아가기 때문이다.
3. 토큰 이코노미(Token Ecomony)
현재 알려진 토큰 이코노미(혹은 코인 시장)은 토큰을 주식, 부동산과 같은 현물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투자의 개념이 등장하고, 경제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코인은 실질적인 현물이라기보다는 마일리지로 정의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현물과 마일리지의 가장 큰 차이는 담보의 유무다. 토큰(혹은 코인)을 현물로 바라본다는 의미는, 토큰 자체가 현물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다. 반면 마일리지로 바라본다는 것은 해당 토큰을 담보하는 현물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항공사 마일리지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항공사 마일리지는 항공권 구매가 가능하다. 온라인 쇼핑 등을 통해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공사라는 뒷배가 없으면 그 가치는 사라진다. 실질적으로 돈이나 현물은 아니지만 돈과 같은 역할을 하고, 가치를 결정짓는 담보는 별도의 뒷배라는 점에서 기존의 주식이나 외화와는 다른 양상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이 토큰 이코노미의 보다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싶다.
즉, 현재 코인 시장이 가진 위험성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코인을 기존처럼 화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마일리지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인의 가치가 무형의 전자화폐보다는 물리적인 현물(spot market)과 바인딩된 형태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의 변화에 가장 근접하여 설계된 토큰 이코노미가 바로 스테이블 코인이다.
여기에서의 현물은 같은 기축통화일 필요는 없다.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기름이나 반도체 등이 될 수도 있고,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제품이 될 수도 있다(물론, 이 경우에는 완전히 오픈된 public blackchain이 아니라 기업의 환경을 따르는 private blockchain이 될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나 UAE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자신들의 통화와 연동한 가상화폐를 구상한 적이 있다. UAE는 2026년까지 자신의 통화와 연동한 코인을 개발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통화들은 미국 달러와 본딩(bonding)되어 있어, 환율이 고정되어 있다. 따라서 굳이 자신의 통화와 연계한 가상화폐를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는 현물인 오일을 기반으로 한 가상화폐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 작가 주: 예전에 필자가 한 논문에서 이와 같은 관점으로 UAE에 오일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참조: Kim, S.-K., “Various Perspectives in New Blockchain Design by Using 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 IEEE-ICBC Proceedings (2019), pp. 163-164)
토큰 이코노미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은 아주 대단하며, 그 유용성 또한 상당히 높다. 특히,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보안 네트워크 설계 분야는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인 주제이기도 하다. 토큰 기반의 코인 시장 또한 ‘욕망의 불나방’에 힘입어, 몇 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가치가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하고 그 가치가 올라갔다 하더라도, 코인 시장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 그 한계는 다음과 같다.
- 실질적인 현물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투자자의 욕망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된다는 점
- 상한과 하한을 통제할 수 없으며, 그 변동성이 크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든, 코인에 투자를 하든 근본적인 한계를 잘 이해하고 있기를 바란다.
원문: Amang Kim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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