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00,000원
집 한 채 가격도, 초호화 명품 가격도, 고급 세단 가격도 아니다. 바로 침대 가격이다.
지난해 11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스웨덴 럭셔리 매트리스 브랜드 해스텐스의 ‘그랜드 비버더스’를 선보였다. 이 침대 가격은 무려 5억 원. 국내에서 판매되는 침대 중 최고가다. 스웨덴 최고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수작업 제작한 이 제품은 주문을 해도 배송까지 꼬박 반년이 걸린다.
명품 시장에 가려졌지만, 수면 시장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면 시장 규모는 11년 4800억 원에서 21년 3조 원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 중 매트리스 시장은 1조 5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특히나 수천만 원짜리 고급 매트리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이미 시몬스는 작년 매출 3분의 2를 매트리스 기준 700만 원 이상 고가 제품으로 거뒀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비결은 뭘까? 분석한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여행 비용을 대체한 소비라거나, 매년 수면장애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분명 일리 있는 말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리빙용품 품목은 모두 성장했고, 그중 편안함과 인테리어 모두를 잡을 수 있는 매트리스는 가장 큰 수혜자였다.
또한 21년 건강생활 통계정보에 따르면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사람은 16년 54만 3184명에서 20년 약 65만 명으로 20.8% 증가했는데, 이를 봐도 잠과 연관도가 큰 매트리스에 더 관심이 쏠리는 건 정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이게 근본적인 원인일까? 코로나19 때문이라면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 시점에 하락세를 맞이하게 될 게 뻔하다. 정말 수면장애 환자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면 성장 한계가 분명할 것이다. 그럼에도, 매트리스만큼은 꾸준히 성장하리라는 확신이 드는 이유는 뭘까.
수천만 원짜리 매트리스가 앞다퉈 출시되는 이 시점, 지금도 직장인 중에는 연봉도 개의치 않고 고가 매트리스를 구매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매트리스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이미 예견된 고급 매트리스 열풍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90년대부터 20년 이상 에이스를 책임졌던 광고 문구다. 임팩트가 얼마나 컸다면 이렇게 오래 문구를 유지했을까?
그만큼 이 문구가 사람들 마음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이미 소비자들 마음속에는 무의식적으로 높은 퀄리티의 매트리스에 대한 열망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가장 인상 깊은 광고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광고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에이스 침대 소비자 태도 분석’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문구를 착안한 계기는 단순 명료하다. 당시만 해도 침대 업계끼리의 싸움은 무의미해지고, 10대 가구 업체에서 슬금슬금 침대 점유율을 늘려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에 에이스는 침대만큼은 꼭 좋은 것을 사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한 것이다. 이에 설득된 소비자들은 긴가민가하던 감정은 접어두고 다시 에이스 침대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침대는 고퀄리티 가구를 사야 해’라는 생각이 소비자들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 광고는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없었다. 차이를 만드는 최고의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니까.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더 나은 고가 매트리스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고가 매트리스 열풍은 단순히 코로나 열풍, 숙면 환자 증가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 이미 예열은 끝마친 상황이었고, 코로나19와 수면 문제는 기폭제 역할을 해줬을 뿐이다.
마치며
이커머스 역시 코로나19의 최대 수혜자다. 게다가 코로나가 끝나도 꾸준히 우위를 유지하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써오다 보니 코로나 이전에는 몰랐던 편리함이 습관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결국은 만족도 차이다.
매트리스 역시 이커머스와 비슷한 맥락이다. 코로나19가 끝나도 업계에서 수천만 원짜리 매트리스를 앞다퉈 출시한다는 건, 업계에서도 만족도가 증명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매트리스의 행보는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원문: 유인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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