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가까이하고 버번은 더 가까이하라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회식법이 생겼다면, 그것은 친구들과 집에 모여 가볍게 술을 마시는 미식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임에는 참가비는 없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술을 한 병씩 가져오는 규칙이 생겼다. 누구는 스카치 위스키(스코틀랜드)를, 또 누구는 꼬냑(프랑스)을 가져온다. 뭐야 이거 완전 세계 술 박람회인데?
내가 가져온 술은 버번 위스키다. “친구는 가까이하고, 버번은 더 가까이하라”라는 미국 속담처럼 버번 위스키는 미국인의 소울이 담긴 술이라고 볼 수 있다.
스카치 위스키에 비해 맛은 거칠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강렬함을 가졌다. 심지어 하이볼이나 탄산음료를 섞어마셔도 맛있다. 그런데 왜 이름이 버번이냐고? 오늘은 버번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MZ세대가 빠져든다, 버번 위스키가 뭐길래
일반적으로 아는 스카치 위스키가 양복이라면, 버번 위스키는 청바지 같은 매력을 가진 위스키다. 부드러운 맛은 덜하지만 거칠고 풍미가 와일드하다. 보리가 아닌 옥수수를 주재료로 쓰기 때문에 맛과 향에서 나는 고소한 느낌이 더욱 강한 편이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다른 음료와의 조합도 좋아 젊은 층에게 인기인 ‘하이볼’ 등의 메뉴에 주로 사용되는 위스키가 버번이다.
버번 위스키는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가 모두 버번 위스키인 것은 아니다. 위스키의 종가를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는 스카치 위스키라고 하지만, 버번 위스키는 스카치 위스키보다 까다로운 생산조건을 지닌 위스키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옥수수 함량이 전체 재료 곡물의 51%를 넘어야 함
- 최종 증류 알콜 도수가 80%를 넘지 않아야 함(그 이상이면 곡물의 특성이 사라진다)
- 오크통에 넣을 때 알콜도수는 62.5% 이하여야 한다
- 숙성을 마친 후 병입 할 때는 알콜도수가 40% 이상이어야 한다
- 조미료와 색소를 첨가하지 않는다
- 오크통은 언제나 새것만 사용한다
켄터키에 위스키를 들여온 남자
그의 이름은 ‘에반 윌리엄스’다. 웨일즈에서 태어난 그는 1780년대 독립전쟁이 끝난 미국에 이주를 한다. 지금은 켄터키의 최대 도시인 ‘루이빌’에 자리를 잡고,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이제 막 정착민들이 자리 잡은 루이빌에서 건설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의 전설은 따로 있었다. 바로 1783년, 켄터키 내에 상업용 증류소를 지은 것이다.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던 켄터키의 버번 위스키가 산업이 되는 첫 단추라고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에반 윌리엄스’라는 제품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켄터키는 스코틀랜드와 달리 보리보다는 옥수수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었다. 때문에 옥수수와 호밀을 통해 증류를 한 위스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또한 켄터키는 오하이오강과 미시시피강을 통해서 미국 동부와 남부를 이어주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배를 탄 사람들은 중간지점인 켄터키에서 하루를 숙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불티나게 팔리던 제품이 바로 ‘켄터키산 위스키’였다. 이 켄터키 위스키가 남부지역(특히 뉴올리언스)에 자주 팔리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버번 위스키라는 장르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시작점, 즉 버번 위스키의 단군할아버지가 된 ‘에반 윌리엄스’는 켄터키 길거리 표지판에서도, 또 에반 윌리엄스 체험관 등을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딴 제품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에반 윌리엄스가 버번의 위기를 극복하는 법
하지만 불티나게 팔리던 버번 위스키에도 여러 위기가 있었다. 술을 아예 금지시켰던 금주법 시대, 경제위기였던 대공황 시대 같은 사건들은 버번 위스키 산업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보드카의 인기’였다. 1970~80년대 미국 내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보드카가 인기를 끌자 버번 위스키는 시시콜콜한 술이 되고 말았다.
재미있는 점은 그 당시에 ‘에반 윌리엄스’는 판매량이 오히려 좋아졌다는 것이다. 에반 윌리엄스는 1980년대 중반부터 매년 10%씩 판매량을 올렸는데 이유는 남다른 혁신이었다.
에반 윌리엄스는 당시 젊은이들이 다른 음료에 보드카를 타서 마시기 좋아한다는 점을 착안했다. 에반 윌리엄스는 애호가들을 위해 맛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젊은 층에게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소다수(탄산음료)를 비롯해 콜라를 섞어 마셔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간단하게 타서 마실 수 있는 에반 윌리엄스의 장점은 버번 위스키를 멀리하려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어필이 되었다. 그리고 에반 윌리엄스는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팔리는 버번 위스키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낯설지?
버번 위스키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남대문 시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에반 윌리엄스’는 지난해 말부터 정식 수입이 되었다. 이제는 하이볼 잔과 함께 세트로 판매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에반 윌리엄스의 장점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가성비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풍족한 양의 버번 위스키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고 할까?
에반 윌리엄스를 비롯해 버번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눈으로 즐기고, 향을 맡는다. 버번 위스키 자체가 강하기 때문에 벌컥 마시기보다는 입안에 골고루 이동시키며 풍미를 즐긴다. 이를 켄터키 사람들은 ‘위스키 허그’라고 부른다. 그리고 삼킨 후에 여운을 감상하는 것이 기본적인 버번 위스키의 음용방법이다.
에반 윌리엄스에서는 향에서는 달콤하고 고소한 땅콩의 느낌. 그리고 약간의 나무향과 후추 같은 화한 느낌이 올라온다. 마셔보면 화끈한 버번 위스키 특유의 화함이 올라오지만 고소한 느낌만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처음에는 거친 듯 느껴지지만, 마실수록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버번 위스키가 너무 강하게 느껴지더라도 걱정 없다. 에반 윌리엄스의 즐거운 점은 진저에일을 타서 하이볼을 만들 때의 매력이다. 알싸한 진저에일과 함께 섞인 에반 윌리엄스 하이볼은 바에서 마시는 하이볼 같은 풍부한 맛을 내준다. 콜라나 사이다와 섞어서 어른용 탄산음료(?)를 만들어 마셔도 좋다.
이렇게 저렇게 해도 무려 1L의 용량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3만원 초반이다. 가성비를 넘어 갓성비. 버번 위스키와 친해지고 싶은 입문자라면 꼭 갖추어야 한다. 때마침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하이볼잔과 함께 판매하고 있으니 수강신청 하듯 빠르게 챙겨두면 ‘즐거운 버번 위스키 생활’을 할 수 있다.
오늘의 홈술을 빛내줄 버번 위스키는?
친구들과의 조촐한 술모임. 버번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에반 윌리엄스를 나누고, 하이볼과 버번콕까지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알수록 맛있고, 술은 맛볼수록 즐거워진다. 세상에 맛있는 위스키는 정말 많으니까.
거칠지만 풍부하고, 달콤하면서 고소한 풍미의 버번 위스키 역시 인생에서 놓치면 너무 아까운 술이다. 오늘 그 시작이 되는 위스키를 맛보는 것은 어떨까?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How Kentucky Became the World’s Bourbon Capital, CHRISTOPHER KLEIN, 2018.9.1
- Bourbon Whiskey History and Timeline, Colleen Graham, The Spruce Eats, 2021.4.28
- Our Distillers – Evan Williams Bourbon, Evan williams
- EVAN WILLIAMS BOURBON, HEAVEN HILL DISTILLERY
- 10 Things You Should Know About Evan Williams, GABRIELLE PHARMS, Vinegar, 2020.9.11
- Bourbon boom: Evan Williams Experience tours flow with history, Kirby Adams, The Courier Journal, 2014.7. 28
- Evan Williams the Man and His Bourbon, Don Williams, bourbonfoll, 2019. 12. 20
- 8 Years In, Evan Williams Bourbon Experience on Whiskey Row Releases ‘Square 6’ its 1st Ever Bourbon Whiskey, Distillery Trail, 2021.5.6
-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 조승원, 싱긋, 2020.5.8
- 위스키 마스터 클래스, 루 브라이슨, 시그마북스, 2021.11.10
- 위스키 인포그래픽, Dominic Roskrow, 영진닷컴, 2019.1.30
- ‘세계 2위’ 버번위스키 에반 윌리엄스 국내 들어온다, 이충진, 스포츠경향, 2021.11.16
- 가성비 좋아 혼술족 푹 빠졌다…옥수수로 만든 이 술의 정체, 진영화, 매일경제, 20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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