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도네시아 정부가 팜유 수출을 금지하면서 식용유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포도씨유 싼 걸 검색하느라 시간을 좀 썼다. (SSG닷컴에 싼 물건이 있더이다) 근데 인니는 왜 팜유 수출을 금지한 걸까.
찾아보니 인도네시아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가인데 정작 자국 동네 마트에서 팜유가 사라진 것이다. 당연히 식용유 가격이 크게 올랐고, 튀긴 음식을 많이 먹는 동남아 특성상 식용유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인니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상승하자 다급해진 정부가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나선 것이다.
2.
그럼 왜 인도네시아 국내에서 팜유가 사라진 걸까. 일단 커다란 배경은 우크라이나 사태다. 이 지역에서 전쟁이 나면서 해바라기씨유 생산이 중단되자 식용유 가격이 도미노처럼 인상되는 형국이다. 팜유라고 안전할 리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인상된 가격에도 팜유를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인니 정부 당국의 잘못된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
식용유 가격은 이미 지난해부터 오르기 시작했는데, 정부는 국내 가격 안정을 위해 팜유 가격의 상한선을 정해두었다. 1메트릭톤 당 1,400달러. 그런데 우크라 사태로 식용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팜유가 1메트릭톤당 1,600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당연히 업자들이 국내 공급이 아니라 수출을 하려 들었고, 이에 인도네시아 마트에서 팜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책 실패는 또 있다. 이 역시 우크라 사태와 관련이 있는데,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각국이 팜유를 원료로 하는 바이오디젤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바이오디젤을 기존 경유에 섞어서 차량 운행을 하는 것이 연료비를 낮출 수 있고 친환경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유가 대책 마련을 위해 팜유 생산업자들에게 식용유가 아니라 바이오디젤 원료로 공급할 경우 세금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기업들은 이익을 따라 움직이니 당연히 식용유 판매업자보다 바이오연료로 판매하는 것을 우선했다. 그 결과 식용유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연료와 식량이 경쟁하는 상황에 처했다.
3.
인도네시아는 정치인들의 ‘민족주의 담론’이 강하다. 이게 심지어 경제에도 적용된다. 지난 2019년 인도네시아 대선 때 조코위 현 대통령과 그의 라이벌 프라보워 후보 모두 보호주의에 가까운 경제공약들을 내세우며 경쟁했다.
대체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외국에서 우리나라 자원을 헐값에 가져다가 자신들이 이익을 취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자원 수출국들에서 쉽게 나타나는 정서라고 본다. 여기에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겹쳐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외국의 수탈로부터 우리나라 자원을 지키자’는 식의 선동을 하고, 이게 득표에 꽤 영향을 주는 듯하다.
이 레퍼토리가 팜유 증발 사태에 재현된 것이다. 정부의 정책을 따라서 바이오연로로 팔거나 수출을 한 기업들을 ‘카르텔’ 혐의로 몰아세우며 닦달을 하는 중이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전격적으로 팜유 수출 금지를 선언한 것이다. 일종의 자원민족주의의 발로다.
세계 최대 생산국에서 수출을 막아버리면 안 그래도 불안한 국제 식용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럼 2위 생산국이 열일해줘야 한다. 근데 2위인 말레이시아는 현재 코로나19 방역으로 공장들이 정상 가동되지 못하는 상태다. 공장 직원들이 조를 나눠서 돌아가며 근무를 하는 탓에 생산량이 감소했다.
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이 전쟁으로 인해 여러 나라들이 군사적 안보에 불안해하지만, 그 못지않게 식량 안보에도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 중단은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보지만, 하나의 위기가 연쇄적으로 다른 위기를 불러오면서 세계가 함께 힘들어지는 길로 들어서지 않을까 걱정이다. 각국이 하나의 연결된 사슬로 인식하고 서로 협력을 해야 문제가 풀리는데 자원민족주의처럼 각자도생의 길로 가려 하면 결국 함께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자원 없고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이 위기에 더 민감할 것이다.
원문: 박정욱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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