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커피를 파는 곳일까? 그렇지 않다. 어느 순간 스타벅스는 콘센트와 무료 와이파이를 팔고, 블루보틀은 느림의 시간을 판다. 그렇다면 그다음 버전의 카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그 힌트를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요즘 미국의 MZ세대는 스타벅스 대신 이곳을 찾는다. 그런데 이 카페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단 1개도 없다. 심지어 직원들은 일일이 손님들에게 1:1로 붙어서 말을 건다. 귀찮거나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모든 손님들은 화기애애한 얼굴로 웃으면서 나간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오늘 마시즘은 즐거움을 파는, 떠오르는 카페 브랜드, ‘더치브로스(Dutch Bros)’의 이야기다.
코로나 시대에 떠오른 더치브로스, 너는 누구니?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전 세계의 외식 업계는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곳 더치브로스는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전년 대비 37% 넘게 매출이 상승했는데 그 비결은 ‘드라이브 스루’다. 1992년부터 일찌감치 모든 매장을 드라이브 스루로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드라이브 스루만 전용으로 운영하는 카페가 흔치 않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많은 카페들은 그동안 ‘매장 내의 경험’을 중시하며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손님들의 카페 방문이 어려워지자 최근에서야 미국에서 드라이브 스루를 점차 확대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보다 30년이나 앞서, 더치브로스는 이미 드라이브 스루 전문 카페를 선점하고 있었다. 요즘도 매일 2만 대 넘는 자동차가 더치브로스를 찾는다.
그래서일까? 현재 미국에서 더치브로스는 스타벅스의 강력한 대항마로 주목받는다. 더치브로스의 연 매출은 4,000억 원 규모이고, 2021년 9월 상장한 지 일주일 만에 공모가의 2.5배까지 주가가 올랐다. 물론 오픈발(?)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그조차 이 브랜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영향력은 소셜미디어에서 만날 수 있다. 더치브로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절반 이상이 16~25세다. (참고로 미국은 만 16세부터 운전을 할 수 있다.) 이들은 더치브로스를 맛있게 먹는 ‘시크릿 메뉴’ 레시피를 서로 공유하고, 스스로 더치브로스 팬임을 증명하면서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린다.
이런 독특한 문화는 다른 카페가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젊은 팬층이 있는 더치브로스가 남들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10,000개의 음료, 달콤함으로 승부를 보다
더치브로스가 지향하는 카페는 블루보틀이나 스타벅스가 아니다. 오히려 ‘빽다방’과 비슷하달까? 누구나 업무 중에 탕비실에서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고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잠시 업(up)되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을 것이다. 더치브로스의 음료는 전반적으로 매우 달콤하다. 흔히 ‘당 떨어지는’ 시간에 더치브로스에 들러 달달한 음료 한 잔 마시고, 에너지 부스트업을 받고 가는 것. 이것이 더치브로스가 그리는 그림이다.
게다가 더치브로스 메뉴는 그야말로 커스터마이징의 끝판왕이라고 보면 된다. 15개 기본 음료를 베이스로, 시럽과 토핑 등의 조합을 선택하면 선택 가능한 메뉴가 무려 ‘1만 개’까지 늘어난다. 예를 들어 ‘라떼’ 종류만 약 73개 정도 된다.
너무 옵션이 많아도 피곤하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미국 MZ 세대는 오히려 좋아한다. ‘911 커피’, ‘유니콘 블러드’ 등 자신만의 독특한 조합을 찾아서 이름을 붙이고, 인스타그램에 공유한다. 이런 시크릿 메뉴를 주문하면 직원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바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이쯤 되니 모든 레시피를 기억하는 직원들이 제일 대단해 보인다. 이 사람들 뭐야, 슈퍼컴퓨터야?
단골을 만드는 스몰챗, 직원들의 격이 다른 친절함
더치브로스의 직원이 대단한 이유는 암기력뿐만이 아니다. 더치브로스를 한 번 가본 사람은, 반드시 재방문을 한다. 직원들과의 추억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더치브로스는 고객 한 명 한 명에 대한 사랑,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언제나 여유롭게 미소를 띄고 짧은 시간이나마 꼭 대화를 나눈다. 내 이름과 자주 마시는 음료를 기억하는 건 기본. 우리 집 강아지, 고양이를 기억해주기도 하고, 근황토크를 나눌 만큼 손님과 바리스타 관계를 뛰어넘어 친구가 된다.
하루는 남편을 잃은 손님이 방문했는데, 더치브로스의 온 직원이 손바닥을 포개어 위로해주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슬픈 소식을 들은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와 기도를 해주었던 것이다. 이 사진 한 장이 페이스북에서 공유되고, 수천 개의 ‘좋아요’가 달리며 이슈가 되면서 방송까지 나왔다. 그만큼 진심을 다해서 손님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진정성이 느껴진 사례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더치브로스 매장을 낼 수는 없다
고객은 직원이 사랑한다면, 직원 사랑은 회사가 한다. 더치브로스는 직영으로 매장을 관리한다. 오직 최소 3년 이상 일한 직원들에게만 매장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본사는 입지 선정부터 부동산, 건설비용, 인테리어까지 대외적인 비용을 모두 부담한다. 이렇게 회사 측에서 기본적인 준비를 끝내 놓으면, 가맹점주는 머신 설비 등의 기초적인 비용만 부담하고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서 시작할 수 있는 구조다.
덕분에 직원은 적은 비용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할 수 있고, 본사는 검증된 사람에게만 매장을 믿고 맡길 수 있으니 관리 리스크가 줄어든다. 서로 윈윈(win-win) 구조다. 이렇다 보니 신규 직원들은 점주가 되는 것을 꿈꾸며 젊은 나이에 더치브로스에 입사해 열정을 불태운다.
노동은 대체해도 즐거움은 대체할 수 없다
카운터의 얼굴들이 키오스크로 대체되는 시대. 역설적으로 더치브로스는 다시 사람의 힘을 강조한다. 노동력은 대체될 수 있어도, 사람들끼리 나누는 교류와 진정한 즐거움은 오직 사람만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더치브로스는 삭막하고 외로운 도시 속에서, 언제나 즐거움을 약속하는 장소로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모든 관계가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디지털로 친구를 만나게 되는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이들의 존재가치는 더욱 빛이 났다. 어쩌면 더치브로스가 점점 더 많아질수록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미국IPO] 9월 셋째주 요약 (1/2)-아마존∙노바티스에 헬스케어 커머스 플랫폼 제공 ‘데피니티브 헬스케어’ 상장 등, 정시우, 더스탁, 2021.9.21.
- [미국IPO] 드라이브 스루 커피체인 ‘더치브라더스’ 뉴욕 상장 … 산불-코로나 반사익에 매출-주가↑, 박지아, 더스탁, 2021.9.19.
- DUTCH BROS – CASE STUDY, Katherine Quan, Getting People Right, 2021.11.15.
- Dutch Bros Surges Onto Wall Street with Dreams of 4,000 Locations, Ben Coley, QSR magazine, 2021.9.20
- The Untold Truth Of Dutch Bros Coffee, Liz Barrett Foster, mashed, 2020.10.23.
- The Best Secret Menu Drinks at Dutch Bros, the In-N-Out of Coffee, Pete Cottell, thrillist, 2019.5.24.
이 필자의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