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이라는 은어가 있다. 대개 실세인 임원이 HR팀 또는 현업에 압력을 넣어 지인 또는 지인의 가족을 채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기회를 뺏는 것으로 옳지 못하다.
이와 달리 직원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지인을 추천해 채용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를 직원 추천 제도(Employee Referral Program)라고 부른다. 혹자는 직원 추천 제도 역시 비판하기도 하지만 대세는 점점 확대하는 모양새다. 이런 변화가 솔직히 놀랍지 않은 이유는, 이 제도가 갖는 명확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직원 추천 제도의 장점과 더불어 활용하는 방법도 알아보자.
스타트업은 직원 추천이 대세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대세였던 직원 추천 제도가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데는 스타트업의 영향이 크다. 스타트업이라는 회사 형태 자체가 직원 추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3년간 두 곳의 스타트업을 경험했다. 두 곳 모두 창업부터 어느 정도 규모를 키워가기까지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우선 창업자 또는 공동창업자들이 최초 팀을 조직할 때는 주변에 믿고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는 멤버들로 꾸린다. 본인이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거나 지인의 추천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스타트업은 태생부터 직원 추천을 뿌리에 두고 있다.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본격적으로 조직을 불려 나가려 할 때 리더 포지션을 찾기 시작한다. 마케팅, PM, 개발, 사업개발, 전략 분야에서 스타트업 문화에 어울리면서 실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재를 찾는다. 이때 뛰어난 인물이 제 발로 찾아와 준다면 좋겠지만 아직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신생 스타트업에 그런 일은 쉽게 생기질 않는다. 결국 창업자를 비롯한 시니어 멤버들이 지인 찬스를 써가며 수소문해서 사람을 찾아낸다. 내 경우도 일했던 스타트업 모두 창업자 또는 공동창업자와의 인연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인재를 영입하고 나면 그 뒤로는 수월하다. 특히 스타급 인재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무슨 말이냐면 그 인재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와 함께 일할 또 다른 인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개발 또는 PM 부문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다. 때문에 많은 스타트업에서는 스타급 인재를 잃지 않기 위해 많은 안전장치를 해두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직원 추천의 형태다. 전수 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두 곳의 스타트업에서 직원 추천 입사자 비중은 최소 30% 이상이었다. 그리고 이 수치는 결코 높은 것이 아니다. 검색해보면 몇몇 스타트업에서 공개한 비중 역시 2~30%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직원 추천 제도를 3년 정도 경험해보니 공통적인 장점과 단점을 한 가지씩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한 장점은 최소한의 자원으로 검증된 지원자를 빠르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지명도가 낮은 신생 스타트업에는 제대로 된 지원자가 많이 지원할 가능성이 적다. 이때 직원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추천한 지원자는 최소한의 실력은 보장됐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아낄 수 있는 시간과 비용은 덤이다.
확실한 단점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스타급 인재를 따라온 멤버들의 경우, 해당 인재를 놓칠 때 똑같이 놓칠 위험 요소가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막을 방법은 사실 많지 않다. 스타급 인재에서 스톡옵션 등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방법도 있고, 따라온 멤버들이 실력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서 더 이상 누구에 의존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하게 도와주는 방법도 있다.
직원 추천 제도의 원조는 외국계 회사
직원 추천 제도를 제일 처음 접한 것은 처음으로 외국계 회사를 다닐 때였다. 독일계 회사였는데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직원 추천 제도를 시행했다. 내 기억에는 추천 후 입사해서 6개월을 다니면 100만 원을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제도를 통해 입사한 사람도 적었고, 당연히 100만 원의 보상을 받아 간 직원도 적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인을 회사에 추천해 채용 프로세스를 밟게 해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돕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본사는 왜 이런 제도를 만들어서 에너지를 쏟게 하지?’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캐나다에 와서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캐나다는 직원 추천이 아니면 회사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가장 흔한 채용 프로세스가 바로 직원 추천이다. 공채가 아닌 수시 채용을 하다 보니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직원들의 추천을 받아 사람을 뽑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떠올려 보면 독일계 회사를 다닐 때도 독일 본사는 직원 추천이 굉장히 활발했던 기억이 난다. 우스갯소리로 본사 포지션이 사내 채용 게시판에 올라와도 이미 직원 추천을 통해 내정자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스타트업은 그렇다 쳐도 왜 독일과 캐나다 같은 외국에서는 기업들이 직원 추천 제도를 선호할까? 실제로 2019년 Express Employment Professionals이 캐나다 회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가장 효과적인 채용 수단에 대한 서베이에서도 직원 추천 제도가 33%의 지지를 받아 1위로 꼽혔다. 2위와 3위로는 채용 전문 회사와 온라인 채용 게시판이 꼽혔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직원 추천 제도로 입사한 이들의 결과가 더 낫기 때문이다. ERIN이 2020년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원 추천 제도로 입사한 직원의 45%가 4년 이상 회사를 다닌 반면, 채용 공지를 보고 입사한 직원의 경우 25%만이 2년 넘게 회사를 다녔다. 또한 직원 추천 제도를 통한 경우가 채용 가능성이 4배나 높았고, 회사는 이를 통해 직원 추천 제도로 1명을 채용할 때마다 7,500달러의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고 한다.
직원에게도 효율적인 이직의 기회인 이유
직원 추천 제도의 일반적인 경우를 떠올려보자.
A팀장: B 개발자가 다음 달에 퇴사하기로 했어요. 다들 아시다시피 공석으로 놔둘 수 없는 포지션이어서 오늘부터 바로 채용 절차에 들어갑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시 주변에 비슷한 경력의 지인이 있으면 편하게 추천해주세요.
C 매니저: 제 지인 중에 마침 B 개발자보다 1년 정도 연차는 낮지만 정말 괜찮은 개발자가 있는데 바로 연락해볼게요.
(그날 저녁)
D 개발자: 여보세요?
C 매니저: 오랜만이에요.
D 개발자: 아, 잘 지내셨죠?
C 매니저: 예, 그럭저럭요. 오후에 톡으로 간단하게 설명드린 것처럼 이번에 저희 회사에 개발자 한 분이 퇴사를 하게 됐거든요. 저희 회사에 핵심 포지션 중에 하나예요. 얘기 듣자마자 바로 떠올라서 연락드렸어요. 너무 좋은 기회 같아서요. 제가 직무 소개 나와 있는 링크는 통화 끝나고 전달 드릴게요.
D 개발자: 예, 감사해요. 안 그래도 지금 회사에 3년 정도 있으면서 경험할 수 있는 대부분은 경험해본 것 같아서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C 매니저: 예, 그러면 검토해보시고 지원 여부 결정해주세요. 응원하겠습니다.
D 개발자: 예, 그럼 들어가세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간다. D 개발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현재 직장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경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아직 이력서를 낸 곳은 없다. 소위 간을 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적합한 포지션을 지인이 필터링을 거쳐 추천해준 셈이다. 즉, 직원 추천 제도는 회사 입장뿐만 아니라 지원자 입장에서도 발품을 많이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 여기서 직원 추천 제도를 언급할 때마다 뜨거운 감자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직원 추천 제도는 결국 네트워크가 강점인 사람이 유리한 제도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제도도 아니다.
17년간의 사회생활을 토대로 했을 때 직원 추천 제도에 대한 내 생각은 어느 정도 공평하다는 것이다. 본인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면서, 다른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퇴근 후 작은 그룹이든 큰 커뮤니티든 가끔씩 네트워킹을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내 경우도 첫 번째 이직 후로는 계속 직원 추천으로 회사를 옮겼다. 외부 커뮤니티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직하기도 했고 첫 직장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인연으로 옮기기도 했다.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세 가지 제안
직원 추천 제도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 있을까? 사실 꼭 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기보다는 커리어 전체적을 봤을 때도 도움이 되는 행동들 세 가지를 소개한다.
하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리자. 회사 내에서도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업무를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영역과 장점이 드러난다. 누군가를 추천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경력이 어떤지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대신 여러 번 만나게 되는 경우 자신의 사회생활 영역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결국 채용 포지션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떠올릴 수 있다.
둘, 덕을 쌓아야 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평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추천한다는 것은 추천하는 사람이나 추천받는 사람이나 모두 신뢰가 걸린 문제다. 추천했는데 당사자가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며칠 만에 퇴사하면 양쪽 모두 입장이 난처하다. 따라서 추천하는 사람은 굉장히 신중하다.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한다.
때문에 직장에서든 커뮤니티에서든 또는 지인 관계에서든 덕을 쌓아야 한다. 실력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돈이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인성을 갖춘 실력자를 찾는 것은 그 사람을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 만난 스타트업 대표들의 특징은 사람을 본다는 것이다. 본인 회사에 필요한 경력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 눈에 들면 오랜 기간 눈여겨본다. 그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이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까지 살피면서 자신의 회사와 핏이 맞는지 살핀다. 그런 다음에 확신이 들면 함께 일하자고 제의한다.
셋, 좋은 멘토를 두자. 굳이 다른 이유를 들지 않아도 직장 생활에 있어 좋은 멘토가 있다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건강한 인맥을 갖게 해 준다. 자신에게 좋은 멘토와 연결된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도 자신과 잘 맞다는 느낌이 든 적이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평소 따르던 멘토 A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분의 SNS 댓글을 통해 그분이 내가 비슷한 또래지만 존경하는 멘토 B와도 친한 사이란 걸 알고 놀라면서 동시에 반가웠던 적이 있다. 내 주위에 좋은 조언을 해줄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직원 추천 제도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데, 다름이 아니라 자신이나 추천을 받았다고 해서 꼭 일방적으로 신세를 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추천을 받고 지원해서 채용이 됐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추천한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추천으로 인해 평균 2백만 원 정도의 보상을 받고, 회사 역시 채용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인재를 추천해 회사에 도움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추천인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가 올라간다. 즉, 추천인이나 피추천인 모두가 윈윈이지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최고의 장점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본인이 아무리 관심이 있어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 면에서 직원 추천 제도는 이 장벽을 허무는 데 도움을 준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외국계 회사에서 전략 매니저를 하다가 30대 후반에 스타트업을 더 늦기 전에 경험하고자 몇 차례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전해 들은 가장 큰 이유는 사십에 가까운 나이였다. 거의 포기할 즈음에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지인의 추천으로 막차를 탈 수 있었다. 최근에 가상화폐 스타트업이라는 완전히 다른 분야로 건너올 때도 마찬가지로 10여 년 전에 함께 일 년 동안 컨설팅을 같이했던 지인의 추천이 있었다. 그 당시 서로 너무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솔직히 무모하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보도 부족하고 인맥도 부족하기 때문에 성공률은 더욱 떨어진다. 하지만 직원 추천 제도는 이런 모든 경계를 허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직원 추천 제도의 최고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일잘러’ 주니어 직원들을 만나면 ‘이 직원은 어디다 데려다 놔도 자기 몫은 충분히 할 친구다’라는 생각을 한다. 주니어 직원들의 경우 적응력이 뛰어나 인더스트리에 관계없이 편하게 추천할 수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좋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인더스트리를 넘나들며 경험을 쌓아갈 수 있는 이들이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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