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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딸에게 해주는 당근라페: 비록 그게 볶음일지라도

2022년 2월 23일 by 오가닉씨

1.

이게 뭐야?”

“뭐긴. 너 맨날 먹는 그거, 당근.”

“그래, 당근. 그러니까 당근라페 말하는 거야?”

“뭐? 당근라떼? 러페?”

아직도 엄마는 나를 어린 애로 여기는 것이 틀림없다. 이따금 직접 만든 반찬을 내보이면 엄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가 반찬을 해오다니 엄마 눈엔 그게 얼마나 어설퍼 보였는지, 피식 웃기까지 하신다.

얼마 전에는 제주 당근이 가장 맛있을 때라 하여, 당근라페를 만들어 가게에 가져갔다. 활동량이 많은 만큼(아니 실은 그 이상으로) 먹어대서 불어난 살을 빼려고 가볍게 끼니를 때울 요량이었다. 마침 내가 만든 빵과도 잘 어울렸으니 이만한 채소 반찬도 없었다.

당근라페는 당근을 잘게 썰어 소스에 절인 프렌치 샐러드다. / 출처: ROUXBE

파릇한 잎채소 위에 오른 주황의 당근. 이 추운 겨울에 푸성귀만 먹으려니 허한 데다가 비주얼도 영 심심했는데, 주황빛의 가느다란 당근채를 얹으니 한결 나아 보였다. 내가 먹는 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는 말했다. 네가 어쩐 일로 그럴듯한 반찬을 해냈냐는 말씨였다.

당근이야? 채도 얇게 잘 썰었네.

겨우 한 이틀 도시락을 자급했을 뿐인데 그마저 힘겨웠다. 이를 귀신같이 알아챈 엄마는, 다음 날부터는 당신이 샐러드를 가져다주겠노라 했다. 엄마의 샐러드는 투박할 것이 분명했지만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엄마가 당근라페를 해온 것이 아닌가!

 

2.

사실 인천에 가게를 열게 된 몇 가지 이유 중에는 엄마가 사는 도시라는 점도 있었다. 퇴사를 결정하고 가게를 알아보면서 당연히 내가 살던 동네를 일 순위로 고려했다. 하지만 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엄마네에 들렀다가 우연히 예전에 살던 지금의 동네를 지나게 된 것이다. 주름이 늘어버린 내 얼굴과 마음과는 달리 모든 게 그대로인 이 동네에 나는 흠뻑 빠져버렸다. 엄마 집과 차로 15분 거리라 그런지, 왜인지 이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확신이 섰다.

가게를 열고 두어 달쯤 지나 엄마가 합류했다. 엄마는 두어 시간 동안 새벽녘 내가 이끈 전쟁터를 정리했다. 다음 날 치를 전쟁을 준비하는 것도 엄마의 몫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주방 경험이라곤 집밖에 없던 엄마에겐 꽤 어렵고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나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엄마가 주로 해온 일이 비교적 활동적인 마트 판매일이었으므로, 이 어두컴컴한 주방에 선 엄마는 꽤 외로웠을 것이다. 그나마 말동무라고는 딸내미뿐인데, 모든 게 서툴던 그때는 극도로 예민하던 때라 가시가 잔뜩 돋친 내게 쉬 말을 걸거나 볼멘소리는 전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도시락

모든 것이 낯선 상황. 나였다면 꽤 괴로웠을 그 상황에, 그래도 엄마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웃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당신이 싸 온 도시락을 먹을 때였다. 한참이나 때를 놓치고 점심이라고 하기도 무색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내게 엄마는, 매일같이 갓 지은 밥과 다른 종류의 반찬을 내놓았다.

여름엔 커다란 통에 시원한 냉국을, 겨울엔 따끈한 수제비를 담아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을 보는데도 엄마의 손엔 한 달은 너끈히 먹고도 남을 양의 음식이 담긴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엄마는 때가 아니라며, 겨우 앉아 허겁지겁 식사하는 나를 말 없이 바라봤다. 그때만큼은 종종 늘어놓던 잔소리를 내려놓았다.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뭔가 먹고 싶다고 하면 다음 날 엄마의 보따리엔 꼭 그 음식이 들려있었다. 국물보다 건더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잘 아는 엄마가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는 정말 묵직했다. 국물은 그저 양파, 호박, 묵직한 두부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을 뿐, 뜨끈하고 구수한 자신의 역할은 해내지 못했다.

급기야 엄마의 보따리는 우리 집 냉장고에까지 들어섰다. 어떻게 너만 먹냐며 남편에게도 챙겨주라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반찬이 수급되니 애매하게 먹다 남은 반찬이 냉장고가 칸칸이 자리했다. 솔직히 가끔 숨이 막혔다. 나도 내 뜻대로, 내 방식대로 해 먹고 싶은 것이 있는데 냉장고를 열 때마다 빈틈없이 들어찬 통을 보면 그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살 안 찌는 김밥은 없을까? 하는 한 마디에 등장한 엄마의 창작 요리

이 때문에 엄마와 다투는 일이 잦았다. 엄마의 밥상머리에선 금기(?)나 다름없는 간에 대한 불평부터, 아직 집에 많이 있는데 또 가져다주면 어떡하냐, 보지도 않고 대뜸 뭘 또 그리 많이 가져왔냐는 나의 말이 화근이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와 팽팽히 맞서기도 했고, 때론 그냥 웃어넘기기도 했다. 그리고는 꼭 오래된 건 버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체 엄마의 반찬을 아무렇지 않게 내다 버릴 자식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손에 닿지도 않는 냉장고 저 끝에 둔 반찬은 결국 쉬어버리기 일쑤였다. 그 괴로움 덩어리를 앞에 두고 혹시나 더 두고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이리저리 살피며 한참을 서성였다. 엄마의 반찬은 한참이나 내 속을 끓이다 결국 음식물쓰레기봉투로 곤두박질쳤다.

 

3.

엄마의 당근라페 아니아니 당근볶음(!)

엄마가 당근라페를 알 리 없었다. 한 번도 그에 관해 말한 적도 없었고, 엄마가 물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근라페의 핵심인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엄마의 냉장고에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엄마는 보란 듯이 당근라페를 만들어 주었다. 당근을 얇게 채 썰어 기름에 볶고 참깨를 뿌린, 이게 엄마표 당근라페였다.

당근라페, 아니 당근 볶음을 받아 든 나는 말 없이 웃었다. 깔깔거리니 엄마는 그렇게 그게 좋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두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당근은 역시 기름에 볶아야 그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어.

당근을 채 썰어 볶은 게 얼마나 맛있겠냐만은, 정말로 맛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달큰한 당근임이 틀림없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엄마 손에 들린 보따리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딸이 좋아하는 걸 해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을 꼬박 서른여덟 해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알아챘기 때문이다. 참 오래도 걸렸다.

 

진짜 당근라페 만들기

제주도의 대표적인 월동채소 중 하나인 당근. 본래는 가을 뿌리채소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따뜻한 날씨로 제주의 당근 출하량이 평년보다 15% 정도 증가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 가장 맛있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요.

제 빵과 먹을 때가 가장 맛있어요 ㅎㅎ

  1. 당근을 채 썰어 준비합니다. 되도록 슬라이서를 이용하는 게 좋아요. 최대한 얇게 썰어야 식초, 홀그레인 머스터드의 향이 잘 베니까요.
  2. 채 썰어둔 당근에 소금을 살짝 넣어 절여둡니다. 10분~15분 정도면 충분해요.
  3. 당근을 절이는 동안 홀그레인 머스터드, 올리브 오일, 레몬즙(혹은 식초도 가능), 취향에 따라 설탕을 섞어줍니다. 이런 절임 소스를 만들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모든 건 ‘취향’에 따릅니다. 그래서 저는 계량도 제대로 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시큼한 맛보다 홀그레인 머스터드의 걸걸한 향을 좋아해서 잔뜩 넣었습니다. 맛있는 당근은 그 자체로 달큰해서 따로 설탕은 넣지 않았습니다.
  4. 절여둔 당근과 위의 소스를 비비적거립니다. 대부분의 음식이 그렇듯 당근라페도 최소 하루는 지나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간을 핑계로 입에 넣었습니다.

술안주로도 훌륭합니다

사실 당근라페의 진짜 매력은 다른 음식과 곁들여 먹을 때 드러납니다. 저는 빵쟁이라 주로 빵과 샐러드와 먹는 걸 선호합니다. 달큰하면서 아삭한 당근 사이로 홀그레인 머스터드가 톡 터지며 자칫 심심한 빵의 포인트가 되어주거든요.

물론, 엄마표 당근라페, 아니 당근 볶음도 당근을 맛있게 즐기는 데에 충분합니다.

원문: 오가닉씨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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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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