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자영업자 등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건 실감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이해는 됩니다. 텅텅 빈 가게와 밤 9시면 문 닫는 술집들이 ‘눈에 보이니까요.’
그런데 코로나의 피해를 혼자 덮어쓰는 사람들은 그 외에도 또 있습니다. 노인 등 고위험군과 현장의 의료진들, 방역 공무원들입니다. 이건 눈에 안 보이죠. 그러다 보니 여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진짜로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기저 질환 없는 젊은 계층 같은 경우 입원 없이 앓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특히 그 위험성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델타도 1% 남짓, 오미크론은 0.2% 남짓에 불과한 치명률 때문에 결과적으론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주변에 걸린 사람 보니 별것도 없던데?”
하지만 실제로는 전파율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방역 및 의료 현장에는 엄청난 과부하가 발생합니다. 특히 고위험군에서 위험성이 매우 증가하기 때문에 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중환자가 폭발하죠.
문제가 생기는 곳은 병원뿐만이 아닙니다. 코로나19를 검사하고 관리해야 하는 사람의 절대적인 수가 늘면서 선별 검사소와 지역 보건소의 업무 과중이 한계치 이상으로 폭발합니다. 실제로 검사에서 양성이 나와도 환자들이 지침을 전달받지 못하는 등의 심각한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9할 이상이 무증상 또는 경증으로 지나간다고 하지만, 이는 나머지 1할은 중등도 이상의 증상을 겪는다는 얘기가 됩니다. 의학적으로 ‘경증’과 ‘중등도’란 일상적으로 말하는 ‘경증’과 ‘중등도’와는 차이가 아주 큽니다. 사실 병원에 입원할 정도만 아니면 모두 ‘경증’으로 분류하는 수준이니까요.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는, 누가 무증상이고 경증에 머무르며 누가 중등도나 중증으로 진행될지 미리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노인층이나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은 존재하고, 고위험군이 중증으로 이행할 확률이 더 높겠죠. 하지만 그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확진자 수가 적정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을 때는 그나마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이후 상태를 보고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확진자 수가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 모니터링 체계도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재택치료자 누군가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을 때, 이를 방역전선에서 판단하고 병원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늦어질 수밖에 없죠.
의료는 분리되어 돌아가지 않습니다. 코로나 병원을 따로 만들어서 코로나 환자들을 모두 거기에 입원시킨다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에 대응하느라 의료 및 보건 역량이 소진되면, 다른 환자들에 대한 관리 능력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고위험군이 아니니까 코로나에 걸려도 상관없다, 그러니 방역을 푸는 게 낫다”고 쉽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환자가 폭발하며 의료가 붕괴하면 그 영향은 코로나 고위험군에만 미치는 게 아닙니다.
다른 질병이나 부상으로 치료 또는 입원이 필요하더라도, 이미 의료 역량이 소진된 상태이므로 적절한 처치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의료 붕괴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는 거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은 농담처럼 이런 얘길 합니다.
모두를 방역 현장에서 일주일씩 의무적으로 일하게 한다면, 코로나 별거 아니라는 소리를 감히 못 할 텐데.
말하자면, 우리는 전선에서 한참 떨어진 평화로운 후방에 있는 겁니다. 전선에서는 목숨을 걸고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고요한 후방에서 안온한 일상을 보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나 안전한데 도대체 뭐가 전쟁이라는 거야?” “괜히 방역 패스니 뭐니 오버하면서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애꿎은 우리만 귀찮게 구는 거 아냐?”
얼마나 화가 나는 일인가요. 아, 위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대사, 농담이라고 말씀드렸죠? 농담이라는 게 농담이었습니다. 저 말은 진담이에요. 방역 현장에서 일해보면 지치기도 지치는 거지만 인간 혐오에 걸리거든요. 오미크론 유행은 방역 현장에 그야말로 폭탄을 떨어뜨린 격입니다. 이미 번아웃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다시 또 무제한으로 갈아 넣고 있다는 겁니다.
그나마 오미크론 대유행에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게 백신 접종 덕분이라는 게 데이터상으로 명백함에도, 이상한 음모론을 퍼트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PCR 검사가 멀쩡한 사람을 확진자로 만든다거나, 샘플을 섞어 확진자를 늘린다거나 하는 음모론들도 있죠. 언론은 이런 음모론을 자정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이상으로 허황되게 퍼트리는 역할도 합니다.
전방의 희생 덕분에 안전한 후방에서 안온한 일상을 누리면서, 최소한 이런 음모론에 편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가 별것 아니라거나 방역이 모두 정치인의 음모라거나 하는 얘길 하려면, 최소한 방역 일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주일이라도 체험해보고 얘길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위기에 이르렀고요. 이 위기를 넘기면 새로운 전기(轉機)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위기의 크기는 그간 경험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높을 것입니다.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여전히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희생과 헌신이 대부분에게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사람들이 싸우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문: 임예인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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