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생일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1월 초에 태어나서일까? 생일이 되면 묘하게 한 방에 나이를 2살 먹는 것 같은 기분이다. 1월 1일에 먹은 떡국이 다 소화되지도 않는데 미역국을 먹는 더부룩한 느낌이다. 떠들썩한 생일파티도 부담스럽고, 뭔가 주목받는 기분도 더더욱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된 거다.
그래서 생일이 되면 여행을 감행한다. 시끌시끌한 축하 속에 억지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떠난다. 절친한 친구들과도 가고, 혼자도 갔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건 역시 내게 생일이란 걸 갖게 해 준 ‘부모님’이었다.
스케줄과 타이밍, 그리고 통장 사정이 허락한 덕분에 몇 번은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에서 생일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몹쓸 역병이 전 지구를 휩쓴 후 타국으로 떠나는 대신 제주로 2년째 생일을 보내러 간다.
이번에도 생일 주간을 제주에서 보냈다. 나도 부모님도 제주를 수없이 갔으니 이름난 여행지야 다 돌아본 터였다. 그것들을 빼니 딱히 할 게 많지 않았다. 육지의 혹한을 피해 따뜻한 남쪽 땅, 서귀포로 떠나기로 큰 줄기만 정해 놓고, 서귀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뒤졌다.
그러다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주황색 귤이 알알이 박힌 귤밭 보이는 창문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 겨울 동백으로 유명한 위미리의 작은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몇 해 전, 군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 당시 유행하던 흑백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적 있다. 지나가다 즉흥적으로 찍은 거라 별 준비도 없이 찍은 사진을 부모님은 꽤 좋아하셨다. 이제는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내가 단발 중학생이던 시절 찍은 가족사진 이후 처음이었다. 사방을 금칠 한 큼지막한 액자 속 어색한 미소만 가득한 오래된 가족사진 말고도 새로운 가족사진이 생겼다.
그걸 찍은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사이 부모님은 주름은 더 깊어지고, 나도 달라진 게 많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이번에는 좀 더 본격적으로 준비해 보기로 했다.
사진을 찍는 당일, 오전부터 스케줄이 빡빡했다. 제주로 떠나기 전부터 일찌감치 예약해 둔 호텔 근처 미용실에 가서 머리부터 매만졌다. 잡티와 군살, 얼굴 윤곽은 포토샵이 해주지만 헤어 스타일은 기본 이상 가지고 가야 한다. 미용실에 들어서자마자 초면인 미용사에게 주문했다.
주말드라마 속 회장님, 회장 사모님 스타일로 해주세요.
미용실을 문을 열자마자 들이닥친 육지 손님의 요구는 단호했다. 미용사는 잠시 당황했지만 딸 생일이라 여행을 왔고, 여행 온 김에 사진관 가서 가족사진을 찍을 계획이라는 엄마의 수다에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누군가의 딸이었을 그녀도 이 마음이 뭔지 안다는 듯 최선을 다해 정수리 볼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가진 기술을 총동원했다.
숱도 많이 빠지고 머리 뿌리에 힘이 없어 늘 주저앉는 게 보기 싫어 모자를 쓰고 다녔던 엄마, 아빠가 주말 드라마 속 회장님 내외처럼 ‘부내’ 폴폴 풍기는 스타일로 변신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사진관으로 향하며 말했다.
이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꾸몄으니 제대로 사진 좀 찍자.
둘이 커플 사진 찍고, 나랑 셋이도 찍고, 각각 독사진도 찍자.
장수 사진 알지? 그거로 써도 되잖아.
장수 사진이 영정사진 말하는 거지?
몇 년 전에 작은 언니가 찍자고 해서 찍은 거 있어.
둘 중에 더 잘 나온 거 쓰면 좋지 뭐.
사실, 기분 좋자고 여행 와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할 영정사진을 찍자고 하면 두 분이 불쾌해하시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장수 사진’이라고 듣기 좋게 돌려 말했다. 어르신들의 건강한 여생을 기원하는 의미와 함께 일찌감치 찍어 두면 장수한다는 뜻이 담겨 있으니까.
언젠가 친한 친구들이 거의 다 저세상에 가서 이제 같이 놀 친구가 없다는 씁쓸하게 웃는 아빠의 말을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부모님 또래 분들의 부고 소식이 놀랍지 않은 나이. 일흔이 훌쩍 넘은 부모님을 언젠가 보내드려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때가 온 거다. 언니도 나도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언젠가는 맞이할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까만 돌담길을 따라 중간중간 피어 있는 빨간 동백꽃을 구경하며 사진관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담하고 조용한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초등학교 저학년쯤 된 여자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예약한 손님이라고 말하니 이내 아빠를 부른다.
스튜디오 한쪽에서 한눈에도 예술가 냄새 폴폴 풍기는,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질끈 묶은 사진사가 등장했다. 인사를 나누고 이번 사진의 의미와 컨셉에 대해 잠시 상의를 한 후 순서를 정했다. 먼저 셋이 같이 찍으며 분위기를 풀고, 그 후 두 분이 찍고, 마지막에 각각 한 사람씩 찍기로 했다.
돌잡이 할 아기 앞에서 ‘우르르 까꿍’ 하며 아이의 미소를 만들기 위해 재롱을 부리는 어른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사진사와 나는 부모님의 돌처럼 단단히 굳은 얼굴 근육을 풀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의성어와 의태어, 헛소리와 몸개그를 남발했다.
1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중에서 월드컵 토너먼트에 버금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최종 사진을 택했다. 다음은 포토샵 수정. 사진사의 손길 한 번에 무너졌던 턱살이 정리됐고, 짙은 검버섯과 깊은 주름이 사라졌다. 원본과 비교하니 부모님은 10년 전과 같이 젊어졌다. 원본은 메일로 받기로 하고, 고심 끝에 고른 사진 3장이 출력되길 기다리며 잘 꾸며진 사진관 앞마당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제법 익숙해진 듯 동백꽃 옆에서 포즈를 취하던 아빠가 말했다.
근데 이렇게 금방 나온다고?
커다란 금장 액자 아니고, 손바닥만 하게 나오는 거야.
나중에 필요하면 크게 뽑을 수 있어.
옛날 사진관만 생각했던 부모님께 요즘의 방식은 낯설고 신기했다. 잠시 후 사진사가 나와 완성된 사진을 건넸다. 모니터로 본 사진보다 출력된 사진은 더 마음에 들었다. 인자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미소. 부모님 삶을 지독히도 따라다녔던 어두운 그늘은 한 점도 느껴지지 않는 말끔한 사진이었다. 나중에 검은 상복을 입고서 이 사진을 봐도 마냥 슬프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 생일을 맞아 떠난 여행이었고, 따뜻했던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연신 웃으며 찍었던 사진. 부잣집 사모님 같이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 신기해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엄마. 처음에는 뭘 제주까지 가서 굳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느냐고 툴툴거렸던 아빠.
처음에는 통나무처럼 딱딱했지만 나중에는 전문 시니어 모델처럼 척척 포즈를 취했던 그 모습에 사진사도, 엄마도 나도 빵 터졌던 순간이 떠올라 슬픔을 지워줄 게 분명했다. 부모님과 나의 인연이 시작된 생일날, 이번 생에 맺은 그 인연을 마무리하는 날을 장식할 사진이 남았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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