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7월,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주도한 금속산별 노사합의로 ‘임금 삭감 없는 주5일제’ 도입의 물꼬가 터졌다.
현대차 노조가 앞장서서 싸운 것이 큰 힘이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현대차 노조의 단체협약은 미래의 노동법’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대치를 높이는 역할은 여전히 잘하고 있지만 그다음 역할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쉬움이겠다.
금속산별 노사 합의가 있고 나서 3주 뒤인 2003년 8월 현대차 노사가 주5일제 도입에 합의했다. 산별 노조와 기업별 노조의 교섭과 투쟁이 병행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 아주 좋은 사례다.
당시는 16대 국회였는데, 상정되어 있었던 주5일제 단계적 도입 방안은 금속노조가 합의한 ‘임금 삭감 없이, 2005년까지, 모든 사업장에서 주5일 근무 전면 실시’보다 한참 모자란 ‘2010년 20인 미만 사업장 실시까지 단계적 적용’이었다.
당시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은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과 함께 ‘2005년 7월 1일 전면 실시’로 노동계 단일안을 합의하고, 전면적인 대정부•대국회 투쟁을 준비했다.
결론적으로 주5일제는 2003년 8월 말, 한참 모자란 내용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현대차노조와 금속노조의 산별 합의와 양대 노총의 투쟁 덕분에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와 여소야대 정국에서 제1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도입 반대 의사를 꺾고 타협될 수 있었다.
당시 금속노조의 실무책임자인 사무처장 심상정과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단병호가 국회 문턱 앞에서 멈춰버린 노동자의 정치를 국회 안으로 전진시키기 위해 민주노총이 창당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과 2번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2년 정의당의 대선 후보가 된 심상정이 주4일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주5일제 도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당시 금속노조 심상정 사무처장은 지금의 심상정 대선 후보에게 어떤 말을 할까.
세상을 바꾸는 정치가 오직 국회와 청와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시민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집단화되어 자신들이 소속된 세계를 바꿔나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치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할 때, 국회사무처 직원들은 그들을 단지 10명의 국회의원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수많은 세력이 국회로 입성하는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 사회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시민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자신의 세계를 바꾸어나가는 과정도 민주노동당 덕분에 더 활발해졌다.
주4일제가 되었든, 주 35시간이 되었든 간에 노동시간 단축은 2003년처럼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시민이 자신의 노동 조건에 맞게 그 세계를 바꾸어나갈 것이다. 진보 정치의 역할은 그렇게 조직된 시민이 스스로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대표한다’라는 것의 의미와 주권자가 직접 정치를 조직하는 것에 대한 진보 정당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길 바랄 뿐이다. 진보를 선언하는 정치 행위를 넘어 세상을 진보시키는 과정을 조직하는 진보 정치를 보고 싶다.
원문: 박정환의 페이스북
참고 자료
- 「금속노조 산별교섭 첫 타결 /‘임금삭감 없는 주5일제’ 합의」, 한겨레
- 「주5일제 국회통과 배경」, 연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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