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통 사람들은 우울증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울상을 짓고, 축 처진 모습에, 울고 있고 절망에 빠져있는 그런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의 사람에게서도 우울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나타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슬퍼하는 것이야 당연하지.
우울증의 원인은 명확하진 않지만, 생화학적 요인(뇌 안에 있는 신경전달물질 이상, 생체리듬 변화)이나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정도가 주요 원인들로 꼽힌다. 생화학적 원인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짐작하지 않는 부분인데, 특정 호르몬의 부족 등으로 ‘마음’과 무관하게 신체적 무력감과 정신적 우울감을 동반한 우울증이 발병하는 경우를 뜻한다.
자, 이제 슬플 일이 있어서 서 우울한 경우를 제외하고 치료가 필요한 병증일 경우의 증상을 보자.
주요 우울증의 진단 기준(DSM-IV)
- 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 일상 대부분의 일에서 관심 및 흥미 감소
- 식욕 감소 또는 증가(체중 감소 또는 증가, 한 달에 5% 초과)
- 불면 또는 과다 수면
- 정신운동 지연 또는 정신운동 초조
- 피곤 또는 에너지의 감소
- 무가치감, 부적절한 죄책감
- 집중력 저하, 우유부단
- 반복적인 자살 생각
출처: 서울아산병원 홈페이지
이 중, 감정과 관련된 부분을 보자면 1, 2, 5, 7, 8, 9 정도다. 3, 4, 6의 경우는 감정보다는 신체적 증상이라고 보는 것이 가깝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3,4,6을 가지고 있으면 1은 당연스럽게 따라올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래서 우울증을 “마음의 병” 혹은 “마음의 감기”라고 칭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원인에도 마음과 관계없는 생화학적 원인과 유전적 요인이 존재하며, 증상도 마음에만 국한되지 않으니까.
2.
몇 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해 본 것이 검색이었다. 내가 진단받은 병은 무엇이며, 원인이 뭐고, 증상은 어떤 게 있고 치료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나의 케이스와 비슷한 케이스를 분석한 논문이나 기사가 있다면 찾아서 읽고, 스스로의 증상을 인지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런 과정 속에서 ‘내가 왜 이러지’했던 여러 가지 의문이 풀려나갔고, 이것은 그냥 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고칠 수 있는 (생각보다) 흔한 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 내가 우울증에 대해서 공부해보면서 알게 된 것들은, 우울증에 대해 이전까지 가져왔던 이미지와 생각과는 꽤나 다른 것들이었다. 단순히 우울하고 슬픈 기분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감정에만 관련된 ‘마음의 병’이라고 부르기에는 피로나 불면 등 신체적 증상이 꽤 많고,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등의 기능 저하가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이 혼자 노력해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부정적인 사이클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가 꽤 심했고, 이로 인해 한 학기의 시험을 통째로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부하러 와서 공부를 못 하게 망가져버리면 대체 나는 여기 왜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생기고, ‘공부를 할 수 없는 학생’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되묻게 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이나 감정적, 혹은 신체적 변화가 변화는 거의 없었다. 식욕 저하로 인한 급격한 체중감소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음식 섭취가 힘들어지다 보니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7kg이 빠졌는데, 이것도 옷으로 가리면 주변에서 알아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여전히 겉으로는 상황에 따라 적절한 리액션을 하고, 잘 웃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원래의 나와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아주 감정적이 되거나 우울함을 주체 못 해서 감정 기복이 심해지거나 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보다는 사실 감정이 매우 옅어진 상태에 가까웠다. 웃고 떠들고 놀고 평소 좋아하던 것들을 해봐도 마음속엔 아무 감흥이 없었다. 사람들을 대할 때의 리액션은 그저 잘 발달된 나의 사회성이 상황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가까웠다.
당시에 나는 약물치료(일종의 호르몬제를 먹었다)도 했지만, 상담치료도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받았다. 한번은 이렇게 물었다.
우울증이면 원래 되게 슬프고 우울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왜 중증 우울증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상담사는 우울증의 증상이 아주 여러 가지이며 계속해서 슬프고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해줬다. 보통 슬프거나 우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슬퍼지고 감정적이 되는 것을 사람들은 우울증의 모습이라고 오인하지만(예를 들어 연인과의 이별 후나 가족의 죽음 등, 당연히 슬플 만한 사건 이후의 모습), 실제 우울증 환자들은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감정이 둔화되는 경우가 더 흔하다고도 설명해줬다.
나는 상담에서 이론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 적어두고 나중에 더 알고 싶은 것을 찾아보고는 했는데(상담시간은 제한적이니까), 그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Depressive realism’이라는 이론이었다. 한국말로 직역하자면 우울한 현실주의라고 해야 할까. 뭔가 염세주의와 비슷해 보이지만, 염세주의는 정확히 ‘세계는 원래 불합리하며 행복이나 희열도 덧없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개념에 가깝다. 그래서 우울한 현실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이 이론은 Lauren Alloy와 Lyn Yvonne Abramson이 처음 논문으로 발표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실험을 통해서 우울한 사람들과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의 현실감을 비교해봤을 때, 우울한 사람들의 현실감각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이 논문에 나온 실험에서 우울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금 더 객관적이며, 인지편향이 적은 모습을 보인다.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좀 더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우울한 사람들은 (근거 없는) 낙관을 배제하고 자신과 환경을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내가 “나는 감정적이 되지 않는데 어째서 중증 우울증이라고 진단받은 거야?”라는 의문을 해소시켜 준 이론이다.
물론, 우울증에는 여러 증상이 있고 이런 이론이나 실험 결과가 모두에게 해당되지는 않는다. 이 이론에도 당연히 반론이 있었으며, 어떤 이론만이 명확하고 옳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우울증 환자에 대해 당연하게 따라오는 편견을 얼마간은 줄여줄 수 있는 이론 중 하나라고 본다.
3.
뭐 내가 심리학자도 정신과 의사도 아니니 당연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런 논문이나 나의 케이스밖에 없으니 나의 경우를 예시로 설명해보겠다.
나는 평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독일어를 할 줄 몰라도, 4년의 유학이 예정되어있지만 당장 1년 치 생활비만 가지고 가는 상황이어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도 나는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독일로 떠날 수 있는 정도의 낙관을 가진 사람. 친구는 사귀면 되고, 독일어는 살다 보면 늘 거고, 돈은 거기서 일해서 벌면 된다! 는 생각.
그런데 이게 어떤 근거가 있는, 마땅히 그렇게 될 만한 근거가 있는 생각이었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해외 생활도 처음이었고, 유럽도 처음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고 독일로 떠났을까. 그것은 나의 ‘근거 없는 낙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에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봤다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했듯이 나는 유학을 갈 준비가 경제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덜 된 상태였던 것이 맞다는 걸 알았겠지.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우울증에 걸리고 나서 깨닫는다. 드디어 ‘근거 없는 낙관’을 버리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이 당시에 아주 현실적으로 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잘 되겠지’를 내려놓고 객관적인 가능성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새로운 의문만 생겼다.
‘나’라는 한 인간의 삶의 가치에 대해서도 이것이 사회적으로, 환경적인 면에서(지구를 위해서) 과연 유익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는데 왜? 어째서? 근거는 무엇인가?
그렇다고 내가 나를 아주 부정적인 존재로 느껴지고 내 삶을 다 부질없다고 느꼈냐면 또 그것도 아니고, 약간 제3자가 된 느낌으로 차분히 돌아보고 평가해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슬퍼하고 분노하고 우울해야 마땅한 일들에 그게 맞는 감정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상태이고, 위에 설명한 진단기준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가 우울증에 해당한다. 그리고 우울증의 증상 중 비이성적이 되고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는 것은 이 병을 설명하는 주요 증상은 아니다.(드물게 환각이나 망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이 경우는 다른 정신질환을 함께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러 연구에서 말한다)
가끔 우울증 환자의 의견이나 판단을 “네가 우울증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괜히 비관적으로 굴지 마, 그건 네가 우울해서 그런 거야”라고 단정 짓는 상황을 직접 경험하거나 미디어에서 마주한다. 나는 논쟁하기보다는 아예 입을 닫아버리곤 했다. 우울증 환자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해도 그걸 우울증 탓으로 돌릴 테니까.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면서 ‘우울증이 있다고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현실감 없는 인간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려보는 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 정보에 그때의 나처럼 조금은 안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혹은 누군가에게 쓰고 있던 색안경을 내려놓을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우울증은 그냥 병이다. 여러 증상이 있겠지만,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비이성적 바보로 만들지는 않는 병. 되려 경우에 따라 보통의 사람보다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는 그런 병이다. 이 이론과 내 경험의 설명이 우울증을 진단받거나 혹은 주변에 우울증 환자를 가진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원문: Pang Lee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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