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등의 일환으로 수도권 주택시장 및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계획한 공공주택지구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의 3기 신도시 소개 글이다. 국내 신도시 계획과 개발은 주택 공급이 주목적이다.
3기 신도시뿐만이 아니다. 1972년 박정희는 10년 동안 250만 호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1980년 전두환은 ‘주택 500만 호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기반으로 노태우는 주택 200만 호를 건설했다.
분당, 평촌, 산본, 일산, 중동은 1기 신도시의 결과물이다. 2기도 마찬가지로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판교, 광교, 동탄 등이 2기 신도시의 결과물이다.
국내 신도시 계획과 개발은 영국 도시계획가 에버니저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을 배경으로 한다.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은 산업혁명 이후 공업화로 인해 발생한 도시 인구 과밀, 도시 환경,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창되었다.
즉,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 지역 바깥에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문제와 해결 접근 방식이 국내 신도시 개발과 매우 닮아 보이지만 세부적인 계획과 내용상의 차이를 보인다.
대한민국 신도시는 ‘주택 공급’, 하워드 전원도시는 ‘자급자족’하는 도시
국내 신도시 계획의 주요 목적은 서두에서 알 수 있듯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이다. 하워드의 신도시 계획도 주거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
다만 하워드의 신도시 이론은 주택 공급만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주거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자급자족하는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하워드는 실제로 레치워스와 웰윈 도시계획에 참여했다.
하워드의 전원 도시론 이후 20세기 초 도시계획의 요체는 ‘도시와 농촌의 결합’이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도시 이론’이 완성되었다. 신도시는 거주자들로 하여금 ‘자족적 커뮤니티’로 구획된 경계 내에서 생활이 완결되도록 짜인 구조이다.
- 『내일의 전원도시』, 197쪽.
하워드 전원도시는 건축 설계도면에 따라 건물이 지어지듯, 하나의 도시도 계획적으로 만들어진다.
중심부 원형에는 관개가 잘 되는 정원이 있고, 크리스탈 팰리스에는 공공건물과 넓은 유리 아케이드가 있다. 오늘날 그린벨트와 유사한 그랜드 어베뉴도 보이며, 그랜드 에버뉴에 면한 선이 더욱 길어지도록 초승달 모양으로 배치했다. 그랜드 어베뉴 바깥쪽 환형 지대(보라색)에는 공장, 창고, 낙농장, 시장, 석탄 저장소, 목재 저장소 등이 들어선다.
다시 말해, 단순히 잠만 자는 도시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게 하워드 신도시의 모습이었다. ‘베드타운(Bed town)’으로 전락한 국내 신도시와는 큰 차이가 있다.
주거, 경제, 일자리 등 종합적인 평가를 해본다면 국내 신도시는 ‘도시’로서 실패했고 하워드 전원도시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도시계획의 어떤 차이가 반대되는 결과를 낳았을까?
영국 전원도시의 비결은 토지 이용제에 있다
영국 전원도시는 도시계획의 세부 내용이 아닌, 도시계획을 뒷받침하는 제도에 성공 비결이 있다.
영국의 토지 이용 제도는 계획 중심 토지 이용제다. 철저히 도시계획에 의해 토지 이용 계획이 결정된다. 계획 중심 토지 이용제는 토지의 ‘소유’보다 계획에 의한 ‘이용’에 우선을 둔다.
소유자의 뜻대로 건축할 수 없는 ‘건축부자유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영국을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 등이 차용하는 방식이다.
영국은 토지의 개발권이 국가에 귀속되어 건축을 포함한 모든 토지개발행위는 지방정부 또는 중앙정부의 계획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토지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면서도 개발권은 분리하여 국유화한 것이다.
반면 국내는 용도 중심 토지이용제도다. 미국과 일본에서 채택한 방식이다. 용도 중심 토지이용제도는 용도지역이 결정되면 이에 따라 토지 이용 계획이 결정된다.
용도 중심 토지 이용 제도는 계획에 따른 개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 ‘건축자유원칙’을 근간으로 한다.
용도지역 지정 목적에만 위배되지 않는다면, 소유자는 건축과 개발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개발권이 토지 소유와 함께 사유화되어 있는 제도다. 계획적인 개발이 어렵고 난개발과 환경파괴를 초래한다.
두 손이 마주쳐야 박수 소리가 난다. 도시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통합적인 도시계획이 실행될 수 있도록 토지 이용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도시가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지대를 거둬들여야 한다
불이 생기려면 일단 점화되어야 한다. 산소, 온도, 물질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이후 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산소와 연료가 공급되어야 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토지 이용제는 도시가 잘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다. 이후 도시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세입 제도가 잘 마련되어야 된다.
하워드 전원도시와 국내 신도시는 토지 이용제뿐만 아니라 세입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지대(地代)는 토지 사용자가 토지 소유주에게 내는 사용료다. 지대는 토지 소유주가 무노동으로 벌어들인 ‘불로소득’이다.
하워드 전원도시의 모든 세입은 지대로부터 나온다. 지대를 환수하여 도시로 재투입하는 것이다. 단순히 도시를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세입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염두에 둔 것이다.
전원도시 지대 이론, 영국 개발권 제도와 개발이익 환수제도의 시작
하워드 전원도시의 지대 이론은 이후 영국의 개발권과 세입 제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하워드(1850-1928)가 활동하던 시기에 ‘토지공개념’이 등장했다.
비록 철회하긴 했지만 한때 토지공개념을 주장했던 허버트 스펜서를 비롯하여 헨리 조지, 존 스튜어트 밀이 심화한 개념이다. 이론적으로는 토지 국유화를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하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미 사유화된 토지를 국유화하는 건 정치적 논쟁을 유발하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토지 국유화의 대안으로 제시된 개념이 토지 가치 상승분에 대한 환수제도다. The Uthwatt Committee on Compensation and Betterment는 개발 이익을 공공으로 환원하자는 기본적인 내용을 담은 보고서 「The Uthwatt Report」(1942)를 발표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국토를 미개발지와 기개발지로 구분한다. 미개발지는 토지이용권만 인정하고 개발권은 국유화하고 기개발지는 토지 가치 상승분에 대한 정기적 과세를 통해 개발이익을 환원한다.
이 보고서는 제도적으로 제정되지 않았지만, 보고서의 내용은 이후 영국 토지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947년 개발부담금이 그 예다. 개인이 토지를 개발하고자 할 때 국가에 개발부담금을 지불하고 개발권을 구입하는 것이다. 개발이익의 100%를 징수하는 제도다.
하지만 개발사업 위축, 제도 운영 복잡성 등 문제가 발생하면서 개발환수제도는 개량 부과금, 개발 이익세, 토지 개발세 (1967-1974-1975)로 변화해왔다.
결국, 오늘날 계획 이익 환수제도의 근간이 되는 도시 및 농촌 계획법 제106조가 1990년에 발표되었고 거둬들인 세금을 주택 공급, 기반시설 설치 등과 같은 공공성을 강화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신도시 개발 이익은 누가 가져가나
국내 신도시는 어떠한가? 1, 2기 신도시는 택지개발촉진법에 의해 조성되었다. 반면 3기 신도시는 공공주택특별법에 의해 조성된다. 따라서 공공임대와 공공분양 비율이 합쳐서 50%를 넘어야만 한다. 1, 2기에 비해 공공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신도시 개발로 발생한 이익은 개인투자자 혹은 민간건설사가 챙기는 구조다. 1, 2기보다는 콩고물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토지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기가 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개발 호재가 있으면 한몫 챙겨보려는 이들이 득달같이 몰려든다.
토지 가치 상승으로 인한 몫을 국가가 환수한다면 투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대를 환수함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과 건설업이 움츠러들 염려가 있다. 하지만 이는 개발에 참여하는 민간업체에 개발이익을 일정 부분 제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도시계획의 핵심은 제도다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은 도시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도시를 탈출하여 새로운 땅에서 해결하려고 했던 점이 한계로 지적되면서도 도시계획가들에게 정통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워드가 제시한 신도시의 모습은 펜으로 슥슥 그린 그림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 환경, 사회 등을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구체적으로 도시를 계획했다.
하지만 하워드의 전원도시 이론을 만들 수 있었던 토대는 토지이용, 개발권,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제도였다. 단숨에 영국과 같은 제도를 국내에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 또한 100여 년 동안 제도를 발전시키고 수정하면서 수많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 있었다.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한 지역도 있지만, 어쨌건 국내 3기 신도시 개발은 현재 진행 중이다. 우린 이미 실패했다고 낙담하기보다는 3기 신도시의 개발을 통해 토지개발 공공성에 관한 논의들이 진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하워드 같은 도시계획가가 백 명, 천 명이 나온다 한들 살기 좋은 도시는 만들 수 없다.
원문: 현우의 브런치
참고 자료
- 에버니저 하워드, 『내일의 전원도시』, 조재성·권원용 역, 한울아카데미, 2019.
- 류해웅, 「용도 중심과 계획 중심의 토지이용제도 비교」, 2009.
- 서순탁, 「토지재산권 분화 및 개발권 국공유화방안 연구」, 1999.
- 이형찬· 최명식, 「영국의 계획이익 환수제도와 정책적 시사점」, 2009.
- 3기 신도시 홈페이지, 「 3기 신도시란?」
- 국토교통부, 「외국의 수도권정책 정책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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