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유치원 서류에 가족정보와 여러 사항들을 입력하고 있었다. 마지막 코멘트란에, ‘우리 아이가 많이 부족하지만 잘 지도해주세요!’라고 적었다. 제출 버튼을 누르기 전, 신랑에게 리뷰를 요청했다.
신랑이 쭉 훑어보다가 코멘트 부분에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떤 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고 묻는다. 내 의도는 아직 아이가 어리니, 이것저것 실수하더라도 잘 봐 달라는 표현이라 설명해줬다.
‘부족하다’는 말이 정말 부족하다기보다는, 아직 완벽하지 않음에 대한 인정, 일종의 겸손의 표현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신랑이 되묻는다.
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해?
추가하길, 미국에서는 아이가 부족하다는 표현이 자칫 잘못하면, 선생님의 특별한 주의나 관찰이 필요하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감 있는 첫인상을 주는 게 좋지, 서류에서부터 무언가 부족하다는 표현은 의도치 않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랬다. 가만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제가 부족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주변에서도 많이 듣게 된다. 자신을 낮추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최대한 돋보여야 하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도 ‘제가 부족하지만’ 이란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함께 인터뷰를 하던 동료 직원 왈, ‘본인조차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왜 우리가 이 사람을 뽑아야 하지?’라고 반문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 지원자의 의도는 ‘저는 이 정도의 경지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최고의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부족하지만’이란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뻔했다.
멋진 발표를 마치고도 ‘저의 부족한 발표를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자신의 강의를 하찮은 것으로 포지셔닝해버린다.
감동을 주는 글을 썼음에도 글 소개 란에는 ‘끄적끄적 글 나부랭이를 쓰는 사람’ 또는 ‘늘 부족한 글쟁이’등, 스스로를 별것 아닌 것처럼 표현한다. 겸손이 미덕이라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겸손의 표현이었을까?
스스로를 부족하다며 낮추는 겸손함의 이면에는, 아직 본인이 보여주지 못한 더 큰 것들을 알아봐 줬으면 하는 의도가 은연중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완벽하지 않으면, 미완성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미완성은 부끄러운 것, 미안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는 생각.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어딘가 있을 수 있는데, 감히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교만하다고 말이다.
완벽은 좋은 것, 부족한 것은 나쁘고 숨겨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또한, 스스로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 역시 스스가 만든 완벽의 잣대로 평가할 위험이 있다. ‘나보다 못한 것 같은데, 왜 저 사람은 뭐 이리 당당하지?’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세상에는 ‘완벽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린 조금 더 스스로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어딘가 존재하지도 않을 완벽의 기준을 설정해놓고, 늘 ‘부족하다’는 말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두는 것을 멈추면 어떨까.
당신은 타인의 시선에서는 ‘완벽’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원문: 켈리랜드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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