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호민 인터뷰: 무명 잉여가 인기 만화가가 되기까지에서 이어집니다.
하숙집 아저씨와 학생들
리: <무한동력> 이야기를 해 보자. 무한동력 드라마는 어땠나?
주: 나름 괜찮았는데, SNS 드라마라서 딱히 이슈화되지는 않았다.
리: <무한동력>은 캐릭터들이 평범해 보이면서도 참 재미있다. 다들 주변에서 수집한 건가? 아니면 적절히 자신의 페르소나를 분산시킨 건가?
주: 이름까지도 다 실제 친구들이고, 실제 그런 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들을 대입시켰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아직도 비만화가 친구들이 더 많다. 술 마시면 회사원 친구,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 등 다양한 친구들이 모인다. 그런 이야기들 많이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친구들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말투, 스타크래프트 중독까지도 다 반영했다.
리: 장선재와 김솔은 정말 연애하나?
주: 그건 아니다. 원래는 식상한 게 싫어서 연애코드를 안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멜랑꼴리> 연재하는 비타민 형이 연재 도중에 “사랑은 좋은 거야”라고 하며 반드시 러브라인 넣으라고 하더라. 반박할 수 없어서 넣었는데 잘한 것 같다. 안 넣었으면 엄청 건조했을 것 같다..
리: 이 만화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하숙집 아저씨가 쥐고 있다. 그런데 아저씨가 하이텔을 쓰는 걸 보면 향수 돋기도 하지만,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 즉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도 들더라. 이걸 벗어나야 비로소 현실을 읽게 되는 건데 아저씨는 끝내 현실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주: 맞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화석 같은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포니2를 등장시킨 것이다. 단말기는 내 경험인데 컴퓨터 살 돈 없으니까 전화국 가서 단말기 빌려서 쓴 적이 있다. 그런 추억을 넣고 싶었다.
리: 하숙집 아저씨는 끊임 없이 삶의 의미를 찾는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것이지만, 역으로는 불행함을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주: 나도 같은 생각을 하며 그렸다. 무한동력 기계 만드는 게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여기 와서 멈출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저씨의 실제 모델이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적이 있다. 그 아저씨도 사실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런 모습을 더 묘사했으면 더 입체적으로 됐을 텐데 너무 도인처럼 연출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리: 하지만 워낙 도인스러운 느낌이라 더 인간미가 부각된 것 같다.
주: 현실 속에 부대끼는 청년들과 대비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리: <무한동력>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잘 사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다들 놀라울 정도로 빈부의 격차, 출발선의 차이를 극복해 나아가고 있다. 젊다는 것이 가능성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주: 제일 아쉬운 점이 그거다. 솔직히 그게… 한마디로 너무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애들이 너무 잘 되지 않나? 갑자기 사장되고 취업하고 학교로 돌아가고… 갑자기 애들이 뜬금없이 잘풀린 게 좀 아쉽다. 한 명 정도는 완전 밑바닥까지 한 번 내려와도 좋았을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다 잘 되서 너무 아쉽다.
리: 자식 같은 캐릭터가 잘 돼서 아쉽다니…
주: 잘되는 건 좋은데, 너무 작위적으로 된 게 아쉽다는 이야기다.
쉬어가는 페이지, 최규석과 주호민
리: 좀 강하게 나가는 건 최규석 작가가 잘하는데, 두 분 되게 친한 것 같다.
주: 되게 좋아하는 형이다. 그 분도 나 되게 좋아하는 것 같고.
리: 혹시 최규석 작가에게 부러운 점이 있다면?
주: 외모?
리: 다른 건?
주: 없다. 딱 그 정도 형이다.
리: 요즘 그 양반이 연재하는 <송곳>은 보고 있나?
주: 웹툰을 그리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보통은 가우스 전자, 생활의 참견 등 에피소드, 꽁트만 보는데, 극화는 송곳만 본다. 규석이 형이 <송곳> 준비를 굉장히 오래 해서 내용이 꽤 재밌다. 또 거기 나오는 구고신이라는 노동상담소 소장의 실제 모델 중 한 명인 하종강 선생님과 팟캐스트를 해서인지 더 와닿기도 한다.
리: 어떤 팟캐스트인가?
주: 하종강의 노동학개론이라고 국민TV에서 4개월 째 하고 있다. 노동 문제에 대해서 무지한, 일반인의 입장에서 물어보는 역할이 필요한데, 주호민이 실제로 매우 무지하다고 규석이형이 추천했다.
리: 무지랭이 입장에서 진행해 보니 어떻던가?
주: 상상 이상으로 노동 문제가 심각하더라. 정말 매회, 너무 우울해져서 나온다. 사연들이나 이런 걸 보면 너무 부조리들이 많아서 깜짝 놀라고는 한다.
리: 예전에는 현실에 너무 관심 가지는 게 피곤하다 하지 않았나?
주: 그건 실제로 피곤한 시기여서…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여러 상황들이 피곤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관심 꺼야겠다 다짐한다고 꺼지는 게 아니더라.
리: 그렇다면 좀 더 과감하게 현실 참여적인 만화를 그려 볼 생각은 없는가?
주: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만화에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물론 기반에 깔고 은유적으로 나올 수는 있겠지만, <송곳> 같은 만화를 그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리: <신과 함께> 이승편만 해도 꽤 현실 참여적이지 않았나?
주: 네이버에서야 그랬지만, 그리 직설적인 만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의 모습과 <무한동력>의 모습
리: <무한동력>에 나오는 애들은 다 나름 능력자다. 장선재도 좋은 학교 다니니 금융권 취업했겠지. 아예 좀 더 밑바닥을 그려볼 생각은 없었나? 그쪽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아예 접은 건가?
주: 밑바닥을 딱히 그리고 싶지는 않았고, 나와 어울리는 친구들, 즉 모델이 밑바닥이 아니고… 밑바닥을 그리는 건 뭔가 좀… 나 자신과 독자를 속이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오히려 부자를 그리는 것보다 더… 겪어보지도 않은 밑바닥 정서를 제대로 표현하기도 힘든 일이다. <신과 함께> 이승편에서는 정말 밑바닥을 그리기는 했는데, 내 관념으로 밑바닥 그리기가 매우 괴로웠다.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리: <무한동력>을 다시 보면서 <미생>이 떠올랐다. 미생은 자신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인정’받기 원하는, 직장인의 판타지를 잘 그려낸 작품이지 않나? 그런데 등장하는 인물들은 뭐랄까… 열심히 한다고 ‘착각’하는 현실을 그려낸 것 같다. 그런데 결론은 반대다. 장그래는 잘리는 반면 <무한동력> 등장인물들은 대기업도 가고, 네일샵도 운영하고… 다들 너무 꿈 같다고 할까… 주호민의 인간애-_- 가 느껴지는 것 같다.
주: 맞다. 만화를 연재할 때 친구들이 다 잘 안되고 있을 때였는데… 진짜 열심히 안 하더라.-_- 맨날 나하고 같이 와우하고… 맨날 술 마시고, 나보다 야구를 많이 보는데 어떻게 취업하고 공무원 시험 붙겠나? 자기들도 답답하니 현실에 뭔가 중독거리가 필요했던 것 같은데, 그런 모습들도 그리려고 노력했다.
리: 그래서 그 친구들 결국 어떻게 됐나?
주: 친구들 결국은 다 잘 됐다. 마지막으로 친구가 공무원도 붙었으니.
리: 친구들은 자신이 모델인 걸 알고 있었나?
주: 보통 친구들이 내 만화 안 보는데 자기들 나온다 하니까 보더라. 자기가 그 처지여서 그런지, <무한동력>은 칭찬도 많이 하고 관심도 쏟았다.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도 냈다. <무한동력>에서 많이 퍼간 대사가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인데, 그 대사도 친구가 준 거다. 말풍선 비워 넣고 네이트온으로, “여기서 아저씨가 뭔가 간지나는 대사 쳐야 하는데 아이디어 없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가 그 대사를 주더라.
리: 공무원 준비하는 친구는 정말 진기한처럼 똑똑했나 보다.
주: 그렇다. 진짜 똑똑한데 노력 안 하는 전형이다. 경찰공무원 준비하는 친구였는데 그렇게 놀더니, 30살 넘고 체력 더 떨어지면 실기전형에서 안 된다고 갑자기 공부해서 32살에 바로 붙더라.
리: 하숙집 식구들은 죄다 순수하다. 솔이는 돈 많은 PD를 거부하고 진기한은 피 보기 싫다고 그 좋은 수의학과를 멀리 한다. 주인공 커플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거리를 둔다. 반면 외부 캐릭터들은 다 그들과 배치된다. 직장 자랑에 여념 없는 친구, 남친 있는 여자에게 명함으로 들이대는 PD, 네일아트 한다고 아들 여친에게 인상 찌푸리는 어머니… 이쪽을 그냥 현실로 그리고 하숙집을 이상향으로 생각한 건가?
주: 하숙집 외부 캐릭터가 딱히 악하거나 그런 걸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숙집 외부는 그냥 일상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어머니들은 어떤 여자 데려와도 눈에 안 차지 않나? 그런 어머니 상을 그리려고 했던 거다. PD가 솔이 꼬시는 거는 사실 내 만화 약점이 위기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사건을 만들어 봐야겠다 하다가, 마침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PD가 막 방송을 하더라. 그때 저런 사람이 연적이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만든 이야기다.
평범한 사람을 응원하고 싶었다
리: <무한동력>은 정치성이 약해 보이지만, TV 방송에 아저씨가 등장하는 부분은 꽤나 정치성이 엿보인다. 실제로 대부분의 미디어는 루저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우스개소재로 다루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런 ‘일상’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주: 일단 모티브 자체가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출발한 게 크다. 그 아저씨 보고 느낀 바가 많았다. 처음 구상할 때부터 촬영 씬은 꼭 넣으려고 그랬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는 이 아저씨뿐 아니라 뭔가 미쳐있는 만드는 사람들이 종종 나온다. 그때 꼭 전문가 데려와서 “열정은 인정하나 불가능 하다…”식으로 초를 치고 김을 빼더라. 처음에는 되게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어느새 꾸사리 주는 교수 앞에서 기계 돌아가면 통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괴짜로 희화하는 그런 모습들… 거기에 역전포를 날리고 싶었달까…
리: 평범한 사람을 응원하고 싶다?
주: 평범한 사람… 그렇지. 그런 거 만드는 게 사실 되게 잉여다. 나는 잉여짓을 되게 좋아한다. 모든 문화활동이 잉여짓의 산물이니까. 그래서 항상 응원하게 된다.
리: 방송에서 아버지를 원망하는 수자의 멘트도 꽤 의미심장하다. 사실 꿈을 꾼다는 건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꿈이라는 게 사회적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타인을 불행하게 하지 않나?
주: ‘세상에 이런 일이’ 보면 가족 인터뷰 꼭 딴다. 남편이, 아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한다. 예전에 포기했다며… 좀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봤다. 괴짜들은 열정 가지고 하는 게 재미 있겠지만, 가족들은 괴로워하는… 그런 갈등을 보여주고 싶었다.
리: 혹시 본인 경험은 아닌가? 아버님이 돈 안 되는 민중 미술을 하셨는데 힘들지 않았나?
주: 아버지가 그림 그리며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전혀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런 거 원망한 적은 전혀 없다.
리: <무한동력>에서 왜 섹1스를 그리지 않았나? 이게 인간사 최대의 일상이 아닌가?
주: 그… 나는 특정 타겟층 독자가 없다. 남녀노소를 타겟으로 잡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빠졌다.
리: 그런데 군바리 만화는 왜 그렸나?
주: ……
판타지 힐링 스토리, 그리고 그 후
리: 약간 열린 결말 같은데, 결국 장신재는 합격한 건가?
주: 나름 주인공 어찌 됐는지 강력한 암시를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본부장이 심층면접 하다가 “다음에 마저 들려주세요”란 말 하지 않나? 그게 합격을 강하게 암시한 거다. 그리고 시간이 밤인데, 면접이 밤까지 이어졌다는 거는 합격했음을 의미한다.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데, 앞으로는 좀 더 강하게 장치를 넣을까 생각도 한다.
리: “후회라는 말은 해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라는 아저씨의 말과 “열정이 눈에 보인다”라는 상사의 말… 이 둘은 서로 비슷하지만 맥락은 전혀 다르다. 앞은 이상계로, 뒤는 현실계로 향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아저씨를 동경하면서도 결국 현실 세계에 편입된다. 결국 장신재는 이상계가 아닌 현실계로 향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묘한 쓴맛이 느껴지더라.
주: 사실적으로 따지면 내 친구 모습이 투영된 것이기에… 사회 시스템에 맞춰 가면서도 자기는 열정이라 착각하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붙으면 이제 월급 받는 만큼 일하게 되겠지. 장신재는 실제 증권회사를 들어간 친구가 모델이다. 그 친구 보면서 생각했던 게… 입사하고 한두 달 동안 네이트온 대화명에 자기 회사 사명이 있었고, 술자리에서 계속 주식 이야기만 했다. 어설프게 많이 알 때는 그러다가 요즘은 별로 이야기 안 하더라. 뭐, 그런 상태가 아닐까…
리: 진기한이 개를 살리는 장면은 굉장히 임팩트가 있다. 사람은 인정받고 만족하기 정말 힘든 존재다. 그런 임팩트 있는 순간은 잘 나오지 않는다. 당신은 일상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쪽인지, 아니면 뭔가 이루기 위해 힘들어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쪽인지 궁금하다.
주: 사실 그런 극적인 순간이 없이 살다 가는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극적 변화를, 소름이 돋는 그런 장면을 한 명쯤은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개를 살리는 장면을 넣었다. 진기한이야말로 <무한동력>의 주제와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김솔은 그냥 좋은 상황이 떨어진 거고.
리: 그래서 그들은 이후 어떻게 될까? 뒷이야기를 다뤄볼 생각은 없나?
주: 없다. 열린 결말로 끝난 만화에 뒷편 만드는 건 사족이라 생각한다. 신과 함께도 유성영 병장 변호를 더 그려볼까 했는데… 언제나 열린 상태에서 딱 끝나는 게 재미있는 것 같다.
※ 편집자 주: 주호민이 말하는 “신과 함께”의 모든 것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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