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호민이 말하는 “무한동력”의 모든 것에서 이어집니다.
리승환: 신과 함께 영화화는 대체 언제 되는 건가?
주호민: 영화는 2012년 쯤 들어갔다. 영화 계약하고 김태용 감독이 맡아서 한다고 기사도 나고 그랬는데… 김태용 감독의 시나리오가 원작과 너무 달라서 어렵겠다고 제작사, 투자사에서 판단해서 2년만에 감독이 교체됐다. 국가대표와 미스터고를 만든 김용화 감독이 새로 제작을 맡고, 탕웨이와 결혼한 김태용 감독은 예전부터 준비해 온 시나리오로 다른 영화를 만들게 됐다.
리: 공유까지 캐스팅 했다는데 아쉬움은 없나?
주: 탕웨이를 출연시킬 생각이 있었다는데 아쉽다.
리: ……
주: ……
리: 영화화에 대해서 바라는 점은 없나?
딱히 바라는 점은 없다.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고, 원작은 재료에 불과하다. 맛있게 요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자기 의지와 반하는, 피해 보며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리: 신과 함께는 주호민답지 않게 기획이 잘 되어 있다. 얼마나 조사하고 계획한 건가?
주: 심사를 받기 위한 결과물이니까 당연하다. 사실 기획 자체는 심사 때와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무속인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다. 시놉시스 제출도 그런 쪽이었고… 그런데 그림을 그릴수록, 정말 독자폭이 좁아지겠다 싶더라. 소재도 별 매력이 없고. 그래서 안되겠다, 더 보편적으로 가자… 이런 생각에 아예 사후세계를 통해 보편적 죄책감을 다루고자 했다.
리: 3부작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어디부터 기획한 건가?
주: 저승편이 먼저였다. 이승편, 신화편은 뼈대를 잡으며 따라온 거고.
리: 무한동력과 비교하면 신과 함께는 ‘성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캐릭터들이 별로 내면적 갈등을 겪지도 않고… 뭔가 스케일이 크다 보니까 귀찮았나-_-;
주: 신과 함께는 처음부터 엔딩을 정하고 갔다. 아주 억울하게 죽은 원귀와 엄청 유능한 변호사가 만나 문제를 해결하게 해서, 카타르시스를 폭발하게 하고 싶었다. 사실 저승, 지옥이라는 구도 자체가 7번 반복해야 하니까 생각보다 스펙타클하게 만들기 힘들었다. 그래서 변호사가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원귀가 불쌍하면 불쌍할수록 카타르시스가 더 커질 거라 생각해, 거기에 집중했다.
리: 아무리 그래도 변호사는 너무 완벽한 것 같다. 그래서 매력이 되려 떨어진다는 생각도 들고.
주: 법조인의 이상향을 그려 봤다. 원래 수석이었음에도, 거부하고 국선 변호사가 된 것. 자신의 능력을 좀 더 낮은 곳에 쓰는 모습을 넣었다.
리: 무한동력만 해도 정말 특징 없는 사람들이지만, 나름 삶은 치열하지 않았나? 근데 저승편에서 주인공이 참 특징이 없다. 본인의 투영인가, 사회 전체의 투영인가?
주: 주인공 김자홍도 백지 캐릭터라는 점에서는 무한동력의 장선재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 양반 나름 삶이 치열했다. 사인이 술 접대 아닌가? 자기 의지와 전혀 관계 없이 살아온 거다. 거해지옥 편에서 다뤘듯 엄청나게 많이 피해를 보고, 속고, 싫은 소리 못하고… 그런 사람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 사실 논리적으로 따지면 많이 속았다고 착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많이 속으면 속였던 걸 덮어준다 식으로 설정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하면서 사니까… 그런 걸 위로해주고 싶었다. 사람들의 피해의식, 당한 것들을 뭉친 캐릭터다.
리: 그런데 작중 내에서 그렇게 평범하다고 반복되어 표현하는 이 양반이 거의 유일하게 티 없는 사람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가?
주: 처음에는 좀 못된 사람 그리려는 생각도 있었다. 변호사는 어떻게든 구해내야 하는 입장이니까 더 머리싸움도 치열해지고, 스펙타클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렇게 하고 나니 약간… 지옥의 설정 자체가 문제가 생기는 거다. 나쁜 짓 해도 변호사 빨로 다 통과하면 너무 비논리적이랄까… 그래서 아예 착한 사람으로 가서 죄책감을 더하기로 했다. 죄책감은 착한 사람이 되려 더 많이 느끼니까, 내면의 갈등을 충분히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리: 지옥이 정말 더럽게 까탈스럽다. ‘업’은 지울 수 없고, ‘그럴 수도 있지’의 상황윤리도 없고… 덤으로 아프기만 하면 반성이 되겠냐 싶고-_- 원래 평소에 되게 착하게 사는 사람인가?
주: 아니다. -_- 사실 나는 사후세계 믿지 않는다. 종교도 없고. 그래서, 지옥은 빡센 곳이겠지… 그냥 그런 생각으로 그렸다.
리: 권선징악이 너무 뚜렷한 점도 아쉽다.
주: 확실히 권선징악은 잘 안 쓰는 주제다. 너무 촌스럽다고들 생각하고, 그렇기는 한데… 사람들은 좋아한다.
리: 왜죠?
주: 권선징악은 현실에서 이뤄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고증 작업과 일본판에 대한 소회
리: 신과 함께에서 젤 사랑하는 캐릭터는?
주: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게 배우로 쓰고 있기 때문에 특정 배우를 편애하지는 않는다.
리: 이승과 저승이 연결돼 가진 사람이 저승에서도 유리한 구조를 그리고 있다. 이건 역시 세상은 시궁창이라 생각한 건가.
주: 저승길을 여행으로 보는 건 동서양의 공통된 시각으로, 죽은 망자에게 돈 주는 건 그리스 신화에서도 있다. 노잣돈을 관에다 꽂아주는 게 너무 좋았다. 굉장히 인간적인 문화이자 정서다. 이를 저승에서 유용하게 쓰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잡상인을 넣었을 뿐, 딱히 돈 없으면 저승도 시궁창이라는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 리메이크판에서는 노잣돈 개념이 없는지 원작에서 돈을 관에 꽂는 장면을 빌린 돈을 갚는 걸로 바뀌었다. 그렇게 문화가 달라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
리: 일본 판에서 그 밖에도 바뀐 장면이 좀 있나?
주: 이래저래 있다. 예로 잡상인이 내복 파는데 내복 등장시킨 게 뒤에 있을 일의 복선이기도 하지만, 보통 첫 월급 탔을 때 선물이 빨간 내복이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생각 나게 하는 사람이다. 일본 판에서는 PPL이 들어가면서 유니클로 히트텍으로 바뀌니까 느낌이 완전 다르더라. 한국판에서는 내복을 보고 영감을 떠올리며 우는데, 일본에서는 ‘우리 영감도 히트텍을 좋아했었네…’ 그러면서, 정서가 많이 깎였다.
리: 일본판 캐릭터는 미소년, 미소녀가 나오는데 그건 어떤가?
주: 내가 내 만화를 볼 때도 느끼는 거지만, 스토리가 좋다는 사람들도 실은 정서적으로 동감한 거라 생각한다. 한국식 정서가 매우 강한 만화다. 그래서 그걸 못 살리면 리메이크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연재야 하고 있지만 실제 인기가 좋지도 않다.
리: 일본은 한국보다 만화 시스템이 발전한 국가인데, 아쉬운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주: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만화 시스템을 보고 왔는데 굉장히 체계적이더라.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 만화는 만화가의 것이 아니라 편집부와 함께 만드는 개념이었다. 편집부 의견이 많이 반영되고, 콘티 빠꾸는 기본이고, 45번 빨간펜으로 난도질 당하는 것도 봤다.
리: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것 아닌가?
주: 그러면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만화의 전개과정들이 뭔가 비슷하다. 때가 되면 어련히 신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뭔가 클리셰가 굉장히 많고 신선한 이야기가 딱히 없는 것 같다. 장르와 문법에 함몰이 된달까… 반면 한국 웹툰은 매우 자유롭다. 일본에서 패션왕 같은 만화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편집자는 A를 A+로 더 좋아주게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그렇게 잡아주지 않아 뼈대가 무너지는 웹툰을 종종 보면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만…
리: 신화편은 꽤 많은 고증이 들어간 것 같다.
주: 6개의 신화가 들어갔는데 5개가 제주도 신화고, 1개가 경기도 신화다. 사실 이들 개별 신화는 별 관련이 없는데, 각각의 신화를 연결시키는 게 재미있었다. 신화란 게 단순한 미담이라 캐릭터의 행동에 계기가 빠져있는 경우가 많아 극적 재미를 주기 위해서 넣은 장치였다. 왕자가 ‘왜’ 갔는지는 신화에 없었는데, 가난한 나라의 왕자라 관직 열등감이 있었고, 하늘에서 제안 왔을 때 거절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논리를 만들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생동감이 생겨서 좋더라.
리: 독자들의 평가는 어땠나?
주: 뭐, 독자들은 그 신화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학습만화 같다고(…) 그런데 이거 진짜 창작이 많이 들어갔다. 신화의 구도는 단순하기에, 디테일을 채워나가는 작업이 필요했다. 행여나 이걸 원래 신화로 알 것 같은 사람이 많아서, 단행본과 만화 후기에는 원래 신화가 아니라 창작이 많이 들어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리: 연결이 부드러워서 전혀 별개의 이야기인 줄 몰랐다. 원래 신화는 꽤 심심했나 보다.
주: 원전은 심심하기도 하지만 황당한 부분도 많다. 자기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처참하게 죽인 원수와 남은 막내딸이 결혼하는 게 말이 되나? 덱스터처럼 피웅덩이에서 살아남아서 싸이코패스 살인마 된 것처럼, 살인마 되는 게 더 논리적이라 생각해서 변경했다.
신과 함께 이승편은 정신적으로도 괴로웠던 작품
리: 본인이 생각할 때 신과 함께 3부작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주: 저승편이다. 솔직히 여기에만 80% 에너지 쏟아 부었고 그만큼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생각한다.
리: 독자 반응은 어떻던가?
주: 대략 저승 3 : 이승 1 : 신화 2 정도다.
리: 아니… 이승편이 왜 그리 인기가 없단 말인가?
주: 일단 너무 신파에 암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생각한다. 저승편은 유쾌한 구석도 있었고, 패러디도 많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너무 진지를 빠니까, 특히 10대가 많이 떨어져 나갔다. 저승편에 있던 활극 요소도 없었고…
리: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주: 아쉽지는 않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디테일한 부분에 있다. 대학생 용역의 비중을 더 줬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들었고, 또 용역이 알고보니 친척… 이건 너무 엮었다 싶기도 하고…
리: 이승편을 통해 본격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것인가?
주: 노렸다기보다는 그 소재 자체가 너무 강했다… 소재 힘이 너무 세서… 강제이주, 재개발… 아수라장이 될 거라는 건 예상했다. 가택신에 대해 그리려 하며 ‘그들의 시련이 뭘까’를 생각하니… 집이 없어지는 거니까 결과적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리: 신과 함께는 선악 구도가 매우 뚜렷한 만화다. 그런데 이승편은 ‘사실은 그놈은 착한 녀석이었어’가 등장한다.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괴로워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승이 저승보다 더하다는 생각도 들더라.
주: 저승이 이승, 이승이 저승… 그런 거 노린 것도 있다. 실제 취재하고 자료 모으면서 안타까운 기사를 많이 봤다. 용역 대학생 알바 인터뷰를 봤는데 용역 알바를 안 하면 등록금을 못 내는 상황이더라. 이게 대체 뭔지… 의자 뺏기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대학생 이야기를 좀 더 … 넣고 싶기도 했다. 더 입체적일 수 있었는데 그게 안 된 게 아쉽기도 하고. 그저 대학생 용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정도로 마친 게 아닌가 싶다…
리: 그리면서도 많이 피곤했겠다.
주: 다른 만화는 그리면서 재미 있었는데, 신과 함께 이승편만 괴로웠다. 소재 자체가 암울하기도 하고, 만화 자체가 컨트롤 안 된다는 느낌이 처음이었다. 가난한 사람을 선으로 묘사하는 것, 그리고 뭔가 돈 많은 사람을 악으로 묘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되더라. 송곳에 나오는 대사가 맞다. 시시한 사람들 위해 시시한 악당들과 싸우는 게 현실인데, 그런 면에서 컨트롤 실패했고, 지나치게 신파가 됐다.
리: 다들 사정이 있고 좋은 사람으로 나오는데, 유일하게 여기서 벗어난 게 경찰이다. 혹시 공권력에 대해서만큼은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가?
주: 적대감은 딱히 없다.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다. 이승편의 경찰은 어쨌든 공무원이니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도 그냥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가만히 있는 것뿐이다.
리: 잠깐 저승편으로 돌아가면, 역시 군대에서 은폐하려는 모습이 나오지 않나?
주: 그건 그냥 현실이다. 그저 가장 억울한 죽음을 만들기 위해 말년휴가라는 양념을 친 것뿐이다. 원래 군대가 총기사고 많고 은폐도 많이 되지 않나. 딱히 그런 공권력을 까거나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
언제나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리: 이승편은 기존 주호민 표 만화와 달리 엄청나게 리얼해서 놀랐다. 특히 애들이 놀러와서 가난을 놀리는 부분이 와닿는다. 어릴 때 경험이라도 반영됐냐 돈 없다거나… -_-
주: 딱히 경험은 아니다. 근데 그 집 자체는 경험에서 가져온 게 맞다. 지금은 재개발 됐는데, 예전 큰집이 왕십리에 있었다. 똑같은 달동네. 화장실도 재래식. 그 동네 분위기는 거기서 따왔는데, 내 집 아니라 큰집에서 가지고 온 거.
리: 왜 오너캐를 용역으로 등장시켰나 -_-?
주: 이름도 뒤집어서 민호… 나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일들이 엄청 일어나고 있는데 딱히 하는 건 없다. 사실 나도 그냥 방관자다. 만화나 그리고 있지… 그래서 그냥… 동조, 암묵적 동조자로 생각돼서 용역으로 넣었다.
리: 방관자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주: 생각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생각만 항상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이 일상화되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좀 외면했던 시기도 있다. 정국이 좀 그런 이후로는 솔직히 많이 지쳐서, 뉴스도 안 보고 관심도 끊었는데… 관심 끊고 싶다고 끊어지는 것도 아니더라.
리: 윤태호 작가는 애 낳고 되게 평화적으로 사람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당신도 그런가?
주: 애의 영향은 아니고… 어느 순간부터 안 되는 게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좀 기다리기로 했다. 세상은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촉을 세우거나, 비판하고 싶거나 이런 게 많이 옅어졌다.
리: 가택신과 재개발이 참 절묘하게 맞는 것 같다. 사실 그들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나서봐야 결국 망하고…
주: 그래도 신화편, 특히 창세신화는 한국 정치사 은유가 되게 많다. 거의 대놓고 했는데 어린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폭력적 지배자, 그 후에 무능한 지배자가 있다. 태양도 원래 혼자서 떨어트리는 걸 여럿이서 쏴 떨어뜨리는 걸로 바꿨다. 원래 신화가 당대의 가장 중요한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 각색한 것이다. 자연을 정복할 것도 아니니 민중과 참여… 이런 걸 넣었는데, 그런 재해석 자체는 재밌었다.
리: 소별왕이 참 불쌍했는데… 악인으로 그려지지만, 결국 뭔가 해보려는데 무능한 왕의 전형 아닌가.
주: 민주화로 해를 떨어뜨린 셈이지만, 소별왕에게 민주화 세력의 무능함도 조금 넣었다. 악한 사람은 아니다. 개혁해보고 싶고 잘해보고 싶은데 능력이 안 돼서 안 되는 그런 좌절감과 열등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중에 책 파는 아저씨가 소별왕하고 좀 비슷하게 생겼는데, 자기변론을 막 한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게 소별왕 때문이라는 사람들은 한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에 불과하다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신화에서는 정말 무능하게만 취급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까지는 그릴 수 없더라.
리: “사람 같아야 사람인 거다”,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이런 대사도 있다. 사람의 선악에 대해 어이 생각하는지…
주: 모든 문제들은 욕망끼리 충돌하면서 변화하는데, 거기에도 선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처음 보는 사람을 때리거나, 쫓아내거나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니까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난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명동 마리… 거기 일에 대해 듣고는 정말 사람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최소한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가 있지… 그래서 그런 대사가 들어갔다. 그때 아마 피로감이 엄청 많이 쌓였던 것 같다.
리: 그래도 말미에는 “모두 잊어버리는 게 좋다…”라고 하는데, 현실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이전과 관점이 달라진 건가?
주: 관점이 달라진 건 아니고. 원래 세상은 이런 거다. 무한동력도 그렇고 신과 함께도 다 마찬가지다. 무한동력이 좀 희망적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어쨌든 잘 될거라는 생각으로 그린 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낙관적으로 마무리 지었다고, 그들의 인생이 다 낙관적으로 풀리겠나? 진기한이 꿈을 찾았다고 해서 수의사가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냥 학교 복학한 것 뿐이다. 김솔은 가게 사장이 됐지만, 사장이 맡긴 것뿐이다. 사장 돌아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주인공의 회사생활? 역시 어찌될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 굴러가는 것 뿐이다.
리: 가택신이 전부 저승으로 가서 살게 되는 건 좀 뜬금 없더라.
주: 솔직히 좀 억지다. 동현이는 원래 신화가 그래서 설정한 건데 도저히 혼자 남길 없겠더라. 사회는 여전히 배드엔딩이지만, 마음 아파서 그렇게 하기에는…
리: 오오, 역시 따뜻한 도인…
주: 마지막에 남겨진 터를 보고 동현이 친구들이 어디 갔는지 궁금해 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느낌이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만화의 주제 자체가 강제이주 당한 사람들이 어디 갔는지는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빈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다 떠나고. 타워크레인 올라가고… 그렇게 아무도 없는 쓸쓸한 느낌 남기고 싶었다.
리: 원래 해피엔딩 좀 좋아하는가?
주: 아니다. 나는 미스트 같은 엔딩 참 좋아한다. 영화 중 제일 빡치는 엔딩 중 하나다. 사회가 바뀔 거라는 기대보다는, 우연이든 뭐든 계속해서 살아나간다는 게 훨씬 더 기댈 만한 유일한 것으로 비춰진다. 그런데 삶이 좀 그렇다.
리: 그냥 일체개고가 느껴진다. 파주스님이 되더니 정말 불교로 올인한 건가?
주: 뭔가 억지로 괴로움을 표현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크건 작건 고군분투다. 이승편에서는 동현이와 동현이 할아버지에게 안 좋은 일이 닥쳤는데, 엎친 덮친 격으로 계속 일이 커진다. 거기서 가택신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한동력도 마찬가지로 모든 세대가 나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 인생이 힘든 거라는 메시지는 아니다. 그냥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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