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피처 이미지는 Sync의 주호민 작가 인터뷰에서 김형욱 님이 촬영한 사진입니다. 허락을 받지 않고 이미지를 사용했음에도, 후에 사용을 허락해 주신 김형욱 님께 감사 드립니다.
리: 싸이를 아는가?
주: ……
리: 요즘 뭐하고 지내고 있나?
주: 셋이서 쑥이라는 육아만화를 그리고 있다. (편집자 주: 1년 전 인터뷰-_- 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신 작가님께 감사 드립니다.)
리: 애 키우면서 육아만화라니, 뭔가 날로 먹기 삘이다.
주: ……
미술가 집안에서 자란 주호민
리: 그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주: 어렸을 때부터 도화지에 낙서를 많이 했다. 부모님께서 미술 쪽에서 일하시다 보니 집에 미술 도구가 많았다. 만화는 사촌형을 통해 배웠다. 토요일마다 AFKN에서 프로레슬링을 틀어줬는데, 그 형이 프로레슬러들이 몽땅 등장하는 만화를 그렸다. 그 스케일에 감명받아 따라 그렸다.
리: 집안이 엄청 미술 집안인데… 돈이 되는 미술 집안인가, 아니면 그냥 미술을 업으로 하는 집안인가?
주: 아버지가 민중미술 화가셨으니, 당연히 돈이 전혀 안 됐다. 미술 전문 출판사에서 오래 일하시다가 나이 쉰이 되어, 굉장히 늦게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를 선언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미술교사를 잠시 하다가 결혼 후에는 동네 아이들 모아서 그림을 가르쳤다. (참조: 네이버캐스트 미술가 주재환)
리: 아버님께서는 돈 안 되는 일을 왜 한 건가?
주: 하고 싶었으니까 하셨겠지. 내가 어찌 알…
리: 평소에 아버님과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주: 거의 이야기 안 한다. 둘 다 원래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나이차이도 많이 난다. 아버지가 41살 때 내가 태어났으니… 그래서 어렸을 때 많이 무서웠다. 왜냐면 미술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엄청 예민한지라, 집에서 큰 소리를 낼 수 가 없었다. 티비도 적게 틀어야 했고.
리: 지금도 무섭나?
주: 뭐, 지금은 안 무서운데…
리: 형제들도 미술을 하고 있나?
주: 남동생은 LG 디자인 팀에 다니다가 얼마 전에, 회사 때려치우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하고 있다. 아버지하고 비슷한 길 같다.
리: 그런 집안에서 자라났는데도 그림을 못 그린다는 비판이 있다. 주호민 덕택에 강풀이 까이지 않는다는 평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 부모님이 화가라고는 하지만 내게 그림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림은 혼합재료 쓰고… 완전 추상화 쪽이다. 그런 추상적이고 해학적인 그림이다 보니 평범한 인체도 보기 힘들었다.
리: 아무리 그래도 어머님께서 애들을 가르치시는데 당연히 영향 받지 않나?
주: 중학교 때 어머니가 집에 애들 데려와서 가르치는 게 너무 싫었다. 사춘기고 예민하니까, 애들이 거실 난장판 만드는 게 그리도 싫더라. 그래서 쳐다보지도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어릴 때 나와 미술은 그리 가깝지 않았다. 그냥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을 뿐이다.
파괴신 주호민, 가는 곳마다 망하다
리: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나? 영향을 받은 만화가 있다거나?
주: 어릴 때야 우리 세대가 다 그렇듯 드래곤볼 많이 봤다. 그때는 아이큐점프 사면 드래곤볼이 별책 부록으로 나왔는데, 드래곤볼의 부록이 아이큐점프라 생각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딱히 특정 만화가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리: 그림 실력도 그렇지만 도장찍기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귀찮아서 그러나?
주: 도장찍기가 아니고 스타 시스템이란 좋은 말이 있다. 사실 이거 데츠카 오사무 때부터 하던 거다. 이전 만화에 나온 캐릭터가 다시 나오는 건 그 캐릭터를 배우로 생각해서 쓰고 있는 거다. 모습은 똑같지만, 다른 배역으로 계속 나오는 스타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리: 아버님도 그렇지만 본인도 돈 안 되는 시절을 꽤나 길게 가져왔다. 그러면서 계속 만화를 그린 이유는 뭔가? 깡인가, 아니면 그냥 돈 안되도 좋아서 그린 건가? 혹은 그냥 가난에 길들여져서-_-?
주: 내가 재수를 실패하고 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갔다. 애니메이션 과가 있었는데 학점은행제로 운영되고 있었고, 이수하면 전문학사가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2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대를 갔다가 복학하려고 하니까 메뉴에 우리 과가 없더라. 학교 전화하니까 없어졌으니 다른 과로 편입해서 다니라 했는데. IT 전문 직업학교라서 보안학과를 비롯해 컴퓨터 위주 전공만 있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어서 관두게 됐다.
리: 오오.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고졸!!!
주: 뭐,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휴학 중이라고 나온다.
리: 가는 곳마다 망했다는 트윗이 흥했는데, 까르푸에서 일한 적도 있더라.
주: 돈이 좀 필요했는데, 집에 용돈 받을 상황도 아니고 해서 잠시 일했다. 3달 일했는데 적성이 아니어서 나왔다. 근데 바로 망하더라. 나오자마자 바로 망하고 홈에버로 이름이 바뀌더니 홈플러스로 넘어갔다.
돈도 안 받고 만화가의 길을 시작, 군대에서의 일상을 그린 <짬>
리: 데뷔작 군대만화 짬은 어쩌다 그리게 된 건가?
주: 백수로 지내고 있다가 2005년 9월쯤 네이버에서 연락이 오더라. 당시는 포털에 웹툰 서비스가 없던 시절이고, 네이버 붐만 있었다. 붐 카툰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연재해 볼 생각 없느냐는 거다.
리: 오, 그때부터 인지도가 좀 있었나 보다.
주: 그런 건 아니고, 인터넷에 만화 막 올리는 아마추어에게 다 연락한 것 같다. 나는 원래 그런 동기 없으면 시작을 잘 안 하는 사람이라 웹툰에 진출한 계기가 되기는 했다. 마침 전역하고 군대 이야기가 재미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리: 돈은 좀 벌었나?
주: 그 당시는 돈을 받지는 않았다.
리: 억울하지 않았나?
주: 뭐, 그때야 개념이 세워지지 않은 시기니 딱히 억울할 건 없었는데… 정말 억울한 게 연재 끝나고 바로 네이버 웹툰 생겨서, 그때 같이 그리던 사람이 다 등단해 버렸다. 나는 마침 짬이 끝난 상태였고, 그 타이밍을 놓쳐서 변방에 남게 됐다.
리: 요즘 네이버 웹툰처럼 재연재하면 되지 않았나?
주: 그때는 재연재한다는 개념은 아예 생각을 못했다.
리: 그럴 거면 왜 그렸나? 돈도 안 되는데…
주: 그냥 취미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전혀 돈이 안 된 건 아니다. 두 달 그렸을 때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와서 출판 계약을 했다. 계약하고 보니까 어쨌든 완성을 시켜야 해서 그때부터는 좀 뼈대를 좀 세웠다. 페이지 수도 맞추고 계급별 에피소드 분량도 정해서 출간까지 이어졌다. 사실 그때까지도 만화가 내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는데… 짬이 독자만화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용기가 좀 생겼다.
리: 오… 어떤 의미에서…
주: 그 전에는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으로 상 받은 게 만화로 상을 받다 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잘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그리게…
리: 초중고등학교 때도 상 안 받았나, 미술대회 정도는 나갔을 텐데-_-?
주: 초등학교, 중학교 때야 상을 뿌리는 시기고… 고등학교 이후로 받은 적이 없다. 아예 대회도 안 나갔다. 보통 대회를 나가는 건 뭔가 되게 좋아해야 나가지 않나? 그런데 난 그냥 좋아하는 게 없었다. 지금도 딱히 취미가 없어서 이어지고 있기는 한데… 원래 내가 취향이 좀 없는 사람이다. 그랬는데… 만화로 상을 받게 될 줄이야… 아무튼 그렇게 의욕이 생겼다.
리: 상금도 좀 들어왔나?
주: 그런 거 없었다. 수상했다고 알려주지도 않더라. 우리만화연대의 후원으로 진행되는 시상식이었고, 독자들 투표로 된 거라… 어쨌든 받은 건 받은 거-_-…
리: 참고로 그 대회에서 2등한 사람이 지인이다. 결국 만화가의 길을 버리고 살고 있다.
주: 다행이다. 나도 지금이야 괜찮지만 만화로 먹고 살기 얼마나 힘든지 잘 알지 않나.
리: 수상 후 삶이 확 변하던가?
주: 일단 직업으로 진지하게 고려한 건 사실이다. 짬은 스투닷컴에서도 연재했는데, 그때도 고료를 줄 수 없다고 하더라. 너무 어리고 아무 것도 몰라서, 원래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나도 프로 자각이 전혀 없었으니 ‘취미인데 돈 받아도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다.
리: 붐 카툰과 동시에 삥을 뜯긴 격인 것인가?
주: 그렇다. 그런데 내가 가진 마이너스의 손이 또 힘을 발휘했는지, 내가 그만두고 스포츠투데이 신문이 망했다. -_-a
만화로 돈을 벌기 시작하다
리: 이후 만화 라이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주: 2007년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았다. 그때는 스투닷컴에서 한 편당 20만씩 받았다. 마침 스포츠토토에서 배트맨이라는 토토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스포츠 꽁트를 그려달라는 제의가 왔다. 거기서도 편당 20만원을 받았다. 2년 간 돈을 못 벌었는데 2007년에 처음으로 월급이 100만원이 넘은 셈이다.
리: 당시 다른 작가들은 상황이 어땠나?
주: 차이가 너무 커서 이야기하기 힘들다. 당시 알게 된 작가들이 다들 너무 잘나가는 분들이라… 만화가 모임에 나가게 됐는데, 그 분들은 광고만화도 많이 그리고 돈의 단위가 달랐다. 내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다.
리: 무한동력은 꽤 인기를 끌지 않았나?
주: 사실 짬은 좀 관성으로 그리고 있었다. 내 자전기를 그리다 보니 밑천은 떨어지고, 다른 데에서 아이디어를 빌리며 좀 얄팍하게 연명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2008년, 마침 야후에서 웹툰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렇게 무한동력을 시작하게 됐는데, 웹툰 길이가 좀 있는만큼 돈을 좀 더 받았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만화 3개를 동시 연재하니 처음으로 월급 300이 됐다. 또래들이 27~28이니 괜찮은 초봉인 셈이다. 만화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그때 좀 들었다.
리: 돈을 떠나 나름 야후에서 꽤 인기를 끈 웹툰 작가로 인정 받았다는 점이 고무적일 것 같다.
주: 초창기에는… 사실 야후도 안 좋았다. 되게 의욕적으로 시작해서 작가 많이 섭외했는데, 그들이 다 엎어졌다. 양영순 작가님은 연재중단, 호연 작가님은 건강상 이유로 하차, 모 작가님은 추문 때문에 하차… 그래서 야후 카툰은 굿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리: 그래도 무한동력도 그렇고 이말년시리즈도 그렇고, 나름 인기 좀 끌지 않았나?
주: 뭐랄까… 어떤 그 웹툰 서비스이든 프랜차이즈 작가가 필요하다. 다음은 강풀 작가님, 네이버는 조석 작가님 등이 그 역할을 한다. 그걸 야후는 만들지 못했다. 이말년시리즈는 인기였지만, 결국 네이버로 넘어갔으니…
리: 무한동력 인기가 의외로 별로였나 보다.
주: 지금 와서 알려진 거지, 당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했는데… 내가 짬 때무터 고질적 문제가 독자층이 좁다는 거다. 짬은 예비역이나 고무신이 타겟이었으니 좀 넓었는데… 무한동력은 10대는 봐도 이해 못하고, 3040은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고, 가뜩이나 야후 자체도 마이너한데 만화도 마이너했으니 널리 알려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리: 신과 함께는 어땠나?
주: 이건 특이한 게 완결이 된 후에 입소문 타고 완결작품을 더 많이 본 케이스다. 만화 구성도 완결 이후 모든 구조를 알게 되는 거라…
무명 만화가가 미인과 결혼하는 법
리: 잘 나가는 만화가도 아닌데 어찌 결혼도 잘 했다. 어떻게 만났나?
주: 2005년에 만화 짬을 시작할 무렵, 5월에 인사미술공간이라는 미술관이 있었다. 당시 여기서 월 50만원씩 받으며 홈페이지 관리를 해주고 있었는데, 내가 만화 그리는 거 알고, 젊은 미술하는 친구들 모여서 공동벽화작업을 하는 ‘이미지 밴드’ 프로젝트를 추천하더라. 돈은 없고, 시간은 많고 하겠다고 하니… 막상 뽑아놓고 보니까 내가 청일점인 거다. 그 중에 제일 어린 친구가 있었다.
리: 몇 살이었나?
주: 한예종 1학년…
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 어떻게 꼬셨나?
주: 되게 귀엽더라. 편의점 알바한다고 하던데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처음 건 말이 아직도 기억 난다.
리: 뭐라고 물었나?
주: 나름 고민하다가 무슨 삼각김밥이 젤 맛있냐고 물었다.
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것도 먹히다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 아무튼 뭐라 대답하던가?
주: 되게 진지하게 참치마요네즈 김밥이 맛있다고 하더라.
리: ……
주: 그렇게 벽화작업 하면서 많이 친해지고 이듬해에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했는데, 1주일동안 합숙을 하면서 밤마다 술파티 벌이고 분위기 좋고… 그러다 보니까… 사귀게 됐….
리: 이야기를 좀 돌리자. 가는 데마다 망하는 징크스… 이건 어찌 보면 그만큼 메이저로 올라가지 못한 결과물인 것 같다.
주: 아, 그러고 보니 아내를 처음 만난 그 미술관도 없어졌다…
리: ……
주: 사실 전부 내가 떠난 뒤에 망한 거다. 있을 때 망해야 실패지. 자꾸 나를 실패의 아이콘으로 몰아가지 말아달라.
힐링 트렌드의 창시자 주호민
리: 만화에서 항상 마이너한 삶을 다루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주: 마이너 이야기를 많이 그리는 건 내가 메이저의 정서를 몰라서다. <신과 함께>와 <무한동력> 주인공의 공통점은 ‘백지 캐릭터’라는 것이다. 독자들이 자기 모습을 감정 이입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백치처럼 만든 거다. 마치 성우가 없는 야겜의 주인공이랄까?
리: ……
주: 아무튼 그런 방식을 고수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주인공을 메이저로 만들 수 없었다. 세상에 자기를 메이저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마이너적 정서가 당연히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무한동력>은 평범한 사회초년생, <신과 함께>는 40살에 죽은 젊은 남자의 이야기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리: 그런데 <무한동력>과 <신과 함께>를 보면 힐링캠프 같다. 평소 트위터 보면 딱히 힐링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주: 앞서 이야기했듯 일반 대중에 맞추다 보면 필연적으로 위로의 정서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은 힐링이 넘치는데 2008년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만약 지금 <무한동력>이 연재된다면 얄팍하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을 거다. 내가 흐름을 좇은 게 아니라, 트렌드를 만들어냈다고 써달라(…)
※ 편집자 주: 주호민이 말하는 “무한동력”의 모든 것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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